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전쟁, 제2라운드 돌입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1996.08.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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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라운드 본격 開戰/이건희 회장 공격 받자 <중앙>, <조선> 과거사 기사화
 
언론중재위원회가 갑자기 바빠진 것은 지난 7월24일이었다. 그로부터 열흘이 지난 8월3일 현재 <중앙일보>가 언론중재위원회에 중재를 신청한 기사는 무려 25건에 이른다. 상대는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국일보>. 지난 7월15일 남원당 보급소 살인 사건 이후 불붙은 <중앙일보>와 다른 언론사 간의 ‘신문 대란 1996 라운드’는 이로써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우선은 ‘난투’ 장소가 지면에서 중재위로 옮겨갔다.살인 사건의 직접적인 피해자인 <조선일보>는 사건 이후 보름 남짓에 △‘중앙일보, 다른 신문 가판 싹쓸이 말썽’(7월19일)처럼 <중앙일보>를 비판하는 기사와 △‘삼성생명 부당 약관 물의’(7월21일), ‘삼성, 중소업종 당밀 수입 참여’ (7월18일), ‘삼성 간부 2명 군 기밀 빼내’(7월24일) 등 <중앙일보> 모기업인 삼성그룹의 각종 비리를 파헤치는 기사를 집중적으로 실어 왔다. <동아일보>와 <한국일보>도 여기 가세했다.

<조선일보> 등의 ‘삼성·중앙 흠집 내기’ 기사는 지난달 말부터 겉으로는 자취를 감췄다. 올림픽과 경기 북부지방 물난리처럼 굵직한 현안이 터져 나온 탓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지나친 삼성·중앙 비판 기사가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삼성측의 반격이 시작된 것은 이때부터였다.

지난달 27일 전국 주요 일간지에는 ‘진실은 결코 왜곡될 수 없습니다’라는 제목의 광고가 실렸다. 삼성항공 명의로 된 이 광고는 7월23일 당국이 발표한 군사 기밀 유출 사고와 삼성항공 간에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으며, 그런데도 <조선일보>를 비롯한 몇몇 언론이 이를 악의적으로 왜곡 보도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와 때를 맞춰 삼성 10개 계열사도 집단 언론 중재 신청으로 여기 가세했다.

흥미있는 것은 <중앙일보>의 대응이다. 언론 중재 신청을 진두 지휘한 <중앙일보>의 이규진 기획국장은 “언론 사상 초유의 사태인 이번 제소가 한국 언론계의 ‘부도덕한 관행’을 뿌리 뽑을 역사적 전기가 될 것임을 확신한다”라고 못박는다. <중앙일보>는 이번 사태를 ‘언론사간 담합에 의한 <중앙일보> 목조르기’라는 관점에서 파악하고 있다. 지난해 조간 전환 이후 섹션화·가로쓰기 등 <중앙일보>의 개혁 시도가 잇단 성공을 거두면서 이에 위협을 느낀 언론사들이 기회를 틈타 융단 폭격식 공격을 감행했다는 것이다. <중앙일보>의 매출액(4천46억여원)이 지난해 처음으로 10년 가까이 수위를 지켜온 <조선일보>(3천9백29억원)를 앞지른 사실은 이같은 분석을 설득력 있게 하고 있다.

‘<중앙> 기자, 타 언론 사주들 비리 취재중’ 소문도

따라서 지면을 동원한 소모전은 자제하되 언론 중재 신청, 나아가 법정 소송까지도 불사하겠다는 것이 <중앙일보>의 기본 입장이다. 특히 <중앙일보>는 삼성이 먼저 <조선일보> 등에 화해를 제의해도 독자적으로 제소를 추진할 방침임을 밝히고 있어 눈길을 끈다. 사실상 삼성은 애틀랜타올림픽에서 이건희 회장이 돌아온 후, 보름 넘게 중단했던 주요 일간지 광고를 다시 시작하는 등 언론과의 화해 움직임을 가시화하고 있다.
그런데도 <중앙일보>가 이처럼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배경은 두 가지로 관측된다. 하나는 직원들의 격앙된 분위기를 달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다. 이번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면서 <중앙일보> 기자와 직원 일각에서는 ‘우리도 참을 만큼 참았다’며 회사의 미온적 대응에 불만을 표시하는 소리가 높았다. 특히 기업의 속성상 언론사를 상대로 더 이상 강경 대응을 하기 어려운 전국 20만 ‘삼성맨’의 사기 진작을 위해서라도 <중앙일보>가 대신 총대를 메야 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삼성과의 분리 제스처라는 분석이다. ‘언론 대란’이 진행되는 동안 삼성과 <중앙일보>는 독자적인 대응을 강조해 왔다. 삼성이 연일 언론에 두들겨맞아도 <중앙일보>는 이를 ‘애써’ 외면했다. 삼성 또한 <중앙일보>가 있어 우리에게 득된 것이 뭐가 있느냐’는 식의 비판을 외부에 흘려 왔다.

다른 언론사들은 이에 대해 ‘소가 웃을 얘기’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표면상 <중앙일보>가 지면에서 이번 사태를 다룬 것은 지난달 24일자 대국민 성명과 닷새 후인 29일자 문병호 편집부국장의 칼럼이 전부였다. 그러나 ‘누가 누구를 때리는가’라는 제목의 29일자 칼럼은 ‘재벌 신문은 안된다고 외치는 <조선일보>는 일제 식민 치하에서 내선일체를 주창하던 친일 어용지를 금광 거부(巨富) 방응모 선생이 인수해 중흥시킨 것이 아닌가’처럼 특정 언론사를 겨냥한 대목으로 눈길을 끌었다. <중앙일보>는 그전에 여러 차례 독자 여론 조사를 통해, 지면으로 맞대응하는 것이 오히려 이미지 관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그런데도 <중앙일보>가 이같은 ‘실탄’ 공격에 나선 것은 <조선일보>가 삼성의 마지노선을 건드렸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도화선에 불을 붙인 것은 <조선일보>의 7월27일자 ‘김대중 칼럼’이었다. 김대중 주필은 <‘反 재벌+신문’ 論>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삼성 이건희 회장을 직접적인 공격 목표로 삼았다. 김주필은 삼성이 <중앙일보>를 소유한 데 그치지 않고 최근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반문하면서 ‘기업을 잘해서 돈을 많이 벌고 나면 명예를 얻고 싶은 것이 인간의 상정이며, 명예를 얻고 나면 권력까지 갖고 싶어지는 것이 재벌의 가는 길이 아니냐’라는 우회적인 표현으로 이회장의 권력 의사를 타진했다. 권력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무리와 억지를 무릅쓰고라도’ <중앙일보>를 ‘일등 신문’으로 만들려는 것이 아니냐는 ‘대담한’ 가설이 그 배후에는 깔려 있었다.

바로 여기에 <중앙일보>가 ‘경고의 일침’을 쏘아보냈다는 해석이다. 이미 언론가에는 <중앙일보> 기자들이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국일보> 3사 사주의 비리를 집중 취재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던 참이었다.

기업과 총수를 더 이상 다치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삼성과 <중앙일보>는 이제까지의 공약이었던 ‘연내 분리’를 서둘러야 할 상황이다. 이미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국일보>는 사설과 칼럼을 통해 ‘삼성과 중앙의 분리만이 사태를 해결하는 근본책’임을 공개적으로 촉구한 바 있다. 따라서 <중앙일보>가 언론 중재 신청 등 표면상 강경 대응에 나선 것은 ‘명분 축적용’에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기회에 <중앙일보>가 달라진 위상을 안팎에 과시함으로써, 현재의 언론 시장 구조상 곧 다시 벌어질 수밖에 없는 ‘전투’에서 유리한 고지를 미리 확보하고자 하는 포석으로 보는 시각 또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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