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비리에 ‘동작 그만’은 없다
  • 나권일 기자 (nafree@sisapress.com)
  • 승인 2003.06.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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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무사·헌병대, 뇌물 받고 묵인…특정 인맥의 사정기관 장악도 문제
국방부 장성과 장교 들의 코가 석자나 빠졌다. 경찰청 특수수사과(과장 주상용)는 6월12일, 전·현직 소장급 장성 등 국방부 고위 간부 6명이 연루된 수뢰 사건을 적발했다. 13일에는 아파트 25채를 군 관사로 매입하면서 건설업체로부터 향응을 받고 압력을 행사한 혐의로 현역 공군 준장이 공군 검찰에 기소되었다. 건설업체로부터 뇌물 수천만원을 받은 공군부대 기무부대장과 시설대대장 등 현역 공군 중령 2명도 구속되었다. 사건이 잇따르자 조영길 국방부장관은 “군내 비리에 대해 장관으로서 매우 참담한 심정이며 국민과 국가 지도부에 대단히 송구스럽다”라고 사과했다. 조장관은 “현재 비리 요소들에 대해 광범위한 내사와 탐문을 하고 있다”라고 밝혀 한동안 군 관련 비리 사건이 이어질 것 같다.

군 관련 부정 비리 가운데 부대 시설 공사 뇌물 사건은 가장 전형적인 사례다. 특히 국방부 군사시설국과 육군본부 공병감실은 건설업체들의 로비가 늘 벌어지는 부서로 이름이 나 있다. 국방부 고등검찰관을 지낸 군 법무관 출신 한 변호사는 “공병 병과에서 덩지 큰 비리가 많은데, 헌병대나 기무사가 이를 알면서도 묵인하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라고 지적했다.

경찰청 특수수사과가 입수한 현대건설 김광욱 상무보(54)의 뇌물 공여 명단에는, 2000년 시설공사 주무 부서인 신택균 국방부 시설국장에게 3천만원을 주었고, 헌병 병과 최고 계급인 국방부 합조단장 김시천 소장에게도 2천만원을 건넨 것으로 적혀 있다. 공군 검찰부가 조사 중인 공군부대 뇌물 사건에서도 비리를 감시해야 할 기무부대장이 2천만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군대 내에서는 ‘헌병대나 기무사가 모르는 군 비리는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군 사정기관이 비리를 눈감아 주기 때문에 군내 비리를 근절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조영길 국방부장관은 기무와 헌병 분야에서 비리가 잇따르자 “앞으로 단위 부대에서 중대 사안이 발생할 경우 반드시 기무부대장에게 책임을 물어 근무 평정에서 감점을 주겠다”라고 엄포를 놓았지만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인사 청탁 비리도 공사 비리 못지 않은 고질적인 군 병폐이다. 이번에 현대건설로부터 뇌물을 받아 구속된 신택균 예비역 소장은 2000년 5월 서울 홀리데이인서울 호텔 일식집에서 김동신 전 국방부장관(당시 민주당 안보위 고문)과 점심 식사를 하면서 천만원을 건넸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이 육군 참모총장으로 재임하던 1999년 10월 신씨가 소장 진급 심사를 통과한 데 대한 사후 답례금으로 주었다는 설명이다. 국방부 안팎에서는 김동신씨가 호남 군맥의 대부로 통하기 때문에 예비역 장성뿐만 아니라 현직 국방부 장성들도 연루된 인사 청탁 사례가 있었을 것으로 본다.
문제는 군 수사기관의 비리 척결 의지다. 현재 군 비리를 수사하는 국방부 합동조사단장인 이 정 소장은 김동신 전 장관의 육사·광주일고 후배이고, 군 검찰의 최고 부서인 국방부 검찰단장 오준수 대령도 광주일고 출신이다. 현재처럼 군내 사정기관을 특정 인맥이 장악한 이상 ‘판도라의 상자’를 열기 어렵다는 것이 국방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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