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회장, 이산가족 상봉 물밑 작업?
  • 김 당 기자 ()
  • 승인 1997.10.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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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에 극비 방북 ‘모종의 역할’ 한 듯…<중앙일보>와 MBC‘방북 특별 기획’ 추진
얼음장 밑으로도 핏줄은 흐르는 것일까. 최근 북한을 방문했거나 중국 등 제3국에서 북한 당국 관계자들을 접촉한 대북 사업가들에 따르면, 남북 이산 가족 상봉을 위한 물밑 접촉이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주목할 사실은, 북한의 해외 공관이나 주재기관 관계자들이 이산 가족 생사 확인과 상봉을 주선하겠다고 적극 제의하고 있어 이 사업이 성사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남북 정부, 가족 상봉 사업에 적극적

<시사저널>은 9월 초에 이같은 흐름의 일단을 포착해 여권 핵심부가 극비로 추진해온 이산 가족 상봉 프로젝트를 단독 보도했다. 또 <한겨레>는 9월18일자 1면 머리 기사로 북한 당국이 최근 이례적으로 이산 가족의 제3국 상봉을 적극 제안해 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두 보도에 따르면, 상봉을 주선하는 주체가 상반되기는 하지만, 남북한 당국이 모두 이산 가족 상봉 사업에 적극성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이와 관련해 주목할 사실은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의 움직임이다. 얼마전 북한을 방문하고 온 한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김우중 회장은 9월13∼16일 비밀리에 북한을 방문하고 왔다. 이 소식통은 “특별한 사업 현안이 없는데도 김회장이 추석 연휴 기간에 비밀 방북한 것은 정부의 밀사 임무를 띠고 간 것이 아니냐는 관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 임무는 이산 가족 상봉을 위한 접촉일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회장의 일정을 관리하는 회장 비서실 관계자들은 “전혀 아는 바 없다”라고 말했다. 통일원과 정보기관 관계자들도 김회장이 방북한 사실이 확인된 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앞서의 소식통은 김회장의 방북 일정과 김회장이 북경 캠핀스키 호텔에서 묵은 사실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신빙성을 크게 하고 있다. 또 북경에 나와 있는 북한 주재기관의 한 관계자는 9월22일 전화 통화에서 “방북 목적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김회장이 지난주에 방북했다는 말은 들었다. 내일(9월23일)도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관계자 4명이 방북하기로 돼 있다”라고 말했다.

지난 6월부터 방북을 추진해온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소장 권영빈) 관계자 4명이 방북하는 목적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집필한 유홍준 교수의 북한편 답사기를 <중앙일보>에 연재하기 위한 것이다. 한편 ‘금강산의 4계절’을 카메라에 담기 위한 목적으로 방북을 추진해온 MBC의 방북 여부도 관심거리이다. MBC가 추진해온 방북 목적은 형식상 북한의 명산을 카메라에 담는 것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이번 방북을 계기로 천만 이산 가족 상봉을 위한 특별 프로그램 제작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민간 단체들의 이산 가족 상봉 사업 추진 움직임도 활발하다. 남북 적십자회담을 제안한 정원식 대한적십자사 총재도 최근 판문점에 ‘이산가족 상설면회소’를 설치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북한이 판문점을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커 내부적으로는 단동·연길·심양 등지에 면회소를 설치하는 문제도 검토하고 있다. 앞서의 소식통은 이와 관련해, 연길 시에 있는 대우호텔에 이산 가족 면회소가 설치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김우중 회장의 방북 역할론이 제기된 연결고리가 바로 대우호텔인 셈이다.

“북한, 한국의 새 정권에 선물 줄 것”

정부와 정치권의 움직임도 여건 조성에 긍정적이다. 정부는 당장 내년부터 영세 실향민들이 북에 두고온 이산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거나 제3국에서 상봉하는 데 드는 비용 일부를 보조금(백달러) 명목으로 지원키로 했다. 또 국민회의는 얼마전 남북 이산 가족 재회를 추진하는 중심 기구로서 ‘이산가족 정보통합기구’를 만들어 비정치적으로 체계적 접근을 하자고 제안해 관심을 끈다.

북한 당국의 적극적인 움직임도 여건 조성을 돕고 있다. 최근 북한측과 접촉한 한 대북 교역 사업가는 “북한 당국이 이산 가족 상봉 문제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은 식량난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이 이 사업을 고리로 북한 출신 한국 기업인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쪽으로 실리적인 접근을 강조해온 한국측의 논리를 수용할 의사를 보이고 있어 전망이 밝다”라고 말했다. 이 사업가는 올해 안에는 여건이 조성되고 ‘선물’은 내년에 들어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영삼 정부와 대화하기를 거부해온 북한 정권이 내년에 탄생하는 새 정부에 대한 선물로 이산 가족 상봉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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