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 걸린 삼성그룹의 후계 구도
  • 張榮熙 · 蘇成玟 기자 ()
  • 승인 2000.0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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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암 가능성 유력… ‘3세 체제 개막’ 관측도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58) 중병설은 어디까지 사실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회장이 폐암에 걸렸다는 세간의 의혹은 사실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앞으로 삼성그룹 경영 구도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재계 관계자들은 벌써부터 이회장의 장남 재용씨(31)가 경영 전면에 나설 가능성을 점치는가 하면, 당분간은 SK그룹 같은 전문 경영인 과도 체제가 등장하리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이회장의 건강 이상설은 오래 전부터 의료계에서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하지만 이번만은 심상치 않은 것이 확실하다. 이회장은 1월3일 모친상을 당하고도 끝내 발인에 참석하지 못했으며, 귀국 시점마저 불투명한 상태다. 이회장은 도대체 어떤 상태일까.

출국 직전 암센터 진료 예약

지난해 12월12일 미국으로 출국한 이회장은 현재 텍사스 주 휴스턴에 있는 MD 앤더슨 암센터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MD 앤더슨 암센터는 미국 3대 암 전문 병원의 하나. 이회장은 이미 출국 직전인 지난해 12월10일 이 병원 흉부종양과(과장 홍완기)에 진료 예약을 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도 삼성측은 이회장이 지난해 11월 결핵성 임파선염 진단을 받았던 데다 일교차가 20도에 이르는 텍사스 주 기후에 적응하지 못해 지난해 말부터 폐렴 증세마저 보이는 등 폐암으로 전이될 우려가 높아져 이 병원을 찾아가게 되었다고 설명했었다. 이회장이 애초부터 실리콘밸리 등 미국의 디지털 산업 현장을 둘러보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다기보다는 폐암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갔다는 추론이 가능한 것이다.

이회장이 MD 앤더슨 병원에서 검사를 받기 시작한 것은 올 1월3일. 이 날 혈액 검사를 받았고 7∼8일에도 엑스레이 검사와 혈액 검사를 다시 받았다.

이와 관련해 SBS는 1월10일 저녁 8시 뉴스에서 이 병원 진료 기록을 근거로 이건희 회장이 폐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확정적으로 보도했다. 8시 뉴스에 따르면, 이회장은 이미 9일부터 ‘케모세라피’라는 항암 처방을 받고 있다. 또 이회장은 휴스턴의 한 호텔에 머무르며 통원 치료를 받고 있지만 조만간 입원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회장 담당 의사는 폐암 등 호흡기 계통 암 전문의인 진 리(한국명 이진수) 박사.

이회장이 폐암에 걸렸다는 주장은 이미 서울에서도 제기된 바 있었다. 의료계의 한 관계자는 “이미 지난해 11월 삼성서울병원에서 정밀 건강 진단을 받는 과정에서 폐 부위에 심각한 이상이 발견된 것으로 안다”라고 주장했다. 어디서 암세포가 생겼는지는 모르지만 암이 폐에 전이된 상태였다는 것이다.

이회장이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는 즉각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진행 속도가 알려지지 않았을 뿐 폐암이 거의 기정 사실로 굳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삼성 관계자들이 이회장 중병설과 관련해 해명한 내용은 대부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삼성측은 빈소에 모습을 보이지 않는 이회장을 수상쩍어 하는 시각이 많아지자 독감이 심해 폐렴 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했다가, 중병설이 더욱 확산되자 지난해 11월 삼성서울병원에서 결핵성 임파선염 진단을 받은 사실이 (폐암설로) 와전된 것 같다고 해명했었다. 삼성 관계자들도 뒤늦게 알았을 가능성이 작지 않다. 폐암이 유전성이 강한 병이라는 의료계 소견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이회장은 아버지(고 이병철 회장)와 같은 모진 운명의 시련을 겪게 되는 것일까. 물론 다행히 크게 진전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견되었다면 완치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그러나 만약 이회장이 집무를 볼 수 없을 정도로 위중한 상태라면 삼성그룹 경영에는 어떤 파장이 미칠까.

삼성이 3세 경영 시대를 맞이하는가 하는 질문은 현재로서는 조심스럽기 그지없다. 당연하지만 삼성 관계자들은 말도 꺼내지 말라는 식의 불쾌한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삼성이 이미 재용씨로 후계 구도가 옮아가는 데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는 사실이다. 참여연대로부터 변칙 증여라는 집요한 공격을 받고 지난해 국정 감사에서도 호된 추궁을 당했지만, 삼성은 재용씨가 경영권을 장악할 수 있도록 ‘무혈 혁명’을 이루었다.

물론 재용씨는 비상장사인 삼성에버랜드와 삼성SDS의 지분을 각각 31.4%, 7.4% 갖고 있으며 삼성전자 지분 0.78%를 소유하고 있을 뿐이다(이건희 회장은 삼성생명 지분 20.27% 외에 에버랜드 4.7%, 전자 2.03%, 물산 1.62%, 증권 0.09%, 화재해상보험에 0.32% 지분을 갖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삼성이라는 거대 그룹의 경영권을 장악할 수 있는가. 이런 ‘요술’은 다름 아닌 에버랜드와 삼성생명에서 나온다. 재용씨는 에버랜드 지분을 31.4% 갖고 있는데 아버지와 세 여동생의 ‘우호 지분’까지 합치면 총 67.6%를 소유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기실 이것은 별 것 아닐 수 있다.

과도 체제 가능성 배제 못해

핵심은 재용씨가 소유한 에버랜드가 삼성생명의 2대 주주(19.34%)라는 사실. 1대 주주는 이회장(20.27%)이다. 삼성자동차 처리를 위해 4백만 주를 내놓고도 이회장은 1대 주주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회장과 에버랜드가 삼성생명 1∼2대 주주라는 사실이 삼성그룹 경영권 장악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요소다. 삼성생명이 전자·물산·증권·화재해상보험·투자신탁증권 등 삼성 주요 계열사의 1대 주주로 지주 회사 구실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아래 도표 참조).

또 삼성생명이 최대 주주인 삼성전자는 전기·SDI·SDS·항공산업·중공업 등의 최대 주주이다. 다시 말해 그룹 계열사 전체가 복잡한 그물망을 구성하고 그 정점에 삼성생명이 버티고 있어 삼성생명만 장악하면 그룹을 장악하게 되는 것이다.

휴스턴에서 아버지를 간병하고 있는 재용씨는 현재 미국 하버드 대 학 비지니스스쿨 박사 과정에 있는 학생 신분이다. 후계자가 경영 일선에 있는 현대 등 다른 그룹과는 처지가 매우 다르다. 재용씨는 인터넷 비즈니스에 매우 관심이 높다. 늦어도 올 3월께 삼성SDS에서 분사되는 유니텔(PC 통신 서비스 업체) 사장을 맡아 일단 경영 전면에 나서리라는 예측이 나오기도 했다. 삼성의 한 관계자가 “그 정도로는 스케일이 너무 작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그룹 인터넷 사업을 총괄 주도하게 될 가능성도 높다. 삼성 SDS와 삼성물산을 축으로 인터넷 쇼핑몰·사이버 무역·인터넷 방송·보안 서비스 사업 등을 적극 전개하리라는 것이다.

이런 구상은 이회장 용태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머지 않아 3세 체제가 열리리라고 보는 견해는 그리 많지 않다. 삼성 사정에 밝은 재계의 한 관계자는 매우 조심스러워하면서도 이런 관측을 내놓았다. “이회장 병세가 중하더라도 당분간 현행 체제를 유지할 가능성이 더 높다. 그동안 인터넷 사업 등에서 재용씨가 본격 경영 수업을 받을 것이다. 물론 당분간 전문 경영인을 내세운 과도 체제로 갈 공산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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