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길승 몰카' 누구 작품인가
  • 나권일 기자 (nafree@sisapress.com)
  • 승인 2003.08.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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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길승 몰래 카메라, 나이트클럽 사장 이씨 겨냥해 꾸몄을 가능성 커
양길승 청와대 제1부속실장(47 ·사진)이 지난 6월28일 충북 청주에서 지역 인사들로부터 향응을 받는 현장을 몰래 촬영해 언론에 공개한 인물(혹은 세력)은 누구인가? 청주지검(고영주 지검장)이 특별 전담팀을 구성해 수사하고 있지만 사건의 실체는 아직까지 안개 속이다.

검찰은 8월3일, 키스나이트클럽 대주주인 이원호씨(50)와 민주당 충북도지부 부지부장 오원배씨(45) 등을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했다. 이씨는 조세 포탈과 윤락행위방지법 위반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던 청주의 유력 인사이고, 오부지부장은 양실장의 청주 방문을 처음부터 주선하고 세부 일정을 짠 인사이다. 청주 현지에서는 이번 사건이 이씨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세력이 개입한 ‘기획 작품’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청주고속버스터미널 주변 유흥업소들은 수년 동안 치열하게 경쟁해 왔다. 청주 지역 사정에 밝은 인사에 따르면, 리호관광호텔(리호나이트)을 소유한 재력가 이씨에 대항해 경쟁 업체가 ‘아라비안나이트’를 개장하자 리호나이트의 매출액이 급감했다.

다급해진 이씨는 국정원 직원 출신 홍 아무개씨 등과 합작해 지난해 10월 천평 규모의 초대형 키스나이트클럽을 개장했다. 키스나이트클럽은 개점 이후 6개월 동안 카드 매출액이 100억원에 육박할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경쟁에서 밀린 아라비안나이트는 결국 중년층을 대상으로 한 돈텔마마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이씨가 청주 지역에서 재력가로 성장하기까지에는 경쟁자들의 희생이 컸다. 지난해 충북도경 강력부가 이씨에 대한 내사에 나선 것도 익명의 제보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쟁 업소의 비리를 파악해 수사기관에 제보해 타격을 주는 것은 유흥업계의 오래된 생존 수법이다. 몰카 테이프에는 양실장이 청원군 식당에서 민주당 ‘경선동지회’ 사람 50여명과 함께 한 식사 장면은 빠져 있고, 키스나이트클럽과 리호호텔 입구, 포장마차 주변 등 고속버스 터미널 주변 유흥가 장면이 주로 담겨 있다.

유흥가의 한 세력이 양실장이 청주를 방문해 이씨 업체에서 술자리를 가질 것이라는 정보를 미리 입수한 뒤 양실장과 이씨를 동반 추락시키려고 몰래 촬영을 기획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지역 내에서 평판이 좋지 않은 재력가 이씨가 대통령 주변 실세인 양실장을 방패로 삼으려는 데 분노했을 수 있다.
제보자가 양실장이 청주를 다녀간 직후인 7월 초 SBS에 테이프를 보냈고, SBS 제작진에게 “이사장과 양실장 때문에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많다”라고 주장했다는 것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청주 현지에서는 이밖에도 키스나이트클럽 운영을 둘러싼 국정원 출신 동업자 홍 아무개씨와의 갈등설도 흘러나오고 있다. 이같은 관측은 몰래 카메라 촬영이 ‘전문가 솜씨’라는 점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런 점에서 양길승 몰래 카메라가 정치권 내부의 권력 다툼 과정에서 나왔다고 제기한 음모론은 설득력이 약하다. 지방 나이트클럽 경쟁자 간의 새우 싸움에 청와대 권력이라는 고래등이 터진 격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양실장이 부적절하게 처신했다는 사실 자체는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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