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선 통과한 DJ, 비장의 카드 내민다
  • 文正宇 기자 ()
  • 승인 1997.05.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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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 하야시켜 ‘판’ 새로 짜기 시도할 가능성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가 가장 먼저 대통령 선거 본선에 올랐다. 김총재는 5월19일 열린 국민회의 전당대회에서 정대철 후보를 압도적인 표 차로 따돌리고 대통령 후보 자리를 따냈다. 그는 총재 경선에서도 김상현 후보를 역시 비슷한 표 차로 누르고 당선되어 대선을 앞두고 당을 일사불란하게 지휘할 수 있게 되었다.

김총재는 이번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알맞게’ 득표했다. 김총재 진영에서는 더도 덜도 말고 70~75% 득표하기를 바랐다. 김총재가 80% 이상 득표하면 가뜩이나 김총재의 사당(私黨) 이미지가 강한 국민회의의 경선 효과가 반감하고, 상대인 정후보가 30% 이상 득표하면 야권에서 제3 후보론이 다시 고개를 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선에서 김총재는 3천2백23표(77.5%), 정후보는 9백7표(21.8%)를 얻었다. 김총재 처지에서는 비교적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것이다. 따라서 김총재 진영에서는 개표 결과가 발표되자 자연스럽게 ‘황금 분할’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여당 예비 주자와 꾸준히 물밑 접촉

김총재는 대선 예비 주자들 중 가장 먼저 당내 예선을 순조롭게 통과함으로써 여당 경쟁자들에 비해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더 이상 당내 경선에 힘을 소모하지 않고, 대선 예비 주자가 아닌 대선 후보로서 유권자 전체를 상대해 적극 활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상대적으로 여당의 당내 경선 양상은 갈수록 혼란스러워지고 있다. 이회창 대표에 대항해 여당의 여타 후보들이 똘똘 뭉쳐 7월15~16일께로 예정되어 있는 전당대회를 연기하라고 요구하고 있어, 신한국당은 언제 후보를 확정할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한 상황이다. 따라서 김총재는 여당 후보에 비해 적어도 두 달 이상 시간을 번 셈이다.

하지만 김총재가 마냥 순풍을 타고 질주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전당대회에서 정대철 후보가 지적했듯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유권자들은 김총재를 가장 경륜 있고 자질을 갖춘 인물로 꼽지만, 막상 대통령으로 찍겠느냐고 하면 싫다는 사람이 많은 것이 ‘엄연한’현실이다. 김총재는 이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DJP 단일화를 제시했지만 그 역시 성사가 극히 불투명하다. 만약 DJP 단일화에 끝내 실패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국민회의 주류에서도 DJP 단일화에 당력을 집중하다 좌절하면 ‘DJ도 출마를 포기하고 대안을 찾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오는 판이다. 만약 여당이 당내 경선 과정에서 큰 진통을 겪지 않고 후보를 확정하면 DJP 단일화가 성사해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게 된다.
김총재는 전당대회에서 후보로 확정되면 DJP 단일화에 힘을 집중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김총재 자신이 JP와의 단일화 협상이 순탄하지 않으리라는 점을 잘 알기 때문에 DJP 협상에만 매달리지는 않을 것 같다. 김총재의 한 측근은 “DJ는 현재 DJP 단일화 정도가 아닌 정치권 전체에 지각 변동을 일으킬 수 있는 큰 틀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김총재가 구상하고 있는 큰 틀이란 무엇일까. 현재 김총재는 김영삼 대통령의 대선 자금 문제를 끈질기게 물고늘어지고 있다. 김총재는 이번 전당대회에서도 김영삼 대통령에게 대선 자금 내역을 숨김 없이 밝히고 용서를 빈 다음 신한국당을 탈당하고 중립 내각을 구성하라고 촉구했다. 그리고 김대통령이 이런 조건을 받아들인다면 무사히 임기를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이로 미루어 김총재가 구상하고 있는 큰 틀이란 대선 자금 공세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김총재가 대선 자금 공세를 통해 얻으려는 것이 무엇인지는 대체로 드러나 있다. 김대통령을 대선 전선에서 밀어내 여당 대권 후보의 프리미엄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부수적으로 여당 진영의 자중지란도 노리고 있다. 김총재는 이탈 가능성이 높은 여당 예비 주자들과도 물밑에서 활발히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DJ+TK+JP까지 노려

김총재는 여당의 이탈 후보와 최근 포항 보선 출마를 선언한 박태준씨를 포함한 TK 세력을 끌어들인 뒤 JP가 끌려들어오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는 복안도 갖고 있다. 실제로 김총재는 박태준씨가 일본에서 낭인 생활을 할 때부터 수시로 사람을 보내는 등 박씨에게 각별하게 공을 들여 왔다.

하지만 김총재 진영 내부에서는 이보다 훨씬 과격한 논의도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대통령을 하야시켜 아예 정치권의 판을 새로 짜자는 것이다. 김대통령을 물러나게 하고 신한국당을 괴멸시켜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여당 후보니 야당 후보니 하는 말조차 나오지 못하게 만들자는 주장이다. 말하자면 다음 대통령 선거를 김대중이라는 거인과 고만고만한 주자들이 대결하는 구도로 가져 가자는 것이다. ‘모든 것을 걸고 격렬한 변화를 꾀해야만 김총재가 대통령이 될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얘기이다.

생애 네 번째로 대통령 선거에 도전하는 김총재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투지가 예사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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