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소프트 사 1차전 ‘판정패’
  • 워싱턴/변창섭 (cspyon@sisapress.com)
  • 승인 2000.06.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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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지방법원, 강제 분할 명령…고등법원 판결 남아
‘윈도’라는 운영 체제로 미국은 물론 전세계 개인용 컴퓨터 소프트웨어 시장을 휩쓸어온 마이크로소프트(MS) 사가 지난 6월7일 1심 최종 확정 판결에서 독점금지법을 위반했으므로 강제 분할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미국 연방지방법원 토머스 펜필드 잭슨 판사는 원고인 연방 법무부와 19개 주의 시정권고안을 받아들여 마이크로소프트 사가 운영 체제인 윈도만을 전담하는 회사와 인터넷 익스플로러·아웃룩 익스프레스 등 응용 체제를 관리하는 회사 등으로 분할할 것을 명령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사 빌 게이츠 회장은 잭슨 판사의 판결을 ‘미국 경제 성장의 견인차 노릇을 해온 소프트웨어 시장에 대한 부당하고도 정당치 못한 침해’라며 강력히 비난했다. 반면 재닛 리노 법무장관은 이번 판결이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경쟁을 촉진할 뿐 아니라 독점금지법의 중요성을 재확인함으로써 엄청난 파장을 가져올 것’이라고 반겼다.

물론 1심 판결이 나왔다고 해서 마이크로소프트 사가 곧바로 분할되는 것은 아니다. 아직은 상급 법원의 최종 판결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마이크로소프트 사는 잭슨 판사의 판결이 나온 직후 워싱턴 D.C. 연방순회고등법원에 항소했다. 정부측은 이번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1974년 개정된 독점금지법에 따라 곧바로 연방 대법원으로 사건을 송치해 신속히 처리할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대법원이 이번 사안을 직접 다루게 될 경우 빠르면 올해 말쯤 최종 판결이 나올 것으로 본다. 또 고등법원이 잭슨 판사의 판결을 그대로 인정할 경우, 마이크로소프트 사는 9월7일까지 윈도에 자사의 다른 제품을 끼워 파는 일과 같은 기존 관행을 중지해야 하며, 한달 뒤인 10월7일까지는 강제분할안을 실행할 구체적인 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그러나 고등법원이 잭슨 판사의 판결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재심에 나설 경우, 최종 결과가 나오려면 최소 2년은 더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재판 과정에서 결정적 증거들 나와

한때 정부측 강제분할안에 강한 거부감을 보이던 잭슨 판사가 이런 가혹한 판결을 내린 데는 무엇보다 재판 진행 과정 내내 마이크로소프트측이 보여준 ‘무오류증적 태도’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후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사는 지난 4월 재판에서 독점금지법 위반이라는 최종 판정을 받고도 계속 구태의연한 태도를 보였다. 또 지난달 정부측 시정권고안과 관련한 마지막 공청회가 열렸을 때 마이크로소프트측이 ‘주어진 짧은 시간 안에 정부안에 대응할 수 없다’고 불평하자, 잭슨 판사는 “본건이 지난 2년간 계속 진행되어 왔는데 주어진 시간이 짧다니 말이 되느냐”라며 버럭 화를 냈다고 한다.

6월9일 <뉴욕 타임스>는 지난 5월 말 잭슨 판사와 가진 단독 회견 내용을 처음으로 공개했는데, 잭슨 판사는 이 회견에서 ‘마이크로소프트 사의 비타협적 태도를 보면서 강제 분할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을 점차 갖게 되었다’고 밝혔다. 6월7일 최종 판결에서도 잭슨 판사는 강제 분할을 명령하는 근거로 마이크로소프트 사의 과거 행위가 신뢰할 수 없음이 입증되었다고 지적하고, “무죄를 확신하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 사가 앞으로도 계속 컴퓨터 운영 체제를 독점할 것이라고 믿을 만한 증거가 있다”라고 판시했다.

사실 마이크로소프트가 재판 과정에서 신축적인 태도를 보였다면 강제 분할이라는 극약 처방을 피할 수 있었다는 지적도 있다. 재판 초기에는 원고인 정부나 피고인 마이크로소프트 사가 50 대 50으로 팽팽하게 접전하고 있었으며, 잭슨 판사 역시 마이크로소프트 사에 대한 선입견이 없었다. 그러나 1998년 10월 처음 재판이 열린 뒤 양측의 공방이 오가면서 마이크로소프트측에 불리한 국면이 전개되었다. 마이크로소프트 사가 경쟁사를 협박하거나 경쟁사의 퇴진 방안을 논의한 구체적인 문건들이 속속 드러났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사의 목덜미를 잡은 대표적인 문건들은 세 가지로 꼽힌다. 우선 1995년 5월 빌 게이츠 회장이 작성한 <인터넷의 거대한 조류>라는 제목의 백서가 그 하나다. 이 백서에서 그는 인터넷의 새 경쟁자로 웹브라우저의 선두 주자인 넷스케이프 사를 적시했다. 나아가 넷스케이프 사가 웹브라우저를 무기로 삼아 운영 체제 분야에 침투할 경우 윈도가 위험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비록 넷스케이프 사를 ‘위협 상대’라고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이 문건은 추후 마이크로소프트 사의 독점 전략 마련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두 문건은 윈도 담당 중역인 제임스 알친이 작성한 전자 문서인데, 그 내용은 마이크로소프트 사가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해 독점을 유지하려 했다는 정부측 주장을 뒷받침하는 결정적 증거가 되었다. 알친은 여기서 웹브라우저인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윈도에 끼워 팔고 있는데도 소비자에게 별 인기가 없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또 1996년 12월20일과 1997년 1월2일 각각 작성한 문서에서 또다시 인터넷 전략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여기서 기존 방식으로는 이미 웹브라우저 시장의 80%를 장악하고 있는 넷스케이프와 도저히 경쟁할 수 없다고 밝히고, 더 공세적인 전략을 제시했다. 즉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윈도 운영 체제에 통합하는 일원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소비자가 윈도에 장착된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쓰지 않고 굳이 넷스케이프를 쓰고 싶으면 이를 따로 사서 기존 윈도에 장착하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90% 이상의 막강한 시장 독점력을 가진 윈도를 최대한 활용해 자사 웹브라우저인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시장 지배력을 높이자는 것이었다.

사실 미국의 독점금지법에는 어떤 회사가 시장을 얼마 이상 독점해서는 안된다는 규정은 없다. 법의 핵심은 독점의 결과 소비자가 입게 될 피해, 나아가 시장의 공정한 경쟁이 얼마나 침해되느냐 여부를 가리기 위한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사의 경우도 단순히 윈도가 90% 이상 시장을 독점했다고 해서 위법 판정을 받은 것은 아니다. 잭슨 판사가 문제 삼은 부분은 개인용 컴퓨터 소프트웨어 시장을 휩쓸다시피한 이 회사가 독점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구사한 불법적 수단이다. 이런 측면에서 문제의 문건들은 정부측 변호인단이 볼 때 마이크로소프트 사의 독점에 따른 불법 행위를 입증하는 더할 나위 없는 증거 자료였던 셈이다.
“최선의 법 적용인가” 논란도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 사는 이처럼 불리한 국면이 계속 전개되는데도 ‘우리는 아무 잘못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를테면 윈도에 웹브라우저인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끼워 파는 행위가 독점을 유지하기 위한 불법 행위라는 정부측 주장에 대해, 마이크로소프트측은 인터넷 익스플로러는 별개 상품이 아니라 윈도에 근거한 ‘혁신품’일 뿐이라고 맞섰다. 또 문제가 된 문건들에 대해서도 마이크로소프트측은 이를 공격적 경영 전략의 하나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미 마이크로소프트 사를 ‘믿을 수 없는 회사’라고 판단한 잭슨 판사에게 이런 주장들은 씨도 먹히지 않았다.

마이크로소프트측은 한 가닥 희망을 과거 우호적 판결을 내린 연방고등순회법원에 걸고 있다. 1998년 6월 고등법원이 끼워 팔기가 불법이라며 ‘윈도 95’에서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분리하라는 잭슨 판사의 1997년 12월 예비 판정을 번복했기 때문이다. 당시 고등법원은 소비자에게 도움이 된다고 전제하고, 마이크로소프트 사가 자사 신제품을 윈도에 끼워 팔 권리가 있다고 판시했다. 당시 판결에 대해 잭슨 판사는 최근 <뉴욕 타임스>와 가진 회견에서 “고법의 판결에 상처를 받았다. 당시 판결은 여러 가지 면에서 잘못된 것이었다”라고 밝혔다.

물론 잭슨 판사가 6월7일 내린 판결은 단순히 마이크로소프트 사의 ‘끼워 팔기 행위’뿐 아니라 불법적인 독점 행위 자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 1998년 경우처럼 쉽게 번복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아이너 엘헤이지 하버드 대학 교수는 상급 법원이 최소한 잭슨 판사가 제시한 마이크로소프트 사의 독점금지법 위반 행위 사실 자체는 뒤집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한두 가지 측면만 장차 상급 법원에서 논란이 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잭슨 판사가 재판 진행을 신속히 하려고 마이크로소프트 사로부터 강제분할안에 대한 공청회 개최권을 박탈한 것이라든가, 웹브라우저인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윈도와 별도 상품으로 취급한 부분은 상급 법원이 재심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전세계인의 관심을 집중시켰던 이 세기적 독점 소송은 일단 원고인 정부측의 승리로 끝났다. 1890년 ‘셔먼 반독점법’이 제정될 때와 지금은 경제 상황이 너무도 다르다는 점에서 잭슨 판사의 법 적용이 최선이냐에 대해서 논란이 없지 않다. 논란의 초점은 이른바 ‘굴뚝 산업’으로 상징되어 온 제조업이 경제의 견인차 구실을 하던 때에 제정된 독점금지법을 과연 첨단 정보산업 중심으로 재편된 21세기의 경제 행위에 적용할 수 있느냐에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잭슨 판사의 판결이 ‘불법 수단을 동원한 독점 유지 행위’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반독점법의 핵심인 ‘경쟁 보장’ 원칙에는 충실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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