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의 북한 문화유산 공개 경쟁
  • 김 당 기자 ()
  • 승인 1997.10.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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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방북팀 ‘취재 보따리’ 의식해, 경쟁사 앞다투어 보도한 듯
한국 언론계에 때아닌 북한 문화재 붐이 일었다. 국내 유력 일간지들이 최근 북한 문화 유적 및 문화재 관련 기사를 연일 앞 다투어 싣고 있다. 그것도 실었다 하면 모두 1면 머리 기사이다. 일찍이 언론이 북한 문화재에 대해 이처럼 동시다발로 관심과 애정을 표시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영문을 모르는 일반 독자들은 어리둥절할 뿐이다.

개통 테이프는 <조선일보>가 끊었다. 이 신문은 10월2일자에서 ‘평양 수산리 고구려 벽화 첫 공개’ 기사를 컬러 사진과 함께 1면 머리 기사로 실은 데 이어, 10월6일자 ‘김부식(金富軾)의 묘향산 보현사 사비문(寺碑文)’기사에 이르기까지 북한 문화재 관련 기사를 연일 1면에 내리닫이로 뽑고 있다. 이 신문은 관련 기사를 ‘단독 입수’한 출처에 대해 ‘지난 6월12일부터 7월1일까지 북한을 방문해 문화재를 조사한 일본의 한국 미술 전문가 기쿠다케 쥰이치(菊竹淳一) 교수(일본 규슈 대학) 등으로부터 현지 촬영한 북한 미술품·문화재 사진을 다량 입수했다’고 밝혔다.

그러자 <동아일보>가 뒤를 따랐다. 이 신문은 10월4일자에서 ‘반 세기 만에 다가온 북한 문화 유산’ 기사를 컬러 사진과 함께 역시 1면에 실었다. 이 신문도 현재 10월6일까지 북한 문화재 관련 기사를 연일 1면에 비중 있게 처리하고 있다. 이 신문은 ‘문화 유산의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해서는 우선 제대로 보아야 한다. 이를 위해 북한의 국보·보물 60여 점을 포함해 북한 전역에 위치한 문화 유산의 가장 최근 모습을 완벽하게 포착한 컬러 사진 3백여 점을 단독 입수해 연재한다’라고 배경을 밝혔다. 그러나 이 신문은 출처를 ‘제3국 거쳐 극비 입수’라고만 했을 뿐 명확한 입수 경로를 밝히지는 않았다.

“<중앙일보> 연재 내년부터 가능”

<한국일보>도 뒤늦게 ‘막차’를 탔다. 이 신문은 10월6일자에서 ‘천년 신비 간직한 고구려 여인의 미소’ 기사(1면 사이드 톱)와 함께 ‘북한 5대 고구려 고분 벽화’ 화보(13면)를 실어 다른 매체와 차별성을 꾀하려고 애썼다. 이 신문은 출처에 대해 ‘최근 북한 정부가 북한 문화재를 총 20권으로 엮어 소개한 <조선유적유물도감>을 단독 입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국일보사는 이 도감을 최근 입수했는지 모르지만, 이 도감은 북한의 조선유적유물도감 편찬위원회가 91년 펴낸 것이어서 웬만큼 북한 유산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다들 한 질씩 갖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이 신문들이 내세우는 것은 한결같이 ‘단독 입수’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간지들이 하필이면 엇비슷한 시기에 이를 단독 입수해 1면에 비중 있게 처리한 배경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해당 신문사 관계자들은 딱 부러지게 밝히지 않지만 언론계에서는 경쟁사의 보도를 의식한 ‘사전 김빼기’라는 것이 일반적 관측이다. 즉 최근(9월23일∼10월4일) 북한을 다녀온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소장 권영빈) 방북팀의 귀국 시점에 타이밍을 맞춘 전략적 보도라는 것이다. 언론계 동향에 정통한 안기부의 한 관계자도 <중앙일보> 방북팀에 관해, 반억류 상태로 있다 왔다느니, 방북 보따리에 별것이 없다느니 하는 소문이 나돌아 사실을 확인해 보았더니, 대부분 일부 경쟁사가 퍼뜨린 소문으로 확인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중앙일보>는 방북 사실을 단 한 줄도 보도하지 않고 있어 궁금증을 더하고 있다. 이에 대해 권영빈 소장은 “보도건은 처음부터 통일원과 협의키로 돼 있었다. 그러나 방북 결과에 대해서는 만족한다”라고 밝혔다. 또 동행한 유영구 차장도 “우리의 방북에 경쟁사들이 너무 긴장해서 이런 일(북한 문화재 붐)이 생긴 모양이다. 그러나 이번 방북 목적은 취재 보도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사전 협의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영락없는 ‘부자의 몸조심’이다.

한편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북한편을 쓰기 위해 함께 방북한 유홍준 교수(영남대)도 “당장 뭘 시작하는 것은 없다. 예정대로 오는 11월에 4월 재방북이 확정되면 내년부터나 <중앙일보> 연재가 가능할 것 같다”라고 밝혔다. 결국 다른 언론의 김 빼기 보도는 ‘헛발질’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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