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성 평통 부의장 "DJ, 지역ㆍ정파 넘어서야"
  • 金鍾民 기자 ()
  • 승인 2000.0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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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성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평통) 수석 부의장이 민주당 대표로 거론되고 있다는 기사와, 그럴 가능성이 없어졌다는 기사가 함께 조간 신문을 장식한 지난 1월10일 아침 그를 신당동 자택에서 만났다. 그는 그동안 자신의 움직임과 관련해서 정치권 주변에서 떠돈 여러 얘기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허심탄회하게 밝혔다. 이부의장은 신당 대표 문제에 대해서는 대통령의 결단이 중요한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현재로서는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쪽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호용 전 의원 등과 이른바 TK신당을 추진한다는 얘기가 있었다.

대구·경북 지역에서 여러분들을 만났다. 그 가운데는 그런 얘기를 하는 분도 많았다. 그러나 나는 절대로 안된다고 했다. 안한다고 분명히 말했다. 나라가 지역으로 나뉘어 이렇게 고통받고 있는데 여기서 또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정당을 만든다면 온 나라를 갈라 놓자는 얘기 아니냐. 이것은 나의 철학에 전혀 맞지 않는 일이다. 정호용 전 의원 역시 TK신당이니 하는 것들을 만들 분이 아니다. 만일 정치를 한다면 TK를 포함해서 전국의 인재들을 아우르는 형태로 하지 지역당을 생각할 분이 아니다.

얼마 전 대구·경북의 원로들을 만났을 때 무슨 얘기를 나눴는가?

원로들께서 나라 걱정을 많이 하셨다. 나의 정치적 행보에 관해서도 여러 의견이 있었다. 무소속으로 출마하라는 얘기도 있었고, 대구·경북 중심의 신당을 만들라는 얘기도 있었다. 다수 의견은 여권이 추진하는 신당에 참여하라는 것이었다. 지역 화합을 위해 지역적으로 한계가 있는 현정부를 돕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얘기가 가장 많았다.

여권에서 민주당 대표를 제안했다는 얘기가 있다. 사실인가?

아직 대통령께 직접 권유를 받은 적은 없다. 그러나 그러한 얘기를 간접적으로 들은 바는 있고 내 뜻을 밝혔다. 구체적인 얘기는 밝힐 수가 없다.

일부에서는 공동 대표제를 제의했기 때문에 거절했고 단독 대표라면 수용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얘기하는 사람도 있는데.

하나는 맞고 하나는 틀린 얘기다. 공동 대표제를 반대했다는 얘기는 맞다. 당을 맡으려면 책임을 지고 소신 있게 일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구와 공동으로 대표를 맡는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단독 대표를 수용할 의사가 있다는 것은 틀린 얘기다. 공동 대표냐 단독 대표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의전은 전혀 문제가 안된다. 국민을 납득시키고 정말 나라를 위해서 책임 있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지, 자리에 연연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 여건이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지금 가장 중요한 문제는 지역 분열을 극복하는 문제다. 우리 정치가 본래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지역주의가 발목을 잡고 있어서이다. 이것을 타파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의 첫 번째 과제다. 나는 국민 대통합을 이루는 것을 가장 중요한 정치 철학으로 생각해 왔으며, 내가 정치를 한다면 지역주의를 타파하는 데 온몸을 던지고 싶다. 이러한 역할을 책임 있게 할 수 있는 여건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일부에서는 이부의장이 공천 지분이나 차기 대권 등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왔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를 음해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무슨 몸값을 부풀리기 위해 독자 신당을 만들려고 한다느니 하는 얘기까지 나왔다. 참담한 심정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내 몸값에 비해 과분한 대접을 받은 사람이다. 국무총리도 했고 새 정부 들어서도 중요한 일을 맡았다. 여당 대표 얘기도 오히려 나에게는 너무 과분한 제안이다. 심지어는 당 대표 이후에 대한 제안을 받기도 했다. 차기 대권이니 하는 문제는 나에게는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만일 지금 여당 대표를 맡으면 앞으로 2년 동안은 차기고 뭐고 다 잊어 버리고 정말 나라를 살리는 국민 통합을 위해 모든 것을 던져야 한다. 그렇게 해도 갈라져 있는 민심을 하나로 통합할 수 있을지 자신이 서지 않는 상황이다. 만일 정치를 한다면 이러한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이 필요하다는 생각뿐이지 공천 지분이니 차기 대권이니 하는 문제는 전혀 관심이 없다. 진심이다.독자적인 신당 창당을 추진한 적은 없는가?

그럴 생각이 있었다. 사실 원래는 정치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현정부가 잘되기를 진심으로 바랐으나 지난 2년 동안 많이 실망했다. 나라가 참 어려운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를 안하면 나 하나는 욕 안먹고 편하게 살 수 있지만 내가 그 동안 나라와 국민들에게 받은 은혜를 생각하면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난해 가을 우리 정치를 본궤도에 올리는 데 역할을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길은 두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여권 신당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나라가 어려우니 대통령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내가 생각하는 일을 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는 시종일관 화합을 실현하고 국민을 진정으로 위하는 정치 세력이 있으면 고문으로라도 참여해서 돕고 싶었다. 구체적인 얘기가 진행되기도 했다. 내 목표는 대통령이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정치가 제대로 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내가 무슨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허화평 전 의원과 한국신당을 함께하기로 했다는 보도도 있었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 허씨는 거짓말을 할 사람이 아니다. 왜 그런 얘기가 나왔는지 모르겠다. 허씨와 만난 것은 사실이고, 나라 걱정을 많이 했다. 그 분은 나라를 위하는 마음이 있고 우리 정치의 문제점에 대해서 뜻이 통하는 내용이 많았다. 그러나 당을 같이한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그러면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현재의 심경을 알고 싶다.

아직 확실한 결심이 서지 않았다. 지금 무척 고민하고 있다. 획기적으로 생각을 바꾸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역시 정치를 안하는 것이 옳지 않나 하는 쪽으로 생각하고 있다. 작년 가을 정치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내 나름으로는 정치를 바로 세우기 위해 작은 역할이라도 하기 위해 고민도 많이 하고 노력도 많이 했다. 그러나 내 생각이 있는 그대로 전달되지 않아 마음이 많이 상했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내 생각이 전달될 때까지 밀고 나가 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통속적인 정치인처럼 비치는 것이 싫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오만한 생각이지만 그만큼 순수하기도 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런 오만과 순수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 같다.

김대통령이 만나자고 하지 않겠나? 대통령이 직접 신당 대표를 권유하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지 않나?

아직 약속을 잡지는 않았다. 대통령의 결단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IMF를 극복할 때 그랬던 것처럼 모든 것을 다 바쳐서 분열된 지역과 갈라진 민심을 통합하겠다는 결단이 필요하다. 지금 나라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대통령이 지역과 정파를 넘어서는 대승적 모습을 보여 지역을 막론하고 모든 국민을 감동시키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여권의 책임 있는 사람들도 자기 개인의 욕심을 버리고 대통령과 함께 몸을 던지겠다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나는 김대통령을 좋은 대통령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있다. 정말 우리 정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여건이 필요한 것이지, 자리나 권력에는 연연하지 않는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지금은 자신이 없다. 지금이라도 여당이 잘해 주기를 바라지만 내가 문제를 해결해 가기에는 좀 늦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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