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천년 첫 어린이날
  • 이문재 기자 (moon@sisapress.com)
  • 승인 2000.05.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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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 방정환이 어린이날을 제정할 때 ‘어린이’는 파격적인 신조어였다. 아해의 높임말이었다. 소파가 어린이라는 ‘새로운 인격’을 주창하게 된 배경에는 ‘어린이를 때리지 말라. 어린이를 때리는 것은 한울님을 때리는 것이다’라는 해월 최시형의 큰 가르침이 있었다. 1922년 5월, 소파는 어린이날을 선포하면서 ‘10년 후의 조선을 생각하라’는 전단을 서울 시내에 뿌렸다.

2000년 첫 어린이날 아침, 해월과 소파의 말씀은 ‘오래된 미래’처럼 여러 겹의 메아리를 남긴다. 공경(恭敬)을 강조한 해월의 저 한마디는 생명 사상의 한 척추로, 소파의 구호는 세계화·미래화를 직시하라는 경고문으로 읽힌다. 어린이를 섬길 수 있다면, 풀과 나무, 물과 공기를 함부로 대할 수 없다. 자연을 지배할 대상으로 본 인간 중심주의는 전적으로 어른(남성)의 산물이었다. 자연은 후손으로부터 빌려 쓰는 것이라는 생태학적 세계관을 인정한다면 ‘10년 뒤를 생각하라’는 유언은 묵시록이 아닐 수 없다.

현재 60억 인류 가운데 12억 명이 살아서 22세기를 맞이할 것이라는 예측이 있다. 평균 연령이 곧 100세를 넘어서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손뼉을 치며 어린이날을 반가워하는 어린이 대부분이 22세기 말엽에 ‘지금·여기’를 돌아보게 된다.

생각의 속도를 추월하려는 디지털 기술과, 유전자를 지휘하려는 생명공학이 선도하는 이 새로운 세기의 입구를, 21세기 말엽의 할아버지·할머니 들은 어떻게 돌이킬 것인가. 그때 그 노인들은 100년 전의 부모들을 추억하며 섬김과 나눔의 지혜를 일러준 선각이라고 고마워할까, 아니면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 욕망의 노예라며 저주할까. 후자의 경우라면, 아마, 인류에게 22세기는 없을지도 모른다.

서로 섬기고 나누어라. 두 눈 크게 뜨고 앞날을 내다보아라. 78년 전 해월과 소파가 어른들을 향해 남긴 두 말씀이, 어린이날 아침, 서늘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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