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해커부대’ 정말 있나
  •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4.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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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언론 “미국 CIA 뺨친다” 대대적 보도…‘남한 침투’ 사례 확인 안돼
“김정일의 직접 지시에 의해 정예의 해커부대를 운영하면서 우리측 국가기관 및 연구기관을 대상으로 해킹을 통한 정보 수집을…” 5월27일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 송영근 사령관은 서울 대방동 공군회관에서 열린 ‘국방정보보호 컨퍼런스’ 개회사에서 이렇게 밝혔다.

‘해커부대’라는 단어의 상품성 덕분인지 이 뉴스는 대대적으로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언론은 ‘北 컴퓨터 해킹 능력 美 CIA 뺨치는 수준’(동아닷컴) “북, 김정일 지시로 南정보 해킹”(조선일보)이라며 사회 분야 머리 기사로 다루었다. ‘매년 해커 1백명 양성’ ‘CIA와 맞먹는 실력’이라는 부제도 더해졌다. 특히 네티즌들의 관심이 높아서 포털 사이트마다 이 뉴스가 ‘가장 많이 조회된 기사’로 꼽혔다.

북한 해커가 한국 정부기관 사이트에 침투해서 정보를 빼내가고 있다면 큰 문제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보도 내용을 찬찬히 뜯어보면 실제보다 과장된 내용이 많다. 예를 들어 북한 해커 부대의 수준이 미국 중앙정보국(CIA)에 맞먹는다는 내용이 그렇다. 북한 해커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약방의 감초처럼 인용되는 문구지만 그 출처를 아는 사람은 없다.

기사 검색 결과 이 ‘CIA 수준론’이 최초로 보도된 것은 3년 전인 2001년 5월28일이었다. 국내 언론은 당시 ‘미 국방부는 북한과 중국의 해킹 능력이 CIA 수준에 다다른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기자들이 그 보고서를 직접 본 것은 아니고, 익명의 한국군 관계자를 통해 간접 인용한 것이다. <시사저널>은 그 미국 국방부 보고서의 존재 여부에 대해 국가정보원·국방부·기무사에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어떤 기관도 ‘알 수 없다’거나 ‘담당자가 퇴직했다’며 답해주지 않았다.

“북한 인터넷망 2002년부터 깔리기 시작”

무엇보다 2001년 5월에는 북한에 인터넷이라는 것 자체가 없었을 때였다. 2002년 <시사저널>이 국가정보원에 북한에 인터넷이 존재하는지 여부를 문의했을 때(제654호 참조) 국정원은 북한에 인터넷 망이 없다고 답한 적이 있다. 최근까지 북한에서 인터넷 사업을 했던 한 기업가는 “북한에 인터넷선이 물리적으로 깔리기 시작한 것은 2002년 후반부터다. 중국과 북한이 인터넷 케이블을 연결하는 협상에 내가 참여했기 때문에 자신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물론 중국을 통해 군사용으로 단선을 끌어 쓸 수는 있지만, 이런 폐쇄적인 구조로는 해킹 기술을 높이기가 힘들다. 국내에서 해킹 기술에 관한 한 최고 수준을 자랑하며 합법과 불법을 넘나드는 한 언더그라운드 해커에게 물어보았다. 그는 “해킹 기술이라는 것이 3개월만 지나면 구식이 될 정도로 빠르게 변한다. 활발한 정보 교류와 개방된 시스템이 없으면 해킹 기술 발전이 어렵다”라고 지적한다. 북한의 IT 기술, 특히 소프트웨어 제작 기술은 상당히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일반 소프트웨어와 인터넷 침투 기술은 성격이 전혀 다르다.

기무사가 밝힌 ‘해커 부대’라는 개념도 명확치 않다. 해킹에 관한 지식은 공격과 수비가 구분되지 않는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대부분의 해커는 보안업체 요원들이다. 군사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전산 보안 부대를 만들면 이 요원들은 기능상 해커와 마찬가지다. 우리 군도 해커 출신 병사를 전산보안요원으로 쓰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북한의 ‘전산 부대’가 남한 사이트에 침투했거나 시도한 적이 있는지, 그 침투 방법이 국가가 나서야 할 정도로 고도의 기술이었느냐 하는 점이다. 하지만 기무사는 이에 대해 아무런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南 정보 해킹’이라는 일간지 제목과 달리 북한군이 한국 사이트에 적대적인 행위를 한 사례는 현재 한 건도 확인된 것이 없다.

굳이 ‘북한 해커부대’를 동원해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을 높이지 않더라도 국가가 인터넷 보안을 강조해야 할 이유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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