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걸음 느리지만 능히 천리를 간다’‘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와 같은 속담은 농경 공동체 사회가 빚어낸 것이어서 후기 산업사회에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속담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인간과 사회를 새삼 돌아보게 한다. 물론‘쇠귀에 경읽기’나 ‘소 닭보듯 한다’는 속담도 있지만, 한 해를 설계하는 새 아침, 소에 관한 ‘악담’은 자칫 느슨해지기 쉬운 삶에 대한 경고로 번역할 수 있겠다.
소띠 해는 여유와 평화의 해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천진기 학예연구사에 따르면, 12간지에서 소(丑)는 동북 방향과 오전 1 ~3시, 음력 12월을 가리키는 방향신이자 시간신. 소의 발톱이 둘로 갈라져 음(陰)을 상징하고 그 성질이 유순하고 참을성이 강해 봄을 기다리는 것 같기 때문이다. 소중한 노동력인 소는 경제성도 높아서 농가의 비상 금고였고, 갖가지 풍속과 어울리면서 전통 문화의 한 핵을 이루었다.
불가에서 소는 ‘인간의 본래 자리’였다. 십우도(十牛圖) 혹은 심우도(尋牛圖). 심우 견적(見蹟) 견우(見牛) 득우(得牛)를 거쳐 반본환원(反本還源)에서 입전수수(入廛垂手)에 이르기까지 소를 찾는 과정이 곧 깨달음의 길이었다. 도가에서 소는 유유자적을 뜻했고, 유가에서는 의(義)를 일컬었다.
쓰레기를 양산하는 대량 소비 문화, 빠른 것이 최고인 속도주의 시대에 소는 비현실처럼 보인다. 그러나 소의 되새김질과 느린 걸음은 ‘미래학’이다. 저마다 끊임없이 반추하지 않는 한, 브레이크 없는 가속도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심우’와 유유자적, 그리고 의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도 그렇다. 소의 생태 앞에서 한국병 가운데 가장 고질병인 냄비 기질, 즉 난데없이 달아올랐다가 순식간에 꺼져버리는 집단 히스테리와 집단 망각증은 부끄럽지 않을 수 없다. 21세기를 향해 달려가는‘사람귀’에 소들이 ‘경’을 읽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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