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설 오른 해군 중형 잠수함 사업
  • 李政勳 기자 ()
  • 승인 1999.0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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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 입찰 도입해 현대중공업 참여 기회 제공…“뒤탈 자초한 결정”
“목하 현대 천하지제일(現代天下之第一)의 세상이다. 금강산 관광 사업 개척으로 햇볕 정책을 현실화했다고 해도, 이렇게 현대 일변도로, 현대 의지대로 굴러갈 수 있는가.”

국방부가 해군 중형 잠수함 사업(SSU)을 현대중공업이 참여할 수 있도록 경쟁 입찰로 바꾼 데 이어, 아서 디 리틀(ADL) 사가 ‘반도체 통합 법인 주체로 적합한 것은 현대전자다’라고 발표하자, 한 대기업 임원이 내뱉은 말이다.

그의 말마따나 현대는 기아자동차를 인수하는 등 최근 들어 엄청나게 사세를 불리고 있다. 이러한 몸집 불리기 중에는 정당한 절차를 거친 것도 있으나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것도 있다. 그 중 하나가 현대중공업이 중형 잠수함 사업(SSU) 입찰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

97년까지만 해도 SSU 사업은 ‘성능 개량 잠수함 사업’으로 불렸다. 이 사업은 기존 장보고급 잠수함에 △공기 무관(無關) 추진 체제(AIP) △적외선(IR) 잠망경 △측면 배열 소나(FAS)를 장착하는 것으로, 이를 위해 잠수함을 1천2백t급(장보고급)에서 1천5백t급(SSU)으로 키우는 것이 주 내용이다.

이 잠수함을 만드는 과정에서 한국 기술진은 독일 HDW 사로부터 설계 능력을 배우게 된다. 이런 구도였기 때문에 국방부는 SSU 사업을 장보고급 잠수함을 제작해 온 독일 HDW 사와 대우중공업이 맡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여기에 반발한 것이 현대중공업이었다. 현대중공업측은 SSU 사업은 엄연히 신규 사업이므로 새로 경쟁 입찰을 해야 한다며 국방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현정부가 출범하자 현대중공업은 소를 취하하고 현대그룹은 금강산 관광사업을 성사시켰다. 공교롭게도 SSU 사업은 ‘성능 개량 잠수함 사업’에서 ‘중형 잠수함 사업’으로 바뀌어 신규 사업처럼 변경되었고, 그에 따라 영국·프랑스·독일·스웨덴 회사가 한국의 조선업체와 손잡고 경쟁 입찰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SSU 잠수함에 대한 ‘작전 요구 성능(ROC)’까지 바꾸어야 할 상황이 되었다.

해군은 대우중공업 제품 선호

작전 요구 성능이란 ‘이 무기는 이러한 작전에 사용되므로 이러한 성능을 가져야 한다’는 요구 사항을 정리한 것으로, 무기 사용자인 군이 정한다. 그런데 현대중공업이 SSU 사업에 뛰어들어 해군과 합참이 작전 요구 성능을 새로 제시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97년 현대중공업이 기자들에게 외친 것은 ‘차기 잠수함 사업은 1천5백t급인 SSU가 아닌 3천t급 중(重)잠수함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1천5백t급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바람에 1천5백t급 잠수함 건조에서는 HDW에 밀린다는 평가를 받는 프랑스의 DCN과 스웨덴의 코쿰스 사 등도 SSU 사업에 입찰할 수 있게 되었다.

해군의 절대 다수는 SSU 잠수함은 HDW 사의 것이 좋고, 한국측 사업자로는 HDW의 파트너인 대우중공업이 적격이라는 의견을 갖고 있다. 때문에 새로 시작하는 SSU 사업이 HDW-대우중공업 제시형으로 낙찰되지 않으면 해군과 HDW·대우중공업측의 반발이 거셀 것이다.

반대로 HDW-대우중공업으로 낙찰된다면 SSU 사업을 원점에서 다시 출발시켜 놓고도 놓친 격이 되는 현대중공업의 반발이 심할 것이다. 어디로 결정되든 SSU 사업은 ‘후폭풍’이 불게 되어 있는 셈이다.

한 소식통은 “현대중공업조차도 SSU 사업자로 HDW와 현대중공업이 지명되기를 바랄 정도로 HDW 사 잠수함은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대우중공업과의 사업 관계로 HDW-현대중공업 제휴는 불가능하다. 이처럼 결론이 뻔한데도 국방부는 현대의 반발이 거세다고 물러남으로써 후폭풍을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상황을 자초했다. 그때 누가 이런 결정을 했는지 살펴볼 날이 있을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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