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조종사들의 항변 "우리에게 날개를 달라"
  • 安殷周 기자 ()
  • 승인 2000.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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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9일, 유니폼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대한항공 소속 조종사 4백여 명이 서소문에 모였다. 난생 처음 ‘시위’에 나선 이들은 행사 내내 어색함을 감추지 못했고, 애써 배운 운동가요를 부르는 모습도 영 어설펐다. 그러나 ‘청원 경찰 임용을 즉각 해지하라!’는 요구만은 또렷하고 분명하게 외쳤다.

조종사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난데없이 청원 경찰 임용을 해지하라고 요구한 까닭은 무엇일까. 이들은 1999년 8월 대한항공운항승무원노동조합을 결성했다. 현장의 목소리를 전할 의사 소통 창구를 마련해 안전한 운항 환경을 만들라고 회사를 압박하기 위해서였다. 10년 동안 사망자를 3백13명이나 낸 대한항공 비행 사고의 대부분은 조종사의 실수로 판명 났다. 그 이면에는 조종사가 사고를 낼 수밖에 없는 열악한 근무 환경이 또아리를 틀고 있다. 사고를 초래하는 근무 환경을 개선하지 않고서는 비행 사고를 예방할 수 없다는 것이 노조의 판단이다. 실제 일본 JAL의 경우, 1986년 노조가 결성된 후에 인명 사고가 한 건도 없었다.

대한항공과 정부는 조종사가 청원 경찰이라며 노조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무기를 소지한 사법 경찰(청원 경찰)은 단체 행동을 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이다. 하지만 조종사들은 누구도 자신을 청원 경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비행기에서 총이 사라진 지 오래이거니와, 무엇보다 조종사의 임무는 ‘경비’가 아니라 ‘조종’이기 때문이다.

노조는 정부와 회사가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파업도 불사할 방침이다.

거리에 섰던 조종사들의 한결같은 바람은 ‘날개 잃은 노조’에 날개를 달아, 사고 없이 창공을 훨훨 날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엉뚱하게 청원 경찰로 몰아 노조의 발목을 잡는 것은 불안 요소를 하나 더 보태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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