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참모 안희정씨 인터뷰/“386 배제에 반대한다
  • 이숙이 (sookyi@sisapress.com)
  • 승인 2003.10.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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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왼팔’ 안희정씨 인터뷰/“대통령 신당 입당은 당연한 일”
재신임 불똥이 또다시 386 측근들을 강타했다. 정신적 여당이라는 통합신당에서조차 ‘대통령 잘못 모셨다’며 386 참모진의 퇴진을 요구했고,
결국 이광재 국정상황실장이 사표를 냈다. 이실장과 함께 노대통령의 투톱 참모로 불리는 안희정씨를 10월20일 오전 여의도에서 만났다. 논산
지역구 다지랴, 나라종금 재판 받으러 다니랴 바쁜 그는, 조심스럽지만 분명하게 인적 쇄신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집권 8개월 만에 대통령이 재신임까지 묻게 된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 원칙으로 보면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다. 선출직 공직자는 유권자와의 계약 관계에 따라 권력을 위임받았으므로 계약 내용에 하자가 발생하면 유권자의 의향을 다시 물어야 한다는 게 대통령의 원칙이다. 13대 때도, 사회적 약자를 위해 일하겠다며 원내에 진출했는데 그럴 환경이 안되자 의원 직을 내놓겠다고 했고, 후보 때도 대선 후보가 되면 영남에서 민주당의 지지를 넓히겠다고 호언했는데 뜻대로 안되자 지지자들의 뜻을 다시 묻겠다고 한 것이다.

그럼 문제가 있을 때마다 재신임을 묻겠다는 얘기인가?
대통령이 재신임을 묻겠다는 것은 선출직에게 가장 기본이 되는 ‘신뢰’에 대한 것이지, 특정 정책에 대한 찬반을 묻겠다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재신임 정국이 수시로 나오기는 어렵다.

이 정권은 ‘도덕성’이 최후의 보루라고 강조하는데, 능력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은 아닌가?
모든 능력은 도덕성이 기초가 되어야 한다. 도덕성 없는 능력은 청부 조직이나 용역 회사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능력과 기술의 화신이라는 조조도 부하들로부터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얼마나 정성스레 제사를 지냈는가.

최도술씨가 왜 SK 돈을 받았다고 보는가? 빚 갚을 게 그리 많았나?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서는 지금 말하는 게 적절치 않은 것 같다.

SK가 대선 직후 노대통령 쪽에 줄을 대려고 혈안이 되었다는 얘기가 많다. 안희정씨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는데, 만난 적이 있나?
SK가 어떤 노력을 했는지, 중간에 누가 끼었는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나는 SK쪽 사람을 만난 적도, 돈을 받은 적도 없다는 것이다.
두어 달 전인가 ‘집권 여당이 정치 자금을 요구하지 않아 재계가 당혹해 하고 있다’는 단신이 보도된 적이 있다. 그게 바로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증거다. 친구들이 사준 SM5도 빼앗기고 그저 죄송하다고 해야 하는 처지 아닌가. 노대통령 측근을 과거의 잣대로 들여다보면 안된다.

민주당 유종필 대변인은 대선 후 386 참모들이 돈벼락을 맞았다고 했다.
그 얘기는 아예 입에 담기도 싫다. 유대변인이 그런 말을 했다는 현실이 너무 가슴 아프고, 그가 당에 잔류해 대변인이 되는 과정은 지켜보신 분들이 더 잘 알 것이다. 타인의 명예와 관련된 일이면 명확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안 그러면 설득력이 떨어지고 볼썽사나워진다.

부산팀이 다 말아먹었다는 얘기는?
내부에 자꾸 싸움을 붙이려는 얘기 아닌가 싶다. 하지만 최도술 건만 해도 같은 부산 출신인 민정팀이 수사를 뭉개지 않았기 때문에 제대로 드러난 것 아닌가. “이광재 실장 등 대통령을 모신 참모들이 총선을 통해 검증받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386 측근들이 호가호위한다고 하는데, 그동안 거론된 386 측근 비리 가운데 사실로 드러난 게 뭐가 있는가?

신당까지 나서 386 측근을 나무라는 데는 그만한 잘못이 있지 않은가?
초창기에는 아마추어라고 비판하더니, 이제는 정보와 권력을 독점하고 있다며 비판한다. 부족하다, 그러니 물러나라 하면 할 말이 없지만, 호가호위라고 공격하는 건 부당하다. 그동안 거론된 측근 비리 가운데, 사실로 드러난 게 뭐가 있는가? 한국 사회는 대통령 하나만 바꿨지, 이를 보좌하는 세력을 받아들일 준비는 안되어 있는 것 같다. 새로운 세력이 등장하면 당연히 서투르고 촌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걸 가지고 하루 7백만부씩 돌린다는 메이저 언론들이 공격을 해대니, 지지자들이 ‘딸년 시집 보냈더니, 못사나 보다’ 하며 걱정하는 것이다.

이광재 청와대 국정상황실장더러 물러나라는 게 부당하다는 얘기인가?
이실장이 책임져야 할 영역이 그리 크지 않다는 얘기다. 참여정부를 놓고 사람들이 가장 걱정하는 대목은 불안하다는 것과 아마추어리즘인데, 그것은 시대 자체가 바뀌고 있기 때문에 느끼는 것이지, 몇몇 사람이 잘못하고 있어서가 아니다. ‘서태지’가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통기타에 익숙해 있던 나는 ‘이제 한국 가요계는 끝났다’고 개탄했다. 그리고 이를 새로운 장르로 받아들이는 데 3년이나 걸렸다. 이처럼 새로운 정치적 틀과 구조로 바뀌는 것 때문에 불안한 것이지, 인적 쇄신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이나 참모는 당황하지 말고 꿋꿋이 가야 하고, 국민은 애정을 가지고 지켜봐야 한다.

대통령이 이실장의 사표를 수리하는 데 반대하나?
이실장의 사표에 진정성이 있고, 천정배 의원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이런 주문을 하고 있기 때문에 괜히 ‘오기 싸움’으로 비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꼭 ‘육군본부’에 있지 않아도, 해야 할 일과 싸워야 할 전선은 널려 있다.

이실장이 총선에 나서는 것은 어떤가?
총선은 측근들이 시민권을 획득하는 과정이다. 우리가 대통령을 지지하는 분들께 가능하면 정치에 많이 참여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처럼, 대통령을 모신 참모들도 총선을 통해 검증받는 게 나쁘지 않다고 본다.

통합신당에 대한 지지도가 신통치 않다.
누군가 이런 비유를 하더라.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는 영남 벌통, 호남 벌통, 충청 벌통만 있었는데, 이제 이 벌통에 꿀이 떨어지자 벌들이 우왕좌왕하고 있다. 누군가 새 벌집을 만들기만 기다리고 있는데, 딱히 이 집이다 싶지 않더라도 해가 지면 결국 잘 집을 찾아 들어올 것’이라는 것이다. 노대통령도 평소에 정치는 맞춤복이 아니라 기성복 중에서 가장 잘 맞는 것을 고르는 것이라고 했다. 창당 과정에서 지도부가 결정되고 새 얼굴들이 모이면,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 중에 최선은 되리라고 본다. 민주당과 신당 둘 다 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지역 정당이라는 낡은 집으로 국민이 다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노대통령이 신당에 입당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원칙으로 따져 보자. 모든 국민은 정치 활동의 자유가 있고, 당헌 당규에 어긋나지 않는 한 들어오겠다는 사람을 막을 방법도 없다. 게다가 대통령이 무당파라는 것은 책임 정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다만 대통령이 입당할 경우 총선 이슈가 ‘대통령 편이냐 아니냐’로만 갈리면 다른 이슈가 묻힐 수 있기 때문에 대통령이 신중하게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미묘할수록 원칙으로 가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논산 분위기는 어떤가? 이인제 의원을 이길 수 있나?
이의원의 전국적 지명도가 높기 때문에 쉬운 게임은 아니다. 하지만 선거는 정치공학으로 따져서만 되는 일이 아니다. 봄바람이 불면 봄꽃이 피고, 찬바람이 불면 낙엽이 지듯이, 그런 시대적 흐름을 보고 유권자들이 투자 가치를 판단하리라고 본다.

지역에 얼마나 자주 가나?
재판에 불려 다니고 책도 한 권 준비하느라 그동안은 자주 못 갔다. 이제 발기인 모집도 해야 하고, 자주 갈 생각이다.

자서전을 내나?
안희정 개인이 아니라 386 세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일을 겪으며 살아왔는지, 이른바 386 코드를 보여주는 우리 시대의 기록을 준비 중이다. <안네의 일기>처럼 쓰고 싶었는데, 어떤 평가를 받을지 잘 모르겠다. 원고는 얼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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