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최규하, 결국 법정에 끌려나오다
  • 정희상 기자 (hschung@sisapress.com)
  • 승인 1996.1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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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최규하씨가 법정에 끌려나왔다. 12·12 및 5·18 사건 항소심 재판부(재판장 권 성 부장판사)는 1년 가까운 최규하씨의 법정 증언 거부에 강제 구인으로 최종 응수해 최씨의 버티기 작전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이로써 이미 구속된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나란히 재판을 받은 데 이어, 결심 공판장에는 증인 최규하씨까지 함께 서게 되어 헌정 사상 초유라는 기록이 한번 더 경신되었다.

재판부가 최규하씨를 강제 구인한 것은 그를 법정에 불러냄으로써 중대한 사실 관계를 새로이 확인할 수 있다고 보았다기보다는 재판 마무리 과정에서 그의 구인이 명분상 반드시 필요하다는 판단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최씨는 어떤 상황이 올지라도 증언하지 않겠다고 여러 차례 밝혀왔다. 반면 최씨의 버티기 작전에 대한 여론은 갈수록 악화했다. 여야는 물론 각 시민단체도 최씨의 거듭되는 증인 출석 불참 통보를 비난해 왔다. 국민 사이에서는 심지어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박탈해야 한다는 주장도 꼬리를 물었다.

이런 상황에서 2심 재판 막바지로 가면서 최씨가 증언대에 서느냐 여부는 그의 입을 열게 할 수 있느냐와 관계 없이 재판부에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이미 1심 재판부가 최씨의 버티기에 굴복해 증인 채택을 취소하고 판결을 내린 데 대해 여론이 재판부의 무원칙함을 질타했다는 점도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따라서 항소심 재판부로서는 이번에도 끝내 최씨 증언이 무산된 채 재판을 마무리할 경우 국민으로부터 ‘2심까지 거쳤어도 뭔가 석연찮다’는 비판 받을 일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재판부가 부담을 크게 느꼈다는 점은 재판 사상 지극히 이례적인 조처를 취한 것에서도 드러난다. 지난 10월15일 권 성 부장판사는 최씨에게 증인 출석 통보서를 보내면서 ‘진실을 밝힐 마지막 기회입니다. 더 이상의 자리는 없어야 합니다. 많은 국민의 의혹을 끝맺음해야 할 것입니다. 정직이 최선의 정책이라는 말은 누구에게나 타당할 것입니다’라는 요지의 개인적 서한까지 덧붙여 보냈다.
이에 대해 최씨는 ‘전직 대통령의 법정 증언이 국익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소신은 어떤 상황에서도 변함이 없다’는 불참 통지문으로 재판부의 설득을 묵살했다. 그러면서도 최씨는 측근들을 통해 ‘80년 상황은 내란이 아니라고 본다’라는 말을 언론에 흘림으로써 무덤에 갈 때까지 함구하겠다던 자신의 평소 언행과는 다른 모습으로 비치는 행동을 했다.

결국 권 성 부장판사는 여론의 요구를 등에 업고, 재판에 도전하는 듯한 최씨의 태도에 쐐기를 박는 차원에서 강제 구인을 전격 결정한 셈이다.

최씨에 대한 강제 구인이 2심 재판의 끝내기 수순임에는 분명하지만 법정에 끌려나온 최씨가 1년 여에 걸쳐 진행되어 온 재판의 흐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리라 보기는 어렵다. 최규하씨는 12·12와 5·18사건의 진실을 밝힐 열쇠를 쥐고 있는 주인공이다. 재판부가 최씨를 증언대에 세워 얻어 내고자 하는 핵심 사항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79년 12·12 사태 당시, △합수부측이 정승화 총장을 연행한 뒤 대통령이 재가하기까지 과정의 진실 △80년 5·17 비상계엄 확대 과정 △그 해 8월 권력을 전두환씨에게 물려주게 된 배경이 그것이다.

이 중 특히 최규하씨의 대통령 하야 배경은 이번 재판에서 최대 쟁점으로 떠오른 신군부의 내란 여부를 판가름할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가장 중요한 증언이라 할 수 있다. 이 문제는 사안의 성격상 전두환씨와 최규하씨 둘만이 알고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최씨는 국익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소신’을 들어 모든 문제에 입을 다물었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전두환씨와 상반되는 표현을 한 적이 있다.
대미 장식한 재판부의 ‘노력과 용기’

즉 이번 사건 재판 과정에서 전두환씨는 자신이 최대통령을 강압적으로 하야하도록 하지 않았느냐는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80년 당시 최대통령이 자진해 권력을 내놓겠다고 몇번이나 제의했으나 본인은 만류하다가 끝내 눈물을 흘리며 이를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강변했다. 이에 대해 최규하씨는 지난 6월28일 법률 고문인 이기창 변호사를 통해 “87년에도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내가 대통령직 인수를 부탁했다고 말했다기에 내가 청와대 공보비서실에 항의해, 방송이 나가기 10분 전에 삭제된 적이 있다”라고 밝혔다.

어쨌든 최씨는 소신껏 사수하겠다던 ‘국익’의 모양새를 그가 법정에 끌려나오는 모습으로 만천하에 보여준 꼴이 되었다. 대신 온 국민이 최씨에게 갈망했던 역사적 진실은 2심 재판에서도 뒷전으로 물러나고, 최씨를 법정에 세운 재판부의 노력과 ‘용기’만이 대미를 장식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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