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FP 보고서에 나타난 북한 식량난 실태
  • 남문희 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1999.05.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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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지원 국제 NGO 회의에 발표된 ‘WFP 활동 내용’ 요약
유엔 산하 국제 구호 기관인 세계식량계획(WFP)이 4년째 북한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름조차 생소했던 이 기관의 북한내 활동은 그 자체가 커다란 실험이었다. 국제 사회에 문을 걸어 잠근 북한이 비록 식량난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빗장을 열기 시작한 신호탄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지난 4년 동안 세계식량계획은 북한에서 어떻게 활동해 왔을까. 5월3∼5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북한 지원 국제 NGO 회의’는 그 편린을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 북한 지원 활동에 종사하는 전세계 비정부 기구(NGO) 관계자들이 모인 이 자리에서 세계식량계획은 그동안의 활동상을 담은 활동 보고서를 배포했다.

비정부 기구 활동가 자격으로 이 회의에 참석한 <시사저널> 박성섭 발행인이 긴급 전달해 온 자료를 바탕으로‘북한에서의 세계식량계획 활동’을 재구성했다. <편집자>

세계식량계획이 북한에서 활동을 시작한 것은 95년 11월이었다. 그해 초 북한에 커다란 홍수가 발생했다. 북한 당국은 피해 복구를 위해 국제 기구에 도움을 요청했고, 이를 계기로 세계식량계획의 지원 사업이 시작되었다. 98년 4월∼99년 3월 ‘긴급 구호 5959’기간(그후 99년 6월까지 연장)에 세계식량계획은 구호 대상자 7백47만명을 위해 식량 65만7천9백72만t이 필요했다. 미화로 2억6천2백93만1천8백80 달러에 해당하는 양이다.

그러나 지난해 5월 이 목표치를 수정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모니터가 허용되지 않는 지역에 대해서는 식량을 지원할 수 없다는 것이 세계식량계획의 활동 원칙이다. 그런데 당시 39개 군에 대한 모니터 접근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이에 따라 목표치를 대상 주민 6백70만명, 식량 60만2천6백99만t으로 재조정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5월1일까지 세계식량계획은 북한내 2백11개 군 중에서 1백59개 군에 식량을 지원했다.

세계식량계획은 특히 북한의 취약 집단에 대한 긴급 구호에 열을 쏟았다. 취약 집단이란, 보육원·유치원·초등학교·고아원의 어린이들, 장애자·임산부·편모 슬하 아이들을 의미한다. 최근 일을 한 대가로 식량을 지원하는 방식(Food For Work Project)이 새롭게 고안되었다. 식량 지원과 농촌 복구 및 재건을 함께 하기 위한 것이다.

외부에서 지원되는 식량이 아직도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식량을 자체 조달하려는 사업도 같이 전개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세계식량계획은 북한 당국과 협력해 평양아동식품생산공장 안에 자체 식품공장을 만들었다. 약 25만 달러를 들여 자동화 공장을 세운 것이다. 이 공장은 어린이용 고열량·고단백 혼합 식품을 생산한다. 연간 생산 목표는 8천5백t. 이 정도만 해도 20∼50%에 이르는 수입 대체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여기서 생산한 식품은 보육원 어린이들에게 공급된다.
북한 어린이 영양실조율 16%

북한 어린이 영양실조율은 무려 16%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 세계식량계획은 어린이들에게 비스킷을 공급하는 계획을 세웠다. 유치원이나 초·중등학교에서 비스킷을 나누어 줌으로써 출석률을 높이고 영양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서이다. 1인당 8개씩 나누어 주는데, 열량으로 따지면 4백50Kcal이다. 현재 계획으로는 현지에서 4만5천t을 생산하고 부족분 4만8천4백3t은 외부로부터 지원받으려 한다. 최근 평양제분복합공장에서 비스킷 샘플이 완성되었는데, 4∼5월께 3백t을 생산하면 시범적으로 각 학교에 공급할 예정이다. 7월부터는 1천8백t까지 생산량을 늘려 취약 지구에 우선 공급할 것이다.

식량 부족 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또 하나의 방법은 대체 식품 개발이다. 대체 식품은 옥수수나 밀 30%와 지난해 수확한 채소류 중 남은 것이나 옥수수 껍질, 풀뿌리, 해초류 등을 소화 효소와 함께 섞어 굽거나 국수로 만든다. 이를 위해 소규모 식품 생산 공장을 활용하고 있다. 영양 섭취에는 한계가 있지만 허기를 채우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공장이다.

긴급 구호 식량은 대부분 외부 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북한의 주요 항구 중 세계식량계획이 지원하는 식량은 주로 남포항에서 하역된다. 세계식량계획은 남포항까지 수송을 책임지고, 북한 내부의 수송은 북한 당국이 책임지며, 분배는 배급 체계를 통해 이루어진다.

외부 지원 중 가장 큰 물량을 담당하는 것이 미국이 기증한 식량을 수송하는 ‘리버티 스피리트’호이다. 이 배는 전장 2백25m인 4만6천t급 미국 화물선이다. 지난해 9월 작성된 세계식량계획 요원의 승선기에 따르면, 뉴욕을 출발한 이 배의 첫 기항지는 멕시코 만이다. 여기서 미시시피 강을 거슬러 루이지애나 주에 도착해 옥수수 3만2천t을 실었다. 그뒤 파나마 운하를 거쳐 샌프란시스코 항에 도착해 쌀 1만4천t을 싣고 18일간 항해해 남포항에 도착했다.

화물이 일단 하역되면 통관항에서 각 기증 단체 별로 탁송 표시와 함께 색깔 별로 코드가 부여된다. 이후부터의 국내 수송은 북한 당국이 담당한다. 식량 배분은 공식 배급 체계를 통해 이루어진다. 세계식량계획은 취약 집단을 선별하고 접근하기 위한 통로로 이 배급 체계를 활용하고 있다.

세계식량계획에 생존 맡긴 동포들

세계식량계획 요원들의 모니터 역시 이 배급 체계를 통해 이루어진다. 현재 북한에서는 약 25개국에서 파견된 40여 요원이 활동한다. 이들은 평양의 사무실과 지방의 5개 출장 사무소에 분산 배치되었다. 각 출장 사무소에는 구호 전문 요원 2명과 통역 및 운전기사 1명씩 근무한다. 이들은 대체로 3일 동안 출장해 관련 기록 검토, 지방 책임자 면담, 그리고 직접 탐방 등의 방법으로 식량이 제대로 배분되고 있는지 모니터한다.

세계식량계획 요원들이 배급 체계를 통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4월 초부터 또다시 배급 식량이 바닥 나기 시작했다. 배급이 다시 시작되려면 채소가 수확되는 6월까지 기다려야 한다. 4월에서 6월 사이 취약 집단 사람들은 세계식량계획이 지원하는 식량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한다. 나머지 사람들도 대체 식량을 찾으러 산으로 들로 돌아다닐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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