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국회의사당 지붕 너머 96년의 지는 해
  • 글 李文宰 기자·사진 尹武泳 기자 ()
  • 승인 1996.1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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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 만사 접은 채 ‘나의 나’ 보라 하네
정작 시간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시계는 오직 인간의 물건이다. 시계를 통해 인간은 시간을 인간화한다. 그러나 시간 앞에서 ‘나’를 주어로 사용하는 인간은 그리 많지 않다. 시간 앞에서 거개의 인간은 주어가 아니라 술어이다. 대부분이 시간에 끌려다니는 것이다.

농경 사회에서 하루는 12단위였고, 1년은 24단위로 분할되었다. 해시계가 손목시계로, 아날로그가 디지털로 진화하면서 인간의 하루는 두 배 이상 확장되었다. ‘우리의 1년은 세계의 10년’이라는 한때의 슬로건은 무섭도록 정확한 것이었다. 시간의 단위가 정밀해질수록 인간은 인간다운 삶에서 멀어졌다.

현대인의 삶은 촘촘해진 시간 안에서 눈코 뜰 새가 없다. 잘게 분할된 시간은 역시 잘게 분할된 관계의 그물망을 펼쳤으니 ‘나’는 기억력이 감당하기 어려우리만큼 복잡한 관계에 포위되고 말았다. ‘나’는 없다. ‘나’는 없어지고, 어떤 직장에 다니는 누구, 누구의 남편 혹은 아내, 누구의 부모 또는 자녀, 어느 학교 내지 어떤 지역 출신, 어떤 금융 상품의 계약자, 몇 평짜리 집 아니면 몇 시시짜리 자동차 소유자…가 ‘나’를 대신한다. ‘나’의 중심은 비어 있다.

연말이다. 백분의 1초까지 나타나는 손목시계를 풀고, 관계의 그물망을 거두고 ‘나’의 안쪽을 한번 들여다볼 때다. 모든 세시 풍속은 개인의 나태와 나약을 자극하기 위한 문화 장치이다. 개인은 시간과 관계를 관리하기 어려우므로, 어떤 때를 만들어 문화가 마당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문화의 힘을 역이용해, 단 하루, 아니 몇십 분만이라도 ‘나’를 만나보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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