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의 한 주
  • 박재권 기자 ()
  • 승인 1996.09.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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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타이태닉호, 다시 전설 속으로…
세계인의 관심 속에 시작된 호화 유람선 타이태닉호 잔해 인양 작업이 실패로 돌아갔다. 당초 인양팀은 물보다 가벼운 탄화수소를 채운 특수 부양물을 이용해 인양할 계획이었는데, 잔해가 수심 65m까지 올라온 상태에서 부양 기구의 줄이 끊어져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

2천2백여 승객과 승무원을 태우고 영국의 사우스햄프턴에서 뉴욕으로 향하던 호화 여객선 타이태닉호가 바다 속으로 가라앉은 것은 1912년. 처녀 출항에 나섰던 이 배는 대서양을 항해하던 중 캐나다의 뉴펀들랜드 남쪽 해상에서 빙산에 부딪혀 침몰했다. 이로 인해 1천5백28명이 사망하고, 선체도 심해에 가라앉고 말았다.

그 뒤 배의 정확한 위치가 밝혀진 것은 85년이다. 3천9백m 심해저에서 발견된 이 배의 독점 인양권을 넘겨받은 RMS 타이태닉사는, 87년 이후 지금까지 약 4천 점의 물품을 끌어올렸고, 최근에는 최신 탐사·인양 장비를 동원해 무게가 21t에 이르는 선체 일부를 인양하는 작업을 추진했던 것이다. 이 잔해는 지금까지 인양된 것 가운데 가장 큰 것으로서, 역사학자와 영화업자 등이 특히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회사측은 그같은 관심을 이용해 1인당 4만 프랑(한화 6백40만원)을 받고 인양 현장까지 안내하는 법석을 떨었지만, 인양 작업은 결국 실패했고, 타이태닉호의 진실은 전설 속으로 다시 침몰하고 말았다.

 
인도

“테레사 수녀님 일어나세요”
가정과 사회에서 버림받고 갈 곳 없는 이들을 위해 자신을 던진 ‘살아있는 성녀’ 테레사 수녀. 7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그는, 8월27일 87회 생일을 맞았으나 말라리아와 심장 이상 증세로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다. 10여 일이 지난 지금 상태는 다소 호전되었지만, 아직 일반 병실로 옮길 정도는 못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1910년 마케도니아의 스코페에에서 식료품 가게를 하는 알바니아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원래 이름이 아그네스 곤자 보야쥬였다. 18세 때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로렌토 수녀단에 들어간 그는, 이듬해 인도로 옮겨 캘커타의 성마리아 고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38세 때 인도 시민권을 얻고 수도원을 떠나 캘커타의 빈민굴로 들어간 후, 이곳에서 자기가 가르치던 여학생들과 함께 사랑의 선교회를 세워 본격적인 빈민 돕기에 나섰다.

하지만 정작 그가 자신을 위해서 남긴 것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병원에서 의식을 회복했을 때 가장 먼저 걱정한 것이 자신의 병원비였을 정도로 검소했던 그이기에, 캘커타의 중환자실로 쏠리는 세계인의 기도는 더더욱 간절하기만 하다.

 
이라크

후세인, 석유 팔려고 쿠르드족 공격

‘송유관의 안전을 확보하라’. 8월31일 이라크군이 36도선 이북의 비행 금지 구역에 있는 국내 쿠르드족 거점에 대대적인 공격을 퍼부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91년 걸프전 이후 금지되어온 원유 수출 재개를 한 달 정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송유관이 지나는 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친 이란계 쿠르드족을 소탕하기 위한 것이다.

이라크가 원유를 수출하게 된 것은 지난 5월 유엔 안보리 결의 986호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라크는 6개월간 20억 달러어치, 즉 하루에 70만 배럴씩 원유를 수출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걸프전 이전에 하루 3백20만 배럴씩 수출했던 것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양이다. 게다가 원유 수출 대금 20억 달러 가운데 정작 이라크한테 돌아오는 것은 절반밖에 안되고, 그것도 식량과 의약품을 사는 일에만 쓸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나머지 10억달러는 △이라크의 핵 및 화학 무기 개발 상태를 조사하는 유엔 조사단의 활동비와 △걸프전 피해 배상비에 7억달러 △송유관이 통과하는 지역에 사는 쿠르드족에 3억달러 정도 써야 한다. 이라크는 이같은 부대 조건 때문에 안보리 결의안을 받아들이지 않다가 결국 지난 5월 수락했던 것이다.

이번 사태가 더 이상 악화되지 않는다면 걸프전 때처럼 다국적군이 개입하는 사태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라크의 원유 수출도 예정대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결국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치고 빠지는 식의 전략을 구사해 적대적인 쿠르드족 세력을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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