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의 한 주
  • 崔寧宰 기자 ()
  • 승인 1998.04.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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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학살 원흉’ 모두 심판하자

푸른색 스카프 한 장, 배낭, 등나무 의자, 물고기 액젓 한 통, 플라스틱 세숫대야. 킬링 필드의 학살자 폴 포트가 남긴 유품의 전부이다. 4월15일 사망한 그는 이 초라한 물건들과 함께 한줌의 재와 연기가 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폴 포트는 25년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40년에 호치민 휘하에서 인도차이나 반도의 프랑스 지배에 저항하는 운동에 참가했다. 60년대부터 폴 포트는 본격적으로 공산 혁명 운동에 뛰어들었다. 75년 크메르 루주 게릴라 부대를 이끌고 당시 미국 지원을 받고 있던 캄보디아의 론놀 정부를 뒤엎는 데 성공했다. 이후 크메르 루주 정부의 총리 자리에 앉은 그는 79년 베트남의 침공으로 실각할 때까지 스탈린식 사회 개조 운동을 펼치면서 동족 2백만명을 무참하게 살해했다.

캄보디아 정부는 폴 포트 사망을 계기로 크메르 루주 잔당을 소탕하고 나머지 게릴라들도 붙잡아 재판에 회부하겠다고 다짐했다. 현재 폴 포트와 비슷한 강경파가 이끄는 크메르 루주 게릴라들은 태국과 접한 국경 부근에서 활동한다.

폴 포트가 사망했지만 미국 등 국제 사회는 크메르 루주를 이끌고 있는 자들을 계속 추적해 재판에 회부할 계획이다. 미국 국무부와 국제사면위원회·유엔 등 국제 기구는 크메르 루주의 범죄 행위를 계속해서 문제 삼을 태세이다.

현재 국제 사회가 처벌 대상으로 지목하고 있는 크메르 루주의 남은 지도자는 노온 체아·타목·키우 삼판 등 3명이다.

중국
경제 위해 반체제 인사 석방

미국과의 협력 관계를 깨지 않으려는 의도인가. 중국은 대표적인 반체제 인사 왕단(王丹)을 석방하고 미국에서 신병을 치료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왕단은 톈인먼(天安門) 사건 당시 학생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사건 이후 망명길에 오른 다른 학생 지도자와 달리 그는 중국에서 단식 같은 합법적인 방법으로 민주화 운동을 계속했다. 그러다가 그는 96년 정부 전복 음모 혐의로 11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해 왔다.

중국은 그동안 미국 등 서방 국가의 반체제 인사 석방 요구를 ‘내정 간섭’이라며 일축해 왔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장쩌민(江澤民) 주석의 미국 방문 이후 태도를 바꾸어 반체제 인사들을 잇달아 석방하고 있다. 중국은 왕단에 이어 류넨춘(劉念春) 이원밍(李文明) 등 미국이 석방하라고 요구하는 반체제 인사들도 곧 풀어 줄 가능성이 높다.

중국의 지상 목표는 경제 발전이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의 협조가 필요하다. 그래서 중국은 반체제 인사를 석방하는 선에서 미국에 협조할 것이다. 그러나 인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일본·러시아
‘체면치레’ 정상회담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과 하시모토 류타로 일본 총리는 4월19일 열린 비공식 정상회담에서 2000년까지 평화우호협력조약을 체결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이번 회담은 알맹이가 빠진 ‘전시용’에 머물렀다는 지적이 많다. 옐친 대통령은 일본의 가장 큰 관심사인 북방 영토 반환 문제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제안을 하지 않았다. 하시모토 총리도 ‘선 영토 반환, 후 경제 협력’이라는 원칙을 내세워 이렇다할 조처를 내놓지 않았다.

결국 두 정상은 서로의 체면을 약간씩 세워 주는 데 그칠 수밖에 없었다. 2000년까지 맺기로 한 평화우호협력조약의 범위를 경제·문화 등 모든 분야로 확대하기로 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독일
슈뢰더는 어떤 인물인가

독일 사민당(SPD)은 4월17일 게하르트 슈뢰더 니더작센 주 총리(54)를 연방 총리 후보로 선출했다. 현재 사민당의 지지도는 헬무트 콜 총리의 기민(CDU)·기사(CSU)연합을 크게 앞지르고 있다. 이같은 추세가 유지된다면 그는 오는 9월 총선에서 콜 총리의 16년 장기 집권에 종지부를 찍을 것으로 전망된다.

슈뢰더는 불우한 어린 시절과 과격한 마르크스주의자였던 청년기를 거쳐 독일 중도 좌파의 희망으로 떠오른 자수 성가형 인물이다. 그는 나치 병사였던 아버지가 44년 루마니아에서 전사한 뒤 편모 슬하에서 네 형제와 함께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가족을 위해 먹을 것을 훔쳤고, 집으로 찾아 온 빚쟁이들과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63년 사민당에 입당한 슈뢰더는 급진 좌파를 자처했고, 도시 게릴라인 적군파의 입장을 변호하기도 했다. 그러나 80년 연방 하원 의원, 86년 니더작센 주 의회 사민당 원내 의장, 90년 주 총리를 거치면서 이념적 편향에서 벗어나 사민당내 온건파 지도자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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