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속 드러나는 한국야구위원회 횡포
  • 崔寧宰 기자 ()
  • 승인 2000.0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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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계약서 위법투성이…시민·야구팬 “힘내라 힘”
프로야구 선수협의회(선수협의회) 파문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시민들의 성원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야구 팬들이 PC 통신망을 통해 자발적으로 만든 ‘팬들의선물’은 독자적으로 집회도 갖고. 선수들에게 이동 차량을 제공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펴고 있다. 인터넷에도 선수협의회를 지지하는 홈페이지(http://www.ww. or.kr/baseball /main.htm)가 개설되어 성원이 빗발치고 있다.

시민단체들도 여기에 가세하고 있다. 경실련·민변·참여연대·민주노총은 한결같이 성명서를 내고 선수협의회를 지지하고 있다.

선수들은 1월21일 선수협의회를 결성하면서 한국 프로 야구계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몇 가지 지적하고 나섰다. 첫 번째는 야구선수 계약서와 한국야구위원회(KBO) 규약이다. 원칙적으로 계약은 일방과 다자 사이의 약속이기 때문에 그 내용이 다양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 프로 야구의 경우 모든 선수가 한국야구위원회가 미리 만들어 놓은 ‘통일 계약서’ 양식으로 구단과 계약한다. 구단 간의 불필요한 경쟁을 막는다는 것이 이유이다. 이 통일 계약서도 자세히 뜯어보면 구단 입장만을 고려하고 상대적으로 야구 선수 보호와 이들의 이익은 무시하고 있다. 또 계약서는 90% 이상이 한자로 씌어져 있다. 운동만 해온 야구 선수들은 한자로 된 계약서를 해독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그런데도 구단은 대부분 계약할 때 선수들에게 중요 부분을 설명 하지 않는다. 선수들은 거의가 계약서 내용도 모른 채 계약하는 것이 현실이다. 야구 선수가 아닌 일반인도 보험 계약을 하면서 이같은 피해를 보는 사례가 많다.

구단들의 이같은 관행은 엄연히 위법이다.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 제 3조’에 따르면, 구단이 한자로 된 선수 계약서를 보여주면서 중요 부분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면 ‘명시, 설명 의무 위반’으로 무효가 된다고 볼 수 있다.

한국야구위원회 규약도 문제이다. 1995년 12월18일 서울 남부지방법원은 이 규약이 프로 야구 구단들이 합의한 구단들의 집합적 조합 계약일 뿐라고 판결했다. 이 규약이 독점적인 약속을 할 수 있도록 특별한 법률적 근거를 갖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이는 구단 마음대로 불공정 거래 행위를 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KBO에는 구단 관계자만 참여

그런데도 현실은 다르다. 이 규약은 국회가 제정한 법률처럼 프로 야구계에서 막강한 규제력을 갖고 있다.

선수들은 한국야구위원회 조직 자체의 문제점도 들었다. 한국야구위원회는 프로 야구를 이끌어 가는 주체이며 문화관광부에 등록된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프로 야구에 대한 모든 의사를 결정하는 기관이다. 그런데도 한국야구위원회에는 선수·심판·원로 야구 관계자가 모두 빠지고 오로지 8개 구단 관계자만 참여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총재는 두산 구단주이고 사무총장은 해태구단 단장이다. 이사회 8명은 모두 8개 구단 구단주이다. 말하자면 구단주 모임이 한국야구위원회인 셈이다. 그래서 한국야구위원회 정관과 규약은 구단주의 집합체인 이사회 결정에 따라 수시로 바꿀 수 있다. 그러나 선수들의 이해와 요구를 반영하는 제도적 장치는 전혀 없다. 그 자체가 공정거래법 위반이라고 볼 수 있다.

프로 구단의 불평등한 이윤 배분 구조도 문제이다. 현재 8개 구단의 주요 수입원은 방송 중계권료·입장료·광고 수입이다. 그런데도 그 내역을 찬찬히 뜯어보면 수익은 의도적으로 축소되어 있다. 그 결과 구단들은 1년에 적자가 50억∼100억 원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수익(효과)이 의도적으로 축소된 대표적인 것이 광고 부문이다. 현재 구단을 운영하고 있는 기업들은 1년에 몇백억원씩 광고비를 쓰고 있다. 그런데 이승엽 선수를 예로 들면 지난 한 해 동안 이선수가 신문에 노출된 빈도가 1천6백 건을 넘고 있다. 그 광고 효과는 엄청나다. 프로 야구 선수들은 그 자체가 움직이는 광고판이다. 헬멧이고 유니폼이고, 이들은 온몸에 광고를 달고 경기를 한다. 이는 또 전국에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된다. 이 효과를 광고비로 따진다면 가히 천문학적인 숫자일 것이다. 그런데도 구단들은 이 엄청난 광고 효과를 거의 수익으로 잡지 않는다.

구단을 갖고 있는 기업은 광고 효과를 시장에서 가격이 정해져 있는 광고비로 구단측에 지불하지 않고 구단 지원비라는 명목으로 지급한다. 당연히 액수가 시장 가격보다 낮고, 일종의 시혜처럼 느껴진다. 이는 그 자체가 탈세 수단이기도 하다. 스포츠 마케팅 전문 기구들에 따르면, 구단 모기업들이 지원하는 1년에 백억원 미만의 투자액은 홍보 효과를 감안하면 턱없이 낮은 액수라는 것이다. 구단이 모기업에 보고하는 자료에서도 투자액에 견주어 최소 5∼10배 정도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나와 있다. 기업들이 매년 적자라고 주장하면서도 구단을 유지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가족에게 “해고하겠다” 협박

구단주들은 현재 갖은 수단을 동원해 선수협의회를 가로막고 있다. 8개 구단은 우선 선수협의회에 가입한 선수들을 전원 방출하기로 결정했다. 이럴 경우 이적은 자유롭지만 8개 구단이 이 선수들과 계약하지 않기로 담합했기 때문에 사실상 가입 선수들은 국내 활동이 중단된다.

8개 구단은 지난 1월21일에 있었던 창립 총회를 막기 위해서도 온갖 방해 공작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수협의회 강병규 대변인은 “지방 구단 선수들이 창립 총회에 참여하려고 버스를 타고 올라오는데 구단측이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버스를 앞뒤로 가로막고, 총회에 참석하려면 옷을 벗겠다는 각서를 쓰라고 요구했다”라고 말했다. 구단들의 이같은 행위는 여러 선수들이 공통으로 증언한다. 서울에 적을 둔 구단의 경우 코치들이 식사하러 가자면서 선수들을 버스에 태워 지방으로 데려가고, 롯데 구단은 연습을 끝내주지 않고, 끝난 뒤에도 사우나를 하러 가자면서 선수들을 경주로 데리고 갔다는 것이다. 선수협의회 회원들은 구단들이 이밖에도 선수 가족들에게 말을 듣지 않으면 해고하겠다는 등 여러 가지 협박을 했다고 증언했다.

이같은 증언이 사실이라면 이는 명백히 국민의 기본권인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위반한 것이다. 프로 야구 선수들이 자신들만의 모임을 만드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이다. 고대 로마의 노예들인 검투사들도 모임이 있었다. 미국은 1885년에 프로 야구 선수동맹을 만들었고 1966년에 선수노조를 창립했다. 이 때부터 선수노조는 노사 협상 전문가를 내세워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하기 시작했다. 선수노조는 협상력을 발휘해 에이전트 제도, 최저 연봉제, 연금 확대 같은 선수 보호 조처를 만들었다(아래 표 참조). 일본도 1981년 프로야구선수회를 결성해 선수·감독·코치·겸임 선수·트레이너 등 프로 야구인들의 복지를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몇 차례 시도가 있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첫 번째 주역은 1985년 최동원 선수였다. 당시 최동원 선수는 롯데에서 삼성으로 트레이드되고 결국 미국으로 건너가며 이 시도를 접어야 했다. 두 번째는 1996년 이상훈 선수가 시도했으나 이 또한 실패로 끝났다.

2000년 벽두에 터져나온 선수협의회 파문은 세 번째 시도인 셈이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무위로 끝날 것 같지 않다. 선수협의회 회원들은 계속해서 가두 서명 운동과 팬 사인회 같은 단체 행동을 벌이고 있다. 연예인 단체와 시민단체의 성원도 쏟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컴퓨터가 프로 야구 선수들에게 백만 원군과도 같은 존재이다. 컴퓨터 통신망을 통해서 팬들의 성원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이같은 국민 성원 때문에 구단들도 자세를 낮출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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