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와 경찰 ‘낯 뜨거운 대결’
  • 주진우 기자 (ace@sisapress.com)
  • 승인 2004.05.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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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 난동 싸고 서로 “네 잘못”…판사는 조사 안받고 귀가해 눈총
5월14일 금요일 밤 11시50분. 서울 양천구 목동에서 판사 곽 아무개씨(39)와 곽판사의 후배인 교사 최 아무개씨(33)가 택시에 올랐다. 술을 거나하게 마신 터였다. “전라도 광주로 갑시다.” 택시가 출발하자 조수석에 탄 곽판사가 발을 물품보관함 위에 올렸다. 택시기사 김아무개씨(46)는 ‘운전에 방해된다’며 발을 내리라고 했다. 이 과정에서 시비가 일자 뒷자리에 앉은 최씨가 ‘발 올려놓는 게 뭐가 문제냐’며 택시기사를 폭행했다.

택시기사 김씨가 경찰에 신고해 양천경찰서 목1지구대 소속 경찰관이 출동했다. 최씨는 출동한 경찰관마저 폭행했다고 경찰은 주장했다. 두 사람은 목1지구대를 거쳐 양천경찰서로 연행되었다. 당시 곽판사는 “나는 현직 판사다. 영장을 제시하고 적법 절차를 밟아라. 경찰서에는 안 가겠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경찰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곽판사가 참고인으로 자진해서 간 것이다”라고 말했다.

0시50분께 양천경찰서로 옮겨진 곽판사와 교사 최씨의 행동은 거칠어졌다. 경찰에 따르면, 최씨와 곽판사는 경찰관의 멱살을 잡은 채 경찰서로 우르르 들어왔다. 최씨는 “너희들 내일 다 죽는다. 다 옷 벗을 줄 알아라”고 폭언을 퍼부으며 동행한 지구대 경찰관을 향해 연신 주먹을 날렸다고 한다. 소란이 그치지 않자 경찰은 최씨에게 수갑을 채웠고, 이에 곽판사가 흥분했다. 김 아무개 경사의 얼굴을 때리고, 옆에 있던 이 아무개 경장에게도 주먹을 날리고 허벅지를 걷어찼다. 이를 제지하려던 당직 형사 나 아무개씨의 얼굴을 머리로 들이받고 주먹을 날렸다. 경찰이 곽판사에게도 수갑을 채웠다. 경찰은 곽씨가 판사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한 경찰관은 “수갑을 채울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다. 둘은 당직 반장에게 ‘야, 늙은 놈 이리 와’라며 폭언을 그치지 않았다”라고 했다.

나중에 조사 받겠다던 곽판사 “출두 안한다”

반면 곽판사는 “한 시민으로서 불법 체포 감금에 대해 버틴 것이다. 경찰서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버티다 구두 밑창이 다 나갈 정도로 경찰은 가혹했다”라고 말했다. 최씨는 “경찰서에서 폭행당해 2주 진단을 받았다. 경찰은 곽판사와 나에게 수갑을 채우고 가슴팍을 발로 찼다”라고 말했다. 난동은 경찰서 안의 일반 민원인들에게까지 번졌으나 곽판사의 신분이 확인되면서 사그러들었다. 한편 경찰서 내의 폐쇄 회로 카메라는 고장나 작동되지 않았다고 한다.

서울 양천경찰서는 경찰을 폭행한 혐의(공무집행방해 등)로 교사 최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그러나 곽판사는 조사도 받지 않고 귀가했다. 담당 경찰은 “술에 취해 조사를 받을 수 없다며 16일 오전에 오겠다고 했다. 부장판사가 신원보증을 해 귀가 조처했다”라고 말했다.

곽판사는 경찰에 출두하지 않고 있다. 경찰에서 온 전화는 아예 끊어버린다고 한다. 곽판사는 “경찰에 폭행당한 피해자가 가해자 경찰에게 조사를 조사받을 이유가 없다”라고 말했다. 또 곽판사는 경찰과 맺은 전제가 무너져버려 경찰서에 나갈 이유가 없다고 했다. 교사 최씨는 “경찰은 곽판사는 빼고 나만 조사하고, 나는 경찰의 멱살을 잡은 것으로 하자는 전제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유야 어떻든 경찰 조사에 응하지 않는 곽판사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다. 한 판사는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진리 위에 판사가 군림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일단 경찰 조사를 받고 이후에 법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현명해 보인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판사를 조사하지도 않고 돌려보낸 경찰을 질타하는 소리가 높다. 한 경찰 간부는 “술 때문에 조사받기가 어렵다며 돌려보낸 경찰의 대응은 매끄럽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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