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필 가산점 논란 ''갈수록 눈덩이''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2000.0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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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 협의 개선안 뭇매 맞아…일선 공무원도 “법제화할 수 있을지 의문”
두마리 토끼를 쫓다가 다 놓친다더니 정부·여당이 지금 그 꼴이다.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이 난 군필자 가산점 부여 제도를 사실상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국민회의가 발표한 이후 군필자·미필자 모두가 아우성을 치고 있다.

지난 1월6일 국민회의는 국방부·국가보훈처와 당정 협의를 거친 결과 ‘군 복무 가산점을 그대로 유지하는 대신 여성·장애인 등 군 미필자도 봉사 활동을 하면 가산점을 준다’는 요지의 정책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군 복무 및 대통령령이 정하는 사회 복지 시설 등에서 봉사한 경력이 있는 남녀가 공무원 및 공공기관에 취업할 때는 총점의 3% 범위(1개월당 0.1%) 안에서 가산점을 받게 된다.

반발은 먼저 여성계 쪽에서 터져 나왔다. 한국여성단체연합·한국여성단체협의회 등 여성단체는 헌법재판소 판결이 있은 뒤 군필자의 거센 반발을 의식해 ‘군필자에 대한 국가 차원의 보상책을 수립하는 등 정부가 합리적인 대책 수립에 나서라’는 성명서까지 발표했었다. 그러나 당정 협의로 상황이 다시 뒤집히자 이들은 이것이 ‘헌정 질서를 거스른 명백한 위법 행위’라며 분노를 터뜨리고 있다.

“여성부 신설하면 뭐하나”

여성계를 더욱 화나게 한 것은, 정책안이 발표된 시점이다. 여성부를 신설하겠다는 대통령 신년사에 여성계는 크게 고무되어 있었다. 국민회의가 군 가산점제 존치 방침을 발표한 그날 오후에도 김대중 대통령은 한국여성개발원에서 열린 여성계 신년 하례회에 참석해 ‘이번 총선 비례 대표제에 여성 할당 30%를 실천하겠다’고 밝혔다. 결국 여성계로서는 ‘오전에 뺨 맞고, 오후에 위자료 받은 격’이다.

정부·여당을 더욱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여성계는 그렇다 치고 군필자의 불만 또한 도무지 숙어질 기세를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위헌 판결 이후 보름 가까이 헌법재판소·여성단체 홈페이지 게시판을 무차별 공격하던 군필자들이 이번에는 국민회의 게시판에 몰려들었다. ‘맨날 싸움만 하는 국회가 언제 그런 법을 통과시킬 것인가. 총선 끝나면 오리발을 내밀 게 뻔하다. 절대로 속지 말자.’(SPDH96) ‘가산점 돌려주면 군 복무 보상 끝이냐? 우리는 합당한 보상을 요구한다.’(KKK999)

이번에 당·정이 밝힌 내용은 사실 법제화하기에 무리가 따른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당장에는 군 복무와 봉사 경력을 대등하게 평가하는 것 자체가 논란의 소지가 있다. 봉사 경력을 인정하는 기준과 방식도 문제다. 현재 시행 중인 중고생 봉사 활동 점수화 제도에서처럼 봉사 기록을 허위 작성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는데, 이를 관리·감독할 방안이 모호하다. 임용 이후 호봉·경력을 산정할 때 군 미필자의 봉사 경력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골칫거리이다.

이렇게 허점투성이 정책안이 나오게 된 것은, 여당이 당정 협의의 기본에도 충실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일선 공무원의 지적이다. 당정 협의라면 말 그대로 관련 부처 의견을 폭넓게 수렴했어야 하는데, 이번에 여당은 국방부·국가보훈처만 협의 대상으로 삼았다. 국가 고시를 대부분 주관하는 행정자치부, 여성계 의견을 대변하는 여성특별위원회는 여기에서 제외되었다.

“1994년과 1998년 가산점 비율과 적용 범위를 둘러싸고 정부 부처 간에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바람에 군 복무 가산점 제도가 원점으로 돌아간 일이 있다. 이처럼 민감한 사안을 공청회 한번 거치지 않고 개정한다는 것 자체가 만용이다”라는 것이 국회 여성특별위원회 한 관계자의 지적이다.

‘남성 대 여성’에서 ‘국가 권력 대 시민권’으로. 군 가산점 존치 방침으로 인해 전선(戰線)이 달라진 것만은 분명하다. PC통신과 인터넷에는 ‘총선 때 두고 보자’는 군필자·미필자의 구호가 요란하다. 만약 ‘표’가 목적이었다면 집권 여당은 제 꾀에 스스로 넘어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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