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정 “우하하” 주성영 “으악”
  • 고제규 기자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4.12.21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베스트·워스트 ‘금배지 1위’로 꼽혀…심의원 보좌진 ‘최강 드림팀’
지난 12월17일 오후 2시, 국회 의원회관 713호실은 경제학 강의실을 방불케 했다. 대외 순채무, 약달러 정책, 아시아통화기금(AMF) 등 각종 경제 용어가 튀어나왔다. 경제 도표를 두고는 “어렵다, 어려워”를 이구동성으로 반복했다.

초선 의원들은 경제학 삼매경에 푹 빠져 있는 713호 국회의원을 베스트 1위(19표)로 꼽았다. 주인공은 바로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이다. 심의원과 보좌관들은 매주 한 번씩 <알기 쉬운 경제지표 해설>을 교재 삼아 계급장을 떼고 맞장 세미나를 가진다. 김상조·이창조·김헌동·윤창연·장하준 교수를 불러 금융 경제 현황부터 공공 토지 정책까지 궁금증을 해소하기도 했다.

 
이같은 노력으로 심의원은 노동운동의 야전 사령관에서 재정경제위원회의 철의 여인으로 거듭났다. 지난 국정감사 동안 심의원은 피감 기관 기피 1순위였다. 국민연금 2조원 이자 손실, 외평기금 1조8천억원 손실, 통화안정증권 남발로 인한 이자 지급액 5조원 증가 등 잇달아 경제 부처의 실정을 찾아냈다. 송곳 질문에 박 승 한국은행 총재부터 이헌재 경제 부총리까지 내로라 하는 경제통들이 움찔했다.

심의원의 눈부신 활약은 ‘심상정 사단’이 있어 가능했다. 심상정 사단은 박사 2명, 석사 3명, 기자 출신 2명으로 구성되었는데, 다른 의원실로부터 드림팀이라고 불리며 부러움을 사고 있다.

심의원과 금속노련 때부터 호흡을 맞춘 손낙구 보좌관은 노동 전문가이다. 5년 동안 민주노총 교육선전국장을 지내며, 매일 평균 5꼭지씩 성명서와 보도 자료를 내보냈다. 그는 정무 보좌관으로서 부동산 정책을 맡고 있다. 오건호 보좌관은 민주노총 정책실장을 지낸 브레인이다. 서울대 사회학과 박사인 그는 정책수석을 맡아 노동자 시각의 정책 이행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임수강 보좌관은 바로 재경부를 옴짝달싹 못하게 했던 외평기금 1조8천억원 손실을 밝혀낸 주인공이다. 억대 연봉이 보장된 채권 트레이더로서 증권사에서 10년을 근무했고, 대학원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정재열 보좌관은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내년에 박사 과정에 입학한다. 해외 투기 자본에 대한 규제가 그의 주된 관심사이다.
기자 출진 보좌관들의 활약도 눈부시다. <진보정치> 기자 출신인 오진아 보좌관과 <매일노동뉴스> 출신인 김재홍 보좌관은 수많은 취재원들로부터 노동 현장의 가려운 곳을 전해 듣고 있다. 의원실의 살림살이는 김정희 보좌관이, 홈페이지와 금융정책은 장석원 보좌관이 맡고 있다. 민주노동당답게 보좌관이니 비서니 하는 차별을 없애고, 보좌관이라는 똑같은 직책으로 활동한다.

심의원은 지금까지 13개 법안을 발의했다. 그 가운데 10개가 민주노동당이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부유세 관련 법안이다. 이들 법안은 심상정 사단의 보배인 윤종훈 회계사의 손에서 만들어졌다. 삼성과 맞서며 1인 시위를 처음으로 개발했던 윤종훈 회계사는 외곽 지원부대이다. 참여연대에서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위원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심상정 의원실과 결합해 부유세 도입의 기반을 다졌다.

 
베스트 의원 2위에는 열린우리당 장향숙 의원(14표)이 뽑혔다. 장의원은 일 욕심이 많기로 유명하다. 소아마비 때문에 휠체어에 의존해야 하지만, 그녀의 의정 보폭은 크고 넓다. 장의원은 인권정책연구회 대표를 맡고 있고, 유시민 의원이 주도하는 참여정치연구회 공부 모임에도 참여하고, 최근에는 경제연구 모임에도 빠지지 않는다.

장의원의 관심은 소수자 인권이다. 한 예로 그녀는 청각장애인과 농아에게는 1종 면허를 허용하지 않고 2종 면허만 허용한 도로교통법 차별 조항에 대해 개정안을 냈다.

일을 하고 싶어서 국회에 들어갔지만, 장의원은 가끔씩 거대한 벽을 느낀다고 했다. 국회가 파행할 때는 더 그랬다. 혼자 그 넓은 본회의장에 1시간 동안 앉아 있기도 했다. 장의원은 전동 휠체어를 구입해 두고도 너무 바빠서 연습하지 못하고 있다. 신년에는 국회 안에서 만큼은 혼자 이동하는 것이 장의원의 목표이다.

여당 의원들, 고진화에 ‘몰표’

 
베스트 의원 3위는 ‘고독한 소신맨’이라고 불리는 한나라당 고진화 의원(13표)이 차지했다. 특히 한나라당 의원보다는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그에게 몰표를 던졌다. 고진화 의원은 “앞으로는 한나라당 안에서 더 많은 지지를 받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때 출당설에 휘말리기도 했지만, 고의원은 국가보안법 개정안에 대한 당론을 정하면서 뚝심을 발휘했다. 한나라당의 국가보안법 태스크 포스에서 활동하면서, 그는 물러날 때는 물러나고 목소리를 낼 때는 내면서 대폭 개정안을 관철했다.
12월15일 국가보안법 당론을 정하는 12시간에 걸친 마라톤 의원총회에서 지도부에 일임하는 것으로 결론 났지만, 내용으로 따지면 고의원을 비롯한 소장파의 승리였다. 표결 직전 당내 보수파의 원조 김용갑 의원이 퇴장할 정도였다. 고의원은 “누가 당을 떠나야 할 사람들인지 결론 난 것이나 다름없다”라고 말했다.

당내에서는 고독하지만, 당 밖에서는 그에 대한 러브콜이 뜨겁다. 그의 휴대전화는 늘 불이 난다. 인터뷰 요청 때문이다. 지난 12월16일 의원실을 찾았을 때도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하루에 담배 한 갑 반을 피우는 ‘헤비 스모커’인 고의원의 새해 목표는 담배를 끊는 것이다. 한 가지 추가하면, 이왕이면 ‘결혼해서’ 담배를 끊는 것이다. 고의원은 아직 미혼이다.

초선 의원들이 뽑은 옐로 카드감 의원은 색깔론 3인방이 차지했다. 1위는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 의원들로부터 몰표를 받은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52표)이다. 주의원은 일찌감치 걸쭉한 막말로 명성을 떨쳤다. 시민·사회 단체를 ‘사회적 기생층’이라고 폄하하더니, 노무현 대통령을 깍두기 머리 임금으로, 386 의원들을 베짱이로 희화화하며 막말 퍼레이드를 이어 갔다.

주의원은 공석에서나 사석에서나 말이 똑같아 농담과 진담을 구분하기 어렵다. 넉살도 좋다. 자신의 말이 지나치다 싶으면 웃고 사과해 버리기 일쑤다. 법사위 공방 과정에서 “최재천은 사기꾼이다”라고 했다가, 동료 의원이 항의하자 기자들을 향해 “그럼 취소합니다”라며 웃어넘겼다. 이런 넉살 때문에 홍준표 의원은 자신을 이을 저격수로 주의원을 치켜세웠다. 하지만 이철우 의원 간첩 암약 발언으로 너무 나가자, 홍준표 의원마저 ‘트러블 메이커’라고 평가 절하했다.

주성영 의원 “의로운 싸움은 외로운 법”

 
워스트 의원 1위로 뽑힌 것에 대해 소감을 묻자 주의원은 “기분이 나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주의원은 “의로운 싸움은 외로운 법이다”라며 특유의 너스레를 떨었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지도부 말만 믿고 총대를 멘 주성영 의원도 희생자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지도부에 서운하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 12월15일, 주의원은 열린우리당 천정배 원내대표를 협박 및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곧장 대구 지역구로 내려갔다. 박근혜 대표의 대구 방문을 수행하기 위해서다. 이튿날 상경하자마자 그는 다시 법사위원회 사수 조장으로 하루 종일 법사위원회를 지키며 당 지도부에 대한 충성을 과시했다.

주성영 의원과 함께 색깔론 3인방인 박승환·김기현 의원은 나란히 워스트 의원 3위(14표)에 올랐다. 워스트 2위는 한나라당 한선교 의원(15표)이다. 화려한 말발 덕에 국회에 입성한 한의원은 말 때문에 추락했다. ‘이해찬 선배’를 불러 질문을 하려다 그냥 돌려보내 비난을 자초하더니, 막판에는 말 바꾸기 논란에 빠졌다. 11월30일 YTN <돌발 영상>이 한의원의 말 바꾸기를 포착했다.

오전 10시 상임위 속개를 요청한 한나라당이, 기업도시특별법 통과를 앞두고 오후 2시로 연기할 것을 요청했다. 한의원은 복잡한 당내 사정을 들어 열린우리당 의원들에게 ‘잘못했다’며 2시 약속은 반드시 지키겠다는 뜻을 밝혔다. 열린우리당 김한길 위원장은 불참하면 “무조건 (표결 처리로) 간다”라며 수락했다. 오후에 한나라당 의원들이 불참하자,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표결 처리했다. 그런데 한선교 의원은 국회 기자회견실에서 “여야 간사간 합의도 없이 여당이 단독 처리했다”라고 발표했다.

<180도>라는 제목으로 한의원의 말바꾸기가 방영되자, 그의 홈페이지에는 비난 글이 쇄도했다. 여기까지는 촌극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한선교 의원실이 자충수를 두었다. 한 보좌관이 시민을 가장해 한의원을 두둔하는 글을 올렸다가, 네티즌들의 집요한 IP 추적에 들통이 난 것이다. 워스트 2위에 오른 소감을 묻기 위해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한선교 의원은 무슨 좋은 일이냐며 거절했다.

한나라당 박승현·김기현 의원과 함께 워스트 공동 3위에는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14표)이 올랐다. 14표 모두 한나라당 초선 의원들이 던졌다. 그런데 최의원은 베스트 4위(12표)에도 올랐다. 12표 역시 모두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꼽은 결과이다. 국가보안법 폐지안 기습 상정의 주역인 최의원을 두고 여야의 평가가 극단으로 엇갈린 것이다. 한나라당 전여옥 대변인도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몰표 때문에 워스트 의원 4위(13표)에 올랐다.

이번 조사에서 베스트 의원을 꼽는 질문에는 무응답이 많았고 또 한 표씩만 얻은 의원이 많았다. 반면 워스트 의원을 묻는 설문에는 대부분 표가 몰렸다. 역시 칭찬받기보다는 욕먹기가 쉬운 것이 정치판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