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 북한행 ‘주춤주춤’
  • 변창섭 ()
  • 승인 2000.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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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브라이트 방북에도 만족할 ‘미사일 해법’ 못찾아…미국 언론도 부정적
“우리는 북한의 미사일 계획에 상당한 우려를 갖고 있다. 아직 북한에 갈지 여부는 결정하지 않았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북한 방문 가능성과 관련해 지난 10월28일 처음으로 말문을 열었다. 이 날 발언은 물론 최근 평양에 다녀온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보고를 받은 뒤 나왔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 날 그는 북·미 관계가 1990년대 중반 핵위기를 극복하며 ‘지금껏 올바른 방향으로 먼 길을 걸어왔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미사일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방북이 실현될 수 없을 것임을 시사했다.


‘현금 보상’ 대 ‘위성 지원’ 대립

현재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등 주요 언론의 논조도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에 부정적이다. <뉴욕 타임스>는 최근 ‘김정일의 나라’라는 사설을 통해, 미사일 문제에 관해 구체적인 양보를 보장받지 못할 경우 클린턴은 북한을 방문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또 <워싱턴 포스트>도 북한 인권 상황을 거론하며, 올브라이트 장관이 북한의 독재자와 축배를 들면서도 인권 문제를 강력하게 거론하지 못해 미국의 신뢰성을 떨어뜨렸다고 비난했다.

예상했던 대로 올브라이트 장관이 방북한 최대 목적은 미사일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는 일이었다. 그녀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가진 두 차례 회담 결과 ‘북한의 미사일 수출은 물론 개발과 실험 등에서 중요한 진전을 이루었다’고 발표했지만, 그 진전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밝히기는 거부했다. 특히 그녀는 10월23일 김위원장과 집단체조를 관람했을 때 김위원장이 ‘장거리 미사일 발사는 지난번 발사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자랑스럽게 소개하기도 했다.

미국측 외교 소식통들에 따르면, 올브라이트 장관은 김위원장과의 회담에서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계획 중단을 대가로 한 미국측의 북한 위성 발사 지원 문제를 집중 거론한 것 같다. 따라서 올브라이트 장관이 ‘미사일 문제에 중요한 진전을 이루었다’고 말한 것으로 미루어 아마도 이 문제에 대해 양측의 공감대가 이루어졌을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이다. 클린턴 행정부의 한 고위 관리는 10월25일 <뉴욕 타임스>와 가진 회견에서 ‘미국의 주된 관심은 북한이 과연 어느 정도까지 미사일 연구와 개발을 중단하며, 나아가 리비아와 이란 등에 대한 미사일 수출까지 중단할 것이냐에 있다’고 털어놓았다.

물론 미사일 문제에 관한 북한의 입장은 명확하다. 우선 미사일 개발 문제에서 북한은 이를 ‘주권 사항’으로 간주해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북한은 미사일 수출과 관련해 미국의 현금 보상을 전제로 타협할 수 있다는 신축적 입장을 보여왔다. 주요 외화 획득원인 미사일 수출을 중단할 경우 미국은 중단 시점으로부터 최소 3년 동안 매년 10억 달러를 보상하라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미국측의 고민이 있는 듯하다. 현실적으로 북한의 체제 담보 수단인 미사일 카드를 포기하라고 요구하면서 이에 상응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정통한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미국은 북한과의 미사일 협상에서 우선 북한의 미사일 개발 중단을 전제로 인공위성 발사 지원 문제를 거론할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이 경우 미국은 한 번 실험에 천문학적인 돈이 드는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를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컨소시엄을 통해 지원하는 방안을 제의하겠다는 방침이다. 나아가 지난해 윌리엄 페리 북한정책조정관이 제시한, 북한을 미국이 주도하는 미사일통제기술협약(MTCR)에 가입시키는 문제도 적극 제기한다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미국이 원하는 식의 해법이 나오지 않을 경우 클린턴의 북한 방문은 어렵지 않겠느냐는 것이 워싱턴의 요즘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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