한나라당 ‘내전’ 불붙었다
  • 고제규·차형석 기자 ()
  • 승인 2004.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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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 개혁파와 보수파, 사사건건 충돌…‘남북관계법안’ 놓고 전면전 돌입
한나라당이 두 개의 전쟁에 휘말렸다. 여당과 외전도 벅찬데, 잠잠하던 내전까지 동시에 터졌다. 드러난 양상만 보면, 지난 10월28일 이해찬 총리의 차떼기 발언으로 불거진 외전이 치열했다. 청와대와 여당을 상대로 총력전을 치렀다. 그러나 여론이 악화하면서 여야간 전면전은 휴전으로 갈 수밖에 없다.

문제는 내전이다. 당내 이념 차이가 선명한 새정치수요모임(수요모임)과 자유포럼이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통상 국지전으로 그쳤지만 이번에는 전면전으로 번질 조짐이다. ‘당이 쪼개질 만큼 치열할 것’(이정현 부대변인)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내전의 도화선은 11월3일 정문헌 의원이 대표 발의한 남북관계기본법안이다. 남북 교류와 남북 합의서 체결에 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한 이 법안은 남한을 통일 이전의 대한민국으로, 북한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규정했다.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였던 북한을 처음으로 국가로 인정한 것이다. 열린우리당마저 혁신적이라고 인정할 만큼 진일보했다.

곧장 당내 역풍을 맞았다. 11월4일 오전 여의도 렉싱턴호텔(옛 맨하탄 호텔)에서 자유포럼 소속 의원들이 긴급 조찬 모임을 가졌다. 조찬 모임을 끝내고 이방호 의원이 대표 집필한 성명서를 발표했다. “정문헌 의원의 남북관계기본법은 헌법을 부정하는 법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보수파의 원조인 김용갑 의원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김용갑 의원실의 한 보좌진이 정문헌 의원실에 들러 이 법 발의에 서명한 17명의 이름을 적어갔다. 법안에 서명한 의원들을 살펴보니 공통점이 있었다. 정문헌 의원을 비롯한 대부분이 수요모임 소속이었다.
죽은 ‘정문헌안’, 수요모임이 되살려

지난 8월3일 열린우리당 임채정 의원이 1백24명의 서명을 받아 남북관계발전기본법을 발의했다. 임채정안으로 불리는 이 법에는 원희룡·정병국·심재철 의원 등 한나라당 의원 13명도 동참했다. 정문헌 의원은 참여하지 않았다. 지난 9월 초부터 독자 입법안을 준비했다. 대안을 가진 비판을 위해 정문헌 의원이 총대를 멨다. 정의원은 ‘남북한과 미국’을 연구 과제로 고려대 정외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연구교수로 있다가 정치에 뛰어든 남북 관계 전문가이다. ‘남북 관계로 먹고살았던’ 정의원이 보기에 임채정안은 2% 부족했다. 남북 협상의 국회 통제 조항을 강화하고, 임채정안에서 두루뭉술하게 넘어간 북한의 실체를 인정하는 내용을 보강했다.

지난 9월13일 정문헌안은 한나라당 소속 통외통위 소속 의원들에게 먼저 선을 보였다. 찬반으로 갈렸다. 다시 9월17일 한나라당 남북관계및안보정책특별위원회에 넘겼다. 그러나 넘을 수 없는 철벽에 부딪혔다. 안보특위는 법안을 발의할 필요조차 없다고 결론 냈다. 임채정안의 문제점을 알고 저지하자는 것이 결론이었다. 소장파는 ‘반대를 위한 반대, 대안 없는 반대’라는 한나라당의 고질병이 도졌다고 판단했다. 수요모임은 독자적으로 법안 정비에 나섰고, 수 차례 논의했다. 한나라당에 덧씌워진 수구 색깔을 버리게 할 처방이라는 공감대를 얻었다. 11월1일 정문헌 의원은 법안을 전체 의원에게 배포했다. 수요모임이 주축이 된 17명의 서명을 받아 법안을 발의했다. 이렇게 사형 선고를 받았던 ‘정문헌안’은 수요모임이 뒷받침해 살려냈다.

한나라당에는 소장파가 중심인 수요모임, 영남권 보수 의원이 집결한 자유포럼, 이재오·김문수·홍준표 의원이 주도하는 국가발전전략연구회(국발연), 맹형규 의원이 만든 국민생각 등이 있다. 사안에 따라 합종연횡을 거듭하지만 수요모임과 자유포럼은 극과 극이다. 남북관계기본법으로 전면전에 돌입한 두 모임은 한나라당의 좌우를 대표한다.

두 모임은 만들 때부터 신경전을 벌였다. 지난 7월15일 소장파 20명이 모여 수요모임을 만들었다. 16대 때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이 주축이 된 미래연대가 전신이다. 여기에 박형준·이성권·김희정 의원 등 소장파 초선 의원들이 합류했다. 하루 늦은 7월16일 자유포럼도 결성했다. 김용갑·이방호·김기춘 의원 등 이념적으로 가장 오른쪽에 있는 의원들이 합류했다.

7월19일 전당대회에서 수요모임이 약진했다. 원희룡 의원이 최고위원에 뽑혔고, 남경필 의원은 수석 부대표가 되었다. 당권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수요모임은 말을 아꼈다. 그러나 소강 국면은 오래가지 않았다.

지난 8월 5·18 묘역 참배를 둘러싸고 두 모임은 1차전을 치렀다. 8월28일부터 2박3일간 열린 의원 연찬회 일정 가운데 5·18 묘역 참배가 끼어 있자 자유포럼 의원들이 일제히 반대했다. 8월23일 의원총회에서 자유포럼의 좌장 격인 이방호 의원이 제동을 걸었다. “당의 정체성으로 볼 때 전체 의원이 5·18 묘역을 참배하는 것은 더 논의할 사항이다.” 김용갑 의원은 정서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며 절대 못 간다고 말했다. 안택수 의원도 “싫다는 사람들(호남)에게 짝사랑 노래나 부를 때가 아니다”라며 반대했다.

수요모임 소속 의원들이 반격에 나섰다. “영남 지역당을 선언해 주저앉자는 것이냐.”(원희룡) “5·18 묘역은 한나라당이 집권할 때 만들었다.”(정병국) 최연소 의원인 김희정 의원까지 나서자 이방호 의원은 “후배들이 완장 차듯 당을 운영하려 한다”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 날 설전은 한나라당의 이념적 편차를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 당직자 사이에서 두 모임이 언제까지 한 배를 타고 갈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이 돌았다. 예정대로 5·18 묘역을 참배하면서 1차전은 수요모임의 완승으로 끝났다. 그러나 수요모임의 승세는 오래가지 않았다.
박근혜 대표, 자유포럼과 한 배 타다

박근혜 대표가 이끈 정체성 논쟁은 자유포럼의 손을 들어주었다. 참여정부를 좌파 정권으로 비난할수록 맨 오른쪽에 있는 자유포럼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박대표의 표류하는 리더십도 자유포럼의 목소리를 키웠다. 박대표의 트레이드 마크는 부드러운 리더십. 국가보안법과 대북 정책, 여권과의 관계에서도 그녀는 부드러운 리더십을 강조했다. 대표 취임 때만 해도 수요모임과 가까웠다.

하지만 정체성 논쟁은 박대표에게 자충수였다. 박대표의 강점인 부드러운 리더십을 발휘할 여지가 줄어들었다. 공격적인 정체성 논쟁과 부드러운 리더십이 삐걱댔다. 9월19일자 한 언론과 인터뷰는 박대표 리더십의 전환점이었다. 박대표는 국가보안법의 정부 참칭 조항을 없앨 수 있고, 명칭도 바꿀 수 있다고 밝혔다. 특유의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정국 돌파를 꾀했고, 수요모임은 모처럼 환영했다. 자유포럼은 참칭 조항 삭제는 대표 혼자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며 봉기했다. 참칭 조항은 대한민국 정체성과 직결되며, 한나라당이 양보할 수 없는 마지노선이라고 못박았다. 박대표 자신이 제기한 정체성 주장이 박대표를 공격하는 부메랑이 되었다. 박대표는 발언 3일 만에 입장을 번복했다. 당내에서 폭넓게 논의할 수도 있다는 의미라며 모호한 화법으로 피해갔다. 한 초선 의원은 “이때부터 박대표가 완전히 페이스를 잃고, 부드러운 리더십이 표류하는 리더십으로 바뀌었다”라고 말했다.

박대표가 정국의 파고를 헤쳐 가는 중심키를 놓치면서 사공이 많아졌다. 국발연은 수도 이전과 관련해 분명한 입장을 밝히라며 박대표를 압박했고, 수요모임도 박대표의 우향우 행보를 넘어선 뒷걸음질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며 목소리를 냈다. 탄핵 태풍에서 몸을 던져 한나라당을 구했다는 박대표에 대한 부채 의식도 차츰 엷어졌다. 요즘 의원총회에서는 달라진 풍경이 자주 목격된다. 의총장에서 발언을 끝내고 대표에게 인사를 하지 않고 내려오거나, 대표가 와도 길을 비켜주지 않고 이야기하는 의원들이 늘었다.

여권이 4대 입법을 추진하자 박대표는 본격적인 강경 노선을 밟았다. 자유포럼과 한 배를 탄 것이다. 10월27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박대표는 4대 입법 철회를 요구했다. 수요모임은 더 이상 묵과하지 않았다. 박대표마저 대안 없는 반대라는 고질병에 감염되었다고 보았다. “한나라당안을 내놓지도 않고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지도자의 모습이 아니다”라고 원희룡 의원은 말했다.

10월27일 국정감사로 느슨했던 수요모임이 재가동되었다. 당내 투쟁의 깃발이 올랐다. 이 날 모임에 참여한 원희룡·남경필·정병국·이성권 의원은 국가보안법에 대한 입장을 정리했다. 참칭 조항을 삭제하는 것까지 포함해 대폭 개정해야 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 날 모임을 마치고 의원실에 돌아온 한 초선 의원은 보좌진에게 주먹을 불끈 쥔 채 “(당내)투쟁할 때가 되었다”라며 의지를 내보였다.

참칭 조항 삭제는 자유포럼과의 전면전을 의미한다. 자유포럼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11월2일 의원총회장. 이해찬 총리 해임을 논의하다 말고 이방호 의원이 마이크를 잡았다. 자유포럼의 좌장 격인 이의원은 수요모임의 대표주자 원희룡 의원의 텔레비전 토론 발언(10월30일)을 문제 삼았다. “그런 식으로 당론을 따르지 않고 혼자 나설 바에는 당을 떠나라.” 자유포럼 의원들이 원의원에 대한 융단 폭격을 가했다. 소장파도 “조갑제 당을 만들자는 거냐”(고진화)라며 맞섰다.

수요모임·자유포럼 “끝까지 싸우겠다”

이런 상황에서 11월3일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는 정문헌 법안이 발의된 것이다. 자유포럼으로서는 선전포고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번 내전은 국가보안법 개정의 폭을 둘러싼 수요모임과 자유포럼의 전초전이다. 김용갑 의원이 의원 직을 걸고 국가보안법 사수를 다짐할 만큼 자유포럼은 완강하다. 이방호 의원도 “남북관계기본법은 사실상 국가보안법을 무력화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의원은 양보할 수 없는 마지노선이라고 분명히 했다.

발의를 주도한 정문헌 의원도 타협 없는 당내 투쟁을 선언했다. “북한의 실체를 인정하는 것과 다름없는 유엔 동시 가입 때 우리당 의원님들은 뭐했냐”라고 비판했다. 원희룡 의원은 “피할 수 없는 싸움이 시작되었다. 소장파는 맷집이 튼튼하다. 끝까지 싸우겠다”라고 말했다. 당내 이론가인 박형준 의원도 당의 선진화를 위한 투쟁을 벌이겠다고 말했다. 수요모임 소속은 아니지만 이념적 공감대가 이들과 비슷한 고진화 의원도 중대 결심을 하겠다고 했다. 소장파의 결심은 탈당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한 초선 의원은 “우리가 왜 나가냐? 나갈 쪽은 저쪽이다. 공론화가 되면 개혁적 보수주의와 수구꼴통이 선명해진다. 여론은 소장파 손을 들어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번 논쟁이 5·18 묘역 참배 논쟁의 재판이 될 것이라고 소장파 의원들은 자신한다.

그러나 수요모임에 곱지 않는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많다. 한 초선 의원은 “지금까지 이회창·최병렬·박근혜 등 주류 뒤꽁무니만 쫓아온 이벤트 모임이다”라고 비판했다. 그런 수요모임이 백전노장인 자유포럼과 맞서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당장 박근혜 대표는 최고위원 회의에 수요모임보다는 자유포럼 쪽과 가까운 5선 의원들을 배석시키기로 결정했다. 이에 대해 수요모임은 젊은 의원들과 교감하며 지원군을 늘릴 작정이다. 국발연도 지난 11월4일과 5일에 걸쳐 1박2일 워크숍을 가졌다. 4대 입법안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고, 곧 입장을 정리해 내전에 가세할 태세다. 두 개의 전쟁에 휘말린 한나라당이 당분간 시끄러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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