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회장 2세, DJ 품에 안기나
  • 金鍾民 기자 ()
  • 승인 2000.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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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중심의 대통합 신호탄 될 듯
한국 정치의 장외 블루칩 가운데 하나인 정몽준 의원. 그의 민주당 입당설이 불거져 정가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는 여야 어느 정당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고 특별한 정치 세력을 거느리고 있지도 않지만 그동안 끊임없이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로 거론되어 왔다. 그의 정치적 잠재력이 4선 의원과 축구협회장이라는 ‘액면가’보다 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 잠재력 때문에 그의 민주당 입당설은 정치권에 여러 가지 파장을 던지기에 충분하다.

일단 당장의 관심사는 정의원이 실제로 민주당에 입당할 것인가 하는 점인데,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그는 지난 5월19일 민주당 입당설에 관한 질문을 받고 “정당 선택을 신중하게 고려하고 있다. 나에게 도움이 되는 시기에 결정하겠다”라고 말해 입당 가능성을 간접으로 시인했다. 이어 지역 감정 해소에 도움이 되는 방향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인 것을 보면, 영남에 정치 기반을 두고 있는 그가 민주당에 입당하기 위한 명분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도 보인다.

예상보다 일찍 불거진 까닭

그의 민주당 입당설에 무게를 실어 주는 것은 그가 최근 DJ의 복심(腹心)이라고 할 수 있는 권노갑 민주당 고문으로부터 입당 제의를 받았다는 점이다. 두 사람은 총선후 단둘이 만났는데, 그 때 권고문이 입당을 권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실 그동안 그는 2002년 대선 구도가 다자(多者) 구도가 되는 것을 전제로 독자 출마도 검토했으나, 16대 총선으로 양당구도가 되자 기성 정당을 선택하는 쪽을 적극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의원의 처지에서 보면 입당 의사가 있다 하더라도 6월에 열리는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을 수행해 오는 10월 아시안컵에서 남북 축구 단일팀을 구성하는 문제와 2002년 월드컵 분산 개최 문제에 대해 의미 있는 합의를 이루어내고, 그 성과를 바탕으로 정치적 거취를 결정하는 것이 모양새가 좋다. 이러한 흐름을 타면서 민주당에 입당할 때 국민 통합이라는 명분도 살릴 수 있고 차기 주자로서 중량감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정의원이 조기에 민주당에 입당한다면 그것은 그의 자의에 의한 것만은 아닐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현대그룹 자금 위기와 정씨 일가의 경영권 다툼 등과 관련해 정의원이 어떤 압력을 느끼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지난 5월10일 국세청이 유례 없이 축구협회에 대한 세무 조사에 들어간 것에 대해서도 이러한 압력과 연결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실제로 최근 정의원 민주당 입당설이 수면 위로 떠오른 데에는 여권의 필요가 더 많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대통령의 임기가 3년 가까이 남았기 때문에 통치권 유지 차원에서 이인제 고문 한 사람으로 단순해진 당내의 차기 구도를 다극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다극 체제를 통해 역동적인 경쟁 구도를 만드는 것이 여권의 전체적인 차기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기도 하다.

또한 여권으로서는 총선후 매우 불안해진 정국 주도력을 회복하기 위해 여권으로 대통합되는 흐름을 만들어야 하는데, 정의원 입당이 그 기폭제가 될 수도 있다. 김대통령은 지난 5월22일 이한동 자민련 총재를 총리에 임명함으로써 자민련과의 공조를 회복할 수 있는 실마리를 풀었고, 같은 날 호남 무소속 당선자 4명이 민주당에 입당했다. 민국당 김윤환 대표권한대행은 얼마 전 청와대 회담에서 일본 식의 대연정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특히 오는 6월 남북 정상회담으로 남북 화해 분위기가 고조되면 남한 내부에도 사회 심리적으로 강한 영향을 미칠 것이고, 이는 여야의 불안한 대결 구도에서 벗어나 대통합으로 가야 한다는 요구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여권으로서는 이러한 환경을 최대한 활용해 정국 주도권을 확고하게 장악하는 계기를 만들려 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흐름이 탄력을 받으면 내친 김에 ‘DJ·YS 화해’에까지 달려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최근 정치권에서 양김의 청와대 회동을 예사롭지 않게 보는 것도 이러한 정상회담 변수를 염두에 두기 때문이다. 이런 정황을 감안하면 정의원의 민주당 입당은 ‘1석 이동’ 이상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가장 걱정하는 것이 바로 이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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