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자금' 다물고 '사정의 칼' 뻬든 YS
  • 吳民秀 기자 ()
  • 승인 1997.06.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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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 바람 앞세워 ‘정국 주도권’ 회복 노려… 야당, 대통령 하야 요구하며 강공
또YS식 정면 돌파인가. 김영삼 대통령은 92년 대선 자금을 포괄적으로 공개한다는 방침에서 ‘과감하게’ 공개 불가로 급선회했다. 이에 따라 가까스로 대화 국면으로 전환해 가던 정치권에 다시 적신호가 켜졌다. 야당은 야당대로 대여 투쟁의 마지막 선을 넘어서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대통령 하야 문제’까지 거론하며 맹공에 나선 것이다.

더구나 청와대는 대선 자금 비공개 입장 표명에 때를 맞춰, 지방 자치단체장을 포함한 고위 공직자 비리에 대해 대대적이고 지속적인 내사 방침을 밝혔다. 한보 사건 이후 수세적 상황에 놓였던 김대통령이 ‘마지막 칼’을 뽑아든 것이다. 특히 청와대 민정비서실이 주도하고 있는 이번 고위 공직자 사정 대상에 야당 소속 자치단체장이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자, 야당은 ‘대선 자금 정국에서 빠져나오려는 국면 전환용 표적 수사’라며 다양한 대여 투쟁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공개 불가로 바뀐 이유

김대통령이 92년 대선 자금에 대한 입장 표명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기까지, 대선 자금 공개 여부를 둘러싼 청와대내 기류는 반전을 거듭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윤여준 청와대 대변인은 5월19일 대선 자금 입장 표명 초안을 작성해 김대통령에게 보고하기까지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청와대 비서실내 전반적인 흐름은 김대통령이 대선 자금에 대해 ‘포괄적 입장 표명’을 하고, 고비용 정치 구조를 개혁하는 쪽으로 국면 전환을 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은 며칠 사이에 180도로 바뀌었다. 청와대의 입장이 이처럼 급선회한 배경에는, 김대통령의 대선 자금 포괄 공개 자체가 ‘대통령의 위법 사실’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격인 데다가, 오히려 집권 여당의 비리에 잔뜩 날이 선 민심을 자극하는 역효과를 부를 수도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고 보인다. 또한 야당이 처음에는 반발하더라도 끝까지 물고늘어지지 못할 것이라는 자신감이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정가에서는 김대통령이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에게 ‘대선 자금 문제를 계속 건드리면 공멸할 수도 있다’는 사인을 보냈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

그러나 ‘한보의 몸통’으로까지 거론되는 92년 대선 자금 의혹에 대해 불행한 사태를 막기 위해 덮고 넘어가겠다는 청와대의 논리는 설득력이 없다. ‘포괄적 공개 후 사과’라는 누구나 예상했던 대선 자금 해법을 무시하고 정면 돌파하려는 YS의 결심은, 야당의 반격은 물론이고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수도 있다.

우선 청와대가 이러한 방침을 정하기가 무섭게 대대적인 공직자 사정을 주도하고 나섰다는 사실도, 여론으로부터 따가운 질책을 면하기 어렵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이라고 보기에는 사정의 폭과 대상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하도 숨기는 일이 많아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오리발’이라고 별명을 붙인 문종수 민정수석 비서관이, 이례적으로 ‘공직자 내사 대상자는 70여 명이고, 정치인과 광역단체장도 10여 명이 포함되어 있다’고 사정의 폭과 대상을 공개한 것도 의혹을 사고 있다. 현재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는 정치권 사정 대상자 중에 유종근 전북지사와 송언종 광주시장 등 야당 인사 이름이 유독 부각되고 있는 점도 그렇거니와, 사정 당국이 진작부터 포착해온 비리들을 한데 묶어 몰아치기식 수사를 벌이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민정비서실의 ‘기획’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는 이번 고위 공직자 내사는, 단순히 대선 자금 국면에서 탈피하는 차원을 넘어서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의 단계별 목표는 크게 △사정을 지속적으로 벌임으로써 공세적 상황으로 반전을 꾀하고 △대선 주자에게 줄서기하는 것을 막아 정국 주도권을 회복하고 △청와대를 축으로 정치권에 긴장을 조성해 경제 위기 등 난국 해결 의지를 다시 과시하겠다는 것이다.

‘무딘 칼’로 여론 잠재울지 의문

청와대는 이를 위해 검찰·경찰·안기부·기무사·감사원을 총동원한다는 복안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즉 임기 말까지 사정을 계속함으로써, 여당 대선 후보 문제를 포함해 정국 흐름을 YS의 의도대로 끌고 가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한보 정국을 거치면서 이미 무뎌질 대로 무뎌진 YS의 칼이 제대로 먹혀들지 여부이다. 야당은 YS 하야까지 거론하며, 거리 투쟁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방침이다. 현재 DJ 진영은 YS의 92년 대선 자금 관련 자료를 추가로 폭로할지 검토하고 있다.

관건은 대선 자금을 공개하라는 여론을 사정 국면으로 돌파하려는 청와대의 의도가 국민에게 먹혀들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현재 컴퓨터 통신망에는 간혹 ‘대선 자금 공개 불가’를 지지하는 글도 올라오고 있지만, 이를 비난하는 글이 압도적으로 많이 오른다. 다음은 통신망에 올라온 글 중의 하나.‘국민을 들러리로 알면 전두환·노태우 꼴 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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