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태우고도 산 못 지키는 산림 정책
  • 李文宰 편집위원 ()
  • 승인 2000.04.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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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산불, 4년 전 ‘복사판’…근시안적 대책보다 장기적 산림 정책 세워야
‘세계에서 가장 짧은 기간에 민둥산을 푸르게 가꾼 나라.’ 강원도 고성과 강릉 등지에서 대형 산불이 잇따르자, 지난 4월8일 관계 장관들이 발표한 담화문의 도입부이다. 우리나라가 불과 30여 년 만에 민둥산을 사라지게 한 산림 녹화의 모범국임에는 틀림없지만, 녹화 이후, 즉 산림 관리나 정책은 후진국이다. 한마디로 심기만 하고 가꾸지는 않은 것이다.

대형 사건·사고가 터질 때마다 언론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며 질타했지만, 이번 고성 산불을 지켜보면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은 것 같다. 1996년 4월에 일어났던 산불과 너무 흡사하다. 아직 논란을 거듭하고 있지만 최초 발화 지점이 4년 전처럼 군부대이며, 이번에 산불이 난 지역의 약 80%가 4년 전과 겹친다. 산불 발생 시기도 우연치 않게 총선 직전이었으며, 강풍으로 인해 조기 진화가 불가능했다는 점도 닮았다.올 들어 발생한 산불은 5백여 건. 이 가운데 80%가 등산객·성묘객·농부 들이 저지른 사소한 부주의가 원인이었다. 산불은 곧 인재라고 확신하고 있는 당국은 산불을 낼 경우 법정 최고형으로 다스리겠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의 녹화 강박증과 지속적인 산림 관리 부재, 산림에 대한 투자 의욕 상실도 산불의 큰 원인(遠因)인지 모른다.

1970년대의 산림 녹화사업은 경제성이나 미래성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은 ‘융단 폭격’이었다. 그 결과 전체 산림의 88%를 차지하고 있는 30년생 미만 어린 나무들을 방치했다가는 ‘세계적인 황폐림’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간벌(솎아내기)만 제대로 해도 산불 대형화를 막는 동시에 질 좋은 목재를 생산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전체 산림의 70%를 차지하는 사유림 대부분이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산주(山主)의 약 70%가 산지를 1ha 미만 소유하고 있어 간벌과 같은 투자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지속적인 관리와 투자가 절실한 시점이지만 거개의 산림이 버려져 있는 것이다.

산림청은 올 가을 산림 이용과 보존을 위한 기본법을 국회에 상정해 ‘지속 가능한 산림 관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제야 경제성과 미래성이 결합된 ‘생명의 숲’을 위한 ‘외양간’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산불 대책은 그때 가서 새로운 차원을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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