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뉴스] "정현준씨, 실세들과 가까웠다"
  • 권은중 기자 (jungk@sisapress.com)
  • 승인 2000.1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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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어울리며 친분 과시…고려대 정책대학원 출신이 핵심 인맥
32세 청년 실업가의 빗나간 욕심에서 비롯된 정현준씨 불법 대출 사건은 발생한 지 20여 일이 지난 지금도 그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예측할 수 없다. 이 사건을 터뜨린 사람은 정씨다. 동방금고 불법 대출 혐의로 금감원에 고발된 상태에서 그는 기자회견을 자청해 “억울하다. 내가 아니라 동방금고 이경자 부회장이 불법 대출을 했다. 이회장은 금융감독원(금감원)에 10억원 로비를 했다”라고 주장했다.

단순 금융 사고로 처리될 수 있었던 사건이 순식간에 사회 문제로 비화하는 순간이었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정현준씨가 왜 금감원을 걸고넘어졌을까”라고 의아해 했다.

그렇다면 정씨는 왜 스스로 섶을 지고 불로 뛰어드는 짓을 했을까. 그는 정말 이경자씨에게 억울하게 당한 피해자일까. 결론부터 말한다면 그는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한 함량 미달 사업가로, 혼자 죽기보다 여러 사람이 함께 죽는 ‘물귀신 작전’을 구사할 수밖에 없었던 인물이다. 그의 성공 신화를 꼼꼼히 살펴보면 그가 왜 물귀신식 폭로를 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정씨의 가장 큰 원죄는 사채업자와 손을 잡은 것이다. 그는 1997년 선배들에게 3천만원을 빌려 인터넷 사업을 시작했다. 그랬던 그가 한때 수천억 재산을 가진 거부로 클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사채업자의 후광 때문이었다. 그가 ‘한국 벤처업계의 손정의’로 떠올랐던 것은 한국디지탈라인(KDL)의 대주주가 된 후였다. KDL 경영고문으로 KDL 합병·매수를 주선하던 정씨는 1999년 2월 부채가 60억원이나 되기 때문에 아무도 선뜻 나서지 않던 KDL을 직접 인수했다. 정씨는 이경자씨의 도움으로 7억원을 차입해 이 돈으로 KDL 전환사채를 인수했다.

정씨는 KDL을 인수하자마자 자신을 도와준 전주에게 발행가 천원짜리 전환사채를 발행해 주었다. 이 전환사채는 몇달 지나 코스닥 활황 덕분에 5만원선까지 올랐다. 액면 분할과 증자를 감안하면, 전주들은 100배 넘는 이익을 챙겼다. 전주들은 정사장을 신뢰했고, 정사장이 벌이는 또 다른 합병·매수에 아낌없이 총알을 제공했다. 그의 성공은 사채업자의 급전과 코스닥 시장의 거품 덕이었다. 정사장은 사채업자와 코스닥 거품을 믿었고, 결국 정해진 몰락의 길을 걸었다. 한 측근은 “정사장은 KDL 주식이 10만원까지 간다고 보았다. 그는 합리적 판단보다 본능적인 직관에 의존하는 스타일이었다”라고 평가했다.
그런 면모를 보여주는 일화는 비일비재하다. 정사장은 발행가 만원짜리 전환사채를 발행해 투자금 1백70억원을 확보해서 완벽한 독립 경영이 가능했는데도 그 돈을 다른 기업 주식을 매입하는 데 써버렸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기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KDL 자금담당 직원은 “지난해 ㅈ금고에 75억원을 회전시켜야 하는 일이 있었다. 그때 돈이 있었는데 정사장은 ㅈ금고에서 다시 돈을 빌려 75억원을 입금했다”라며, 돈을 빌려 돈을 갚는 정씨의 자금 운영을 꼬집었다. 자신이 보유한 주식 일부를 팔아 경영 자금으로 썼다면 천억원이나 되는 어음을 발행하지 않아도 되고 부도도 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오직 사채와 대출에만 의존했다.

이런 자금관을 가진 그가 동방금고와 대신금고를 인수하려고 나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금고를 인수할 때 KDL 돈을 100억원 가량 투자하고 대주주로 나섰다. 하지만 그는 금고 돈을 마음대로 쓰지는 않았다고 한다. 대신 이경자 부회장이 그의 명의로 수백억원을 융자받아 사용해 금감원 특감이 나오게 만들었다. 정씨의 인감 도장은 이경자씨가 가지고 있었다.

이씨를 든든한 후원자로 철석같이 믿었던 정씨는 합병·매수를 통해 인터넷 제국을 건설하려고 꿈꾸었다. 정씨는 1999년 2월 말에는 디지탈임팩트의 주식을 인수해 대주주가 되었다. 한 벤처업체 사장은 “정사장은 KDL을 인수한 이후 벤처 인큐베이팅 회사 10여개에 참여해 다각도로 사업을 벌인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이런 사업을 벌이면서 그는 폭넓은 인맥을 구축했다. 이 인맥 가운데는 정·관계 실세는 물론 벤처업계의 주요 인사들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벤처업계의 한 인사는 “정씨가 고려대 정책대학원 최고위 과정 출신 정치인과 자주 어울리며 그와의 친분을 과시했다”라고 밝혔다. KDL 직원들도 회식 자리에서 정씨가 정치인들 이름을 거론하는 것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벤처업계 인사들과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수천억원 재산을 보유한 그에게 사람이 몰리는 것은 당연했다. KDL의 한 직원은 “일부 벤처 기업가들이 차용증도 쓰지 않고 정사장에게 10억원을 빌려간 적도 있다”라고 말했다. 검찰은 정사장과 비서실인 알푸투로 관계자들이 10억원대 돈을 어디다 썼는지 기억도 못한다며 혀를 찼다. 그를 믿고 투자자들이 맡긴 돈은 그렇게 흔전만전 쓰였다
물론 정씨는 인터넷 사업에 나름의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측근인 이 아무개 이사가 올 1월 지주 회사 설립 계획을 보고하자 정씨는 검색 엔진인 한국알타비스타와 엠파스를 인수하기 위한 펀딩에 들어갔다. 비서실 조직인 알푸투로도 이 작전을 위해 4월에 설립했다. 그러나 주가가 급락하자 주식을 담보로 대출받는 식으로 사업을 확장하던 그의 사업에 급제동이 걸렸다. 펀딩도 원활하지 않았다(10쪽 표 참조).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해 자금이 필요했던 그는 올해 초부터 어음과 당좌 수표를 발행했다. 4월 이후 만기가 도래하면서 자금 회전에 대한 압박이 본격적으로 가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 알타비스타 본사가 한국에 실사를 나온 후 대주주 지분 문제와 경영 상태 등을 문제 삼아 8월10일 계약을 파기하자, KDL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이 빠르게 퍼졌다. KDL의 한 간부는 “알타와 합작하려면 한국 알타가 어떤 식으로 경영해 왔는지 파악해야 하는데 정사장은 그런 일조차 하지 않았다”라며 혀를 찼다.

그가 지주 회사인 디지탈홀딩스를 만들려고 본격적으로 움직인 것도 자금난이 심각해진 7월부터였다. 그것 역시 사업적 전망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돈 때문이었다. 평창정보통신에 75억원을 대출해 주면서 담보로 맡은 평창 주식 4백80만주를 시장에다 내다 팔고 있었으면서도 그는 지주 회사를 만들겠다고 떠들고 다녔다(공정거래법상 지주 회사는 자회사의 주식을 50% 이상 보유해야 한다). 지난 8월에는 소액주주 주식도 50만주나 공매했다.

그는 주주뿐만 아니라 KDL 임직원들도 속였다. 그는 디지탈홀딩스에 투자하면 이익을 보장하겠다며 KDL 임직원들에게서 받은 20억원마저 삼켜버렸다. 또 위기의 순간에도 경영 상황을 직원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KDL의 한 고위 간부는 “부도 얼마 전에도 정사장은 부채가 8백50억원 규모이고 디지탈홀딩스가 천억원을 펀딩하면 회사가 살 수 있다고 말했지만, 부채는 이미 2천억원대였고 펀딩은 현금 1백70억원밖에 되지 않았다”라며 혀를 찼다.

그러나 그는 평소 ‘사업상의 어머니’라고 생각했던 이경자씨에게 배신을 당했다. 이씨가 약속을 어기고 담보로 가지고 있던 KDL 어음을 자금 시장에 돌려버린 것이다. 어음이 갑작스럽게 돌자 정사장은 당황했고, 결국 부도를 맞았다. 정사장은 이씨가 약속을 어기며 어음을 돌리고, 자신 명의를 이용해 대출받아 자신이 구속될 위기에 처하자 결국 이씨를 걸고넘어졌다. 이씨가 담보로 잠겨 있던 평창의 주식을 팔아버린 것으로 보아서는 이씨 역시 상당히 자금 압박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씨와 정씨의 사이가 틀어지기 전 평창정보통신 주식 매각과 동방금고 특감과 관련해 둘 사이에 어떤 이야기가 오고갔는지 아직 알려진 바가 없다. 두 사람은 마지막까지 서로가 살기 위해 어떤 거래를 시도했지만 실패하자 이후 서로를 죽이는 길을 걸었는지 모른다. 사채업자와 벤처업자의 부도덕한 밀월이 끝나자 정씨는 혼자 죽을 수 없다며 스스로의 비리를 세상에 까발렸다는 추측이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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