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아 로비, ''몸통''은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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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9.1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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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영 계좌 추적하면 규명 가능… 정부, 총선 전 안 밝힐 듯
김태정 전 검찰총장 구속을 계기로 옷로비 사건이 종반전으로 치닫고 있다. 최병모 특별검사팀은 오는 12월12일 그동안 수사한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다. 특검팀의 노력 덕분에 옷로비 의혹 사건은 대략적인 실체가 드러났다. 이제 남은 부분은 김태정씨가 지난 1월20일께 부인 연정희씨에게 건넨 △최초 보고서로 추정되는 문건의 출처 △관계자의 위증과 검찰의 축소 의혹 △사직동팀 내사 착수 시점이다. 대검 중수부는 현재 이 사건과 관련된 여러 의혹에 대해 전면적인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부분은 따로 있다. 98년 4월께부터 진행되던 신동아그룹 외화 밀반출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를 중단시킨 외압 실체를 규명하는 작업과, 신동아그룹의 전방위 로비 의혹 수사가 뒤로 미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김태정 전 총장은 이미 수사 과정에서 “최순영 회장을 구속할 때 거절하기 어려운 압력을 받았다”라고 밝혔다.

신동아그룹 외화 밀반출 사건은 98년 4월께부터 서울지검 특수 1부가 수사하던 사안이다. 당시 수사팀은 당사자인 최순영 회장을 98년 5월 말에 두번이나 소환해 조사했다. 당시 이 사건을 담당한 서울지검 특수1부 수사팀은 수사 과정에서 사건 전모를 거의 파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도 피의자 신분과 다름없던 최순영 회장은 98년 6월 초 김대중 대통령의 미국 방문단에 참가했다. 한 술 더 떠 9월께 검찰 수사팀마저 전면 교체되었다. 이후 98년 내내 최순영 회장에 대한 수사는 불구속 상태로 진행되었다. 상식적으로 이런 일은 압력이 있지 않고서는 일어나기가 힘들다.

하지만 김태정 전 총장은 압력을 넣은 사람이 누구인지는 무덤까지 가지고 가겠다며 진술을 거부하고 있다. 이 사람들의 명단을 밝히는 수사는 여권 고위 실세와 직•간접으로 관련된 사안이다. 그만큼 검찰이 이를 밝혀내기는 어렵다. “박시언씨, 김태정 죽이겠다 호언”

이와 관련해 한나라당 옷로비사건진상조사대책위원회 최병렬 위원장은 “이 사건 전부를 최병모 특별검사팀에 넘기면 별 어려움 없이 사건 전모를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한나라당은 특검법 개정안을 이미 국회에 제출했다”라고 말했다.

신동아 로비설의 핵심 인물로 알려진 박시언씨를 따라가다 보면, 그가 폈던 로비의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다음은 여러 각도에서 확인된 박시언씨 행적이다. 박씨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대지 부동산’이라는 상호로 부동산 중개업을 해온 인물이다.

목포고를 나온 그는 미국 거주 시절부터 현정부 실세와 두터운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는 야당 시절 DJ를 전적으로 후원한 인물은 아니었던 것 같다. 로스앤젤레스 교포 신문인 <코리아나 뉴스> 정채환 사장은 “이런 친분은 동향 출신이라는 끈을 이용한 것뿐이다. 5•6공 때 그는 미국에서 거의 친정부적인 활동을 폈다”라고 말했다. 박시언씨는 91년 이후에는 거의 한국에 거주했다. 그는 한국에 살면서도 미국 시민권을 잃지 않으려고 6개월마다 로스앤젤레스 주재 한국영사관에 들러 한국 체류권을 연장해 왔다. 그 와중에 박시언씨는 대한생명에서 자금을 담당하던 문순탁 전무의 소개로 신동아 로비스트에 전격 채용되었다.

<시사저널>은 신동아 입사 이후 박시언씨의 행적을 추적하다가 그와 절친한 ㄱ씨를 만날 수 있었다. ㄱ씨의 진술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98년 3월 박시언씨가 신동아에 들어가던 무렵 박씨는 신동아행을 ㄱ씨와 상의했다. 당시 ㄱ씨는 이를 극구 말렸다. 최순영 회장의 사람 쓰는 방식이 너무 비정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ㄱ씨에 따르면, 최순영 회장은 외국 출장차 공항에 나갈 때마다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주요 중역을 한 사람씩 해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ㄱ씨는 수십 년간 회사를 위해 몸바쳐온 사람을 전화 한 통으로 잘라 버리는 사람과 같이 일하다 보면 박시언씨도 뒤끝이 좋지 않으리라고 충고했다.

ㄱ씨는 김태정•박주선 씨는 최순영•이형자 씨 부부의 농간에 희생된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최순영씨를 끝까지 구속하려고 한 사람이 바로 김태정씨이고, 이를 위에서 억누른 사람들이 바로 박시언씨로부터 로비를 받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ㄱ씨는 김태정 전 총장이 박시언씨가 신동아그룹으로 간 뒤로는 그를 국제 사기꾼이라고 지칭하며 만나 주지도 않았다고 덧붙였다.

박정수 의원이‘실세’소개?

박시언씨는 문건을 공개하기 20일 전부터 ㄱ씨에게 “김태정과 박주선을 죽이겠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ㄱ씨는 당시 박시언씨가 김태정•박주선만 아니면 최순영 회장이 구속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자신에게 말했다고 증언했다. 특검 수사 결과 일부 밝혀진, 김태정•박주선을 낙마시키려는 ‘신동아 그룹 음모설’에 힘을 실어주는 부분이다.

ㄱ씨는 박시언씨가 98년 한 해 동안 최회장이 구속되는 것을 막기 위해 여권 실세를 만날 때마다 자신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았다고 말했다. ㄱ씨에 따르면, 대통령 내외와 두 아들을 제외하고는 여권 실세 대부분이 박시언씨의 로비 대상이었다.

ㄱ씨에 따르면 중요 등장 인물은 바로 국민회의 박정수 의원이다. 박정수 의원과 박시언씨는 미국에서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이다. ㄱ씨는 박정수 의원이 박시언씨에게 현정부 실세를 소개했다고 말했다. 이같은 ㄱ씨의 발언에 박정수 의원 보좌진은 “박의원과 박시언씨가 미국에서부터 잘 알던 사이인 것은 사실이다. 98년 1월 중순께 박정수 의원이 박지원 장관•박시언씨와 식사를 함께 한 적은 있다. 그러나 다른 여권 실세를 소개한 적은 전혀 없다. 더구나 98년 1월께는 박시언씨가 신동아에 들어가기 전으로 알고 있다”라며 ㄱ씨의 설명을 전면 부인했다. 박정수 의원은 더 자세한 설명을 원하는 <시사저널>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그러나 ㄱ씨는 박시언씨가 자신에게 말한 여권 실세에 대한 로비 전모를 끝내 털어놓지 않았다. 무엇보다 자신이 이 사건에 연루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그는 신동아측 로비를 받은 인물을 전혀 밝혀내지 않고, 김태정씨에게만 모든 죄를 뒤집어씌워 사법 처리하는 것은 정말 부조리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여권과 검찰이 총선 전까지는 신동아 로

비의 몸통을 절대 공개할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물론 ㄱ씨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할 수는 없다. 또 98년 당시 신동아측이 박시언씨만을 축으로 하여 로비를

진행한 것도 아니다. ㄱ씨도 판돈 규모가 큰 로비는 최씨 일가가 직접 맡았다고 말했다. 현정부 실세 가운데는 기독교 인맥이 많다. 기독교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최순영 회장이 이들에게 접근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최회장이 모교인 경기고 인맥을 동원했다는 설도 있다. 다음은 부인인 이형자씨와 이씨의 여동생인 이영기씨이다. 이미 일부 언론 보도로 알려진 대로 이형자씨는 영부인 이희호씨를 최종 목표로 삼아 집요하게 로비했고, 여동생인 이영기씨와 남편인 온누리교회 하용조 목사도 나름으로 인맥을 동원했다.

현재 신동아 전방위 로비 의혹을 수사하는 작업은 구속된 김태정 전 총장에 대한 수사와 박시언씨에 대한 추궁, 이 두 가지로 진행될 예정이다. 그러나 이 작업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 김씨가 입을 다물어 버리면 모든 노력이 허사이다. 검찰은 박시언씨에 대한 수사에서도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박시언씨와 최순영씨 일가 계좌를 집중 추적하고, 박시언씨 같은 관련자의 통화 내역을 조사하고, 이들이 사들였다는 고가 미술품 거래 내역을 조사하면, 로비설의 실체를 밝혀내기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문제는 총선을 앞두고 현정부가 그렇게 하겠느냐는 것이다. 검찰이 김태정씨를 구속하는 것으로 이 사건을 마무리한다면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또다시 터져나오는 깃털과 몸통 논쟁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검찰의 성역 없는 수사가 필요한 시점이다.


崔寧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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