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권 축소해야 검찰이 바로 선다
  • 李政勳 기자 ()
  • 승인 1999.02.18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검사의 경찰화’ 문제 심각… 인사제도 개선 절실
한국은 ‘냄비 사회’다. 대전 이종기 변호사 비리 사건으로 촉발되어 1월27일 심재륜 대구고검장의 성명 발표로 뜨겁게 달아올랐던 ‘검찰 개혁’ 목소리가, 2월2일 전국 차장·수석 검사 회의가 열린 뒤 갑자기 수그러들었다. 이틀 뒤인 2월4일 정태수 전 한보그룹 총회장이 청문회에서 “YS에게 1백50억원을 주었다”라고 진술하자 모든 언론과 여론은 정치 자금 문제로 흥분하기 시작했다.

사상 최대의 검찰 위기라고까지 표현되었던 검란(檢亂)은 도대체 얼마나 잘 수습되었기에 이렇게 조용해진 것일까? 대선 자금 문제가 아무리 큰 사건이라 해도 이토록 쉽게 덮일 사안일까?

검사의, 검사를 위한 ‘검사 회의’

시비 곡직과 사건의 전말을 따지는 것이 검찰의 고유 업무인 만큼, 한번 그 속내를 들여다보자. 심재륜 전 대구고검장을 지지한다는 한 법조인은 이렇게 쏘아붙였다.

“대통령이 검찰총장의 임기를 채운다고 선언했는데,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가. 검찰총장은 ‘내 새끼’이지만, 심재륜은 내 새끼가 아니라는 말인가? 대통령 처지에서는 총장 이하 모든 검사가 똑같은 새끼라야 한다. 공명 정대한 대통령이라면 이렇게 말해야 할 것 아닌가. ‘떡값은 모든 검사의 문제이니 심재륜의 말이 맞다. 총장을 비롯한 고검장급은 조직을 책임진 사람이니 이번 일로 전부 사퇴하라. 그 이하 검사들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겠으나, 앞으로 전별금을 받는 일이 생긴다면 반드시 옷을 벗기겠다.’ 이런 조처는 취하지 않고 한 사람의 손만 들어 주니 모두가 불만인 것이다. 그래서 연판장 사건이 터져나왔다.”

한 법조인은 평검사들의 연판장 사건에 대해서도 냉소했다. “대전 사건은 검사들이 결코 돈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 경우다. 피의자가 ‘당신은 돈 안 받았어? 똑같이 돈 받았는데 당신이 어떻게 나를 수사해?’ 이렇게 할까 봐 두려워진 검사들이, ‘일이 여차저차 되었으니 총장이 총대를 메고 물러나 주시오’라고 한 것이 연판장을 돌리게 된 솔직한 배경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요구를 내걸 수 없으니, 검사들이 검찰의 정치 중립화를 내걸고 연판장을 돌린 것 같다.”

이 법조인은 검사만큼 권력에 순치된 사람도 없을 것이라며 이렇게 지적했다. “언론에 보도된 연판장에 따르면 평검사들이 이번 사건으로 검찰 권위가 실추되었다고 썼는데, 무슨 권위가 떨어졌다는 것인가. 그 표현에는 전별금 받은 것이 드러남으로써 그동안 기분 좋게 들어 오던 ‘검사님’ 소리를 낯 간지러워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되었다는 뉘앙스가 깔려 있는 것 같다. 정말로 검찰 독립을 추구했다면, 검사들은 조직을 살린다는 심정으로 사표를 던졌어야 했다. 연판장을 돌리는 데 그친 평검사들의 행동은 ‘내 체면을 지키되 내 밥그릇은 내찰 수 없다’는 집단 이기주의 냄새가 풍긴다. 검사 권력을 버릴 수 없었기에 연판장을 돌릴 때의 열기가 검사 회의가 열린 후 급히 사그라든 것이다.”

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10시간 넘게 열렸다는 전국 검사 회의가 국민을 위한 검찰 만들기가 아니라 ‘검사의, 검사에 의한, 검사를 위한’ 카타르시스였다고 지적했다. “검사 회의 후 달라진 것이 무엇인가. 국민과 언론으로부터 손가락질 받은 검찰이 모여 한바탕 울고, 이제부터는 단합해서 잘해 보자고 다짐한 것 외에는 뭐가 달라졌는가. 그런데도 검찰 내부로부터 터져나온 개혁 주장은 쉬 사그라들었다. 박상천 법무부장관이 급히 검찰개혁안을 발표했는데, 그렇게 빨리 만들 수 있는 개혁안이라면 왜 진작 추진하지 않았는가. 연판장을 돌린 평검사들은, 검사 회의를 검찰을 위한 카타르시스로 넘기고 말았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검찰 개혁을 기대했던 국민이라면, 연판장 사건과 그 직후 열린 전국 검사 회의에서 드러난 검찰 모습에 실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검찰이 1천1백여 검사와 그외의 검찰 직원으로 구성된 거대 조직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개혁은 시간을 갖고 둔중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여유를 갖고 검사들이 검사 회의에서 무엇을 토론했는지 들여다볼 필요도 있다.

일반 국민이 그리는 검찰상과, 일선 검사가 그리는 검찰 모습 간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국민은 위압감을 주며 조사하는 검사의 모습에서 정치 권력을 느끼겠지만, 이는 정치 권력과는 전혀 상관없는 잘못된 느낌이다. 검사들이 외부 압력에 약하다는 것도 근거가 약한 주장이다. 검사들은 자부심이 강하기 때문에 권력이나 금력을 무기로 한 외부 청탁에 쉬 넘어가지 않는다. 그러나 검사장급 상사가 수사 검사에게 전화를 걸어 ‘아무개는 내가 잘 아는 사람이니 잘 좀 대해줘’라고 하는 ‘관선 로비’에 대해서는 저항력을 잃고 만다.

한 소식통은, 검사 회의에서 관선 로비 차단과 결재 제도 폐지를 요구하는 평검사가 많았다고 전했다. 검사가 수사한 자료를 결재함으로써 검사장이 검사의 수사 방향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는 결재 제도는, 박정희 집권 이후 ‘전국 검찰이 유사한 사건에 대해서는 기소 죄목과 구형량이 비슷해야 한다’는 취지로 도입되었다. 일각에서는 결재 제도를 가리켜 ‘검사 동일체 원칙’을 시현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결재 제도는 왕왕 외부 청탁에 약한 검찰 수뇌부가 수사 검사의 수사 의지를 꺾는 방법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이 소식통은 “검사 처지에서 검찰 독립은, 관선 로비 차단과 결재 제도 철폐로 귀착된다. 검사 회의에서 이 문제가 거론되었다는 것은 대단한 변화이다. 이원성 대검 차장이 개선책을 찾아보겠다고 한 만큼 지켜볼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 사정에 정통한 사람들은 그런 변화뿐만 아니라 수사기관처럼 되어 버린 검찰의 위상을 바꾸는 일도 병행해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법조인의 설명은 이렇다.
대검 수사권 없애야 검찰 중립화 가능

“검찰이 정치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서는 정치 권력으로부터 외풍을 가장 많이 받는 검찰총장이 수사권을 갖지 않아야 한다. 정치 권력으로부터 외압을 받더라도 검찰총장이 지검장이나 지청장을 움직여야 그 요구를 들어 줄 수 있는 구조라면, 검찰의 정치 중립화는 어느 정도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현재 검찰은, 총장이 직접 지휘권을 행사하는 대검에 중앙수사부라는 수사 조직을 갖고 있다. 중수부 소속 검사들은 서울지검 검사를 겸직하기 때문에 수사권을 행사하는데, 이러한 겸직 제도부터 없애야 한다.”

대검 조직 중 수사권을 가진 부서는 중수부뿐이다. 형사부·강력부·공안부 등은 일선 지검의 수사 상황을 지휘·조율할 뿐 직접 수사하지 않는다. 서울을 비롯한 5대 도시에 있는 고검은 수사권이 없는 대표적인 조직이다. 고검은 고발자가 지검에 고발한 사건이 무혐의 처분을 받을 경우 이에 반발해 항고하면 이를 검토해 지검에 재기 수사 명령을 내리는 일을 한다. 대검 역시 고검처럼 수사권이 없는 조직으로 바꾸어야 중립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

한 변호사는 ‘검찰의 경찰화’가 검찰 중립화를 해치는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세계 주요 국가들에서는 수사는 경찰이, 기소는 검찰이 맡는 식으로 역할이 나뉘어 있다. 고도의 법률 지식이 필요한 사건일 때만 검찰이 직접 수사하는데, 이를 위해 만든 부서가 특수부다. 일본 검찰은 도쿄와 오사카 지검에 특수부를 두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지검은 물론이고 지청에까지 특수부를 두고 있다. 그러다 보니 검찰이 직접 수사하는 인지 사건이 많아져 검찰의 경찰화가 촉진되었다. 검찰이, 경찰이 수사한 것을 스크린하는 기관이 아니라 직접 칼을 휘두르는 기관이 됨으로써 이미지가 나빠졌다. 국민 눈에 검찰이 인권 보호 기관이 아니라 권력 기관으로 비치게 된 것이다.”

한 고참 검사는 대검의 수사권을 없애고 지검에 인지 수사를 하는 부서를 줄이는 것과 더불어, 검찰 인사 제도를 바꾸는 것이 검찰 중립화의 요체라고 지적했다. 현재 대검은 평검사에 대해서는 2년에 한번씩, 부장검사 이상은 6개월 내지 2년에 한번씩 부서와 임지를 바꾸고 있다. 이러한 순환 보직 제도는 모든 검사에게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평한 기회를 주기 위해 채택된 것이다. 이에 따라 평검사는 지방에서 2년 일하면 서울에서 2년 근무하고, 형사부에서 2년 일하면 특수부에서 2년 근무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순환 보직 제도는 검사 개개인의 능력 차이를 가리지 못하는 문제를 낳고 있다. 특수 수사를 잘하는 검사를 형사부에 파견하고, 수사에 서투른 검사를 특수부에 앉힘으로써 검사 개개인에 대한 능력 검증을 방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 수사를 못해도 로비만 잘하면 특수·강력 등 주요 부서를 거칠 수 있다는 허점이 있다. 이런 문제 때문에 검찰 내에 인맥이 형성되고, 이러한 인맥의 ‘대부’는 검찰권을 장악하기 위해 정치권에 기댐으로써, 검찰의 정치 시녀화를 초래했다고 검사들은 보고 있다.

지검장·부장검사 임기 보장해야

한 고참 검사는 검사 임관 후 5년 동안은 여러 부서를 돌아다니게 해 능력을 검증한 뒤 이 사람은 특수부, 저 사람은 형사부 검사로 배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수부 검사는 특수부 검사끼리 경쟁시켜 진급하게 해야 외압에 휘둘리지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부장 이상 간부들도 3∼4년씩 한 곳에 근무케 해야 검찰총장의 부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총장 임기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검장과 부장의 임기도 중요하다. 임기가 보장된 검사장이라면 외압에 의연히 대처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이번 검찰 파동을 지켜본 한 정치인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몇몇 비평가들은 정권보다 더 오래가는 것이 재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재벌보다 더 오래가는 것이 검찰이다. 역대 정권 중 검찰 개혁을 시도한 정권은 하나도 없었다. 국민의 정부는 안기부에 대해서는 나름으로 개혁을 했지만, 검찰에 대해서는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다. 곪으면 썩는 것이 세상 이치이다. 엄청난 모순을 안고 있음에도 이를 고치지 않고 꾸역꾸역 가다가 더 큰 파멸을 맞을 수 있다. 국민의 정부라면 사정권을 이용한 개혁 작업에 열을 내기보다 국민으로부터 존경받는 검찰을 만드는 개혁부터 추진해야 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