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항공은 군사 기밀 훔쳤나
  • 이정훈 기자 ()
  • 승인 1996.08.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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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신문, 군사기밀 유출·군수 비리 사건 왜곡 보도… 삼성항공 혐의 못 밝혀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간의 싸움이 절정일 때 터져나온 <조선일보> 대 삼성항공 간의 ‘군사기밀 유출사건’의 진실은 무엇인가. 지난 7월27일 삼성항공은 각 일간지에 ‘진실은 결코 왜곡될 수 없습니다’라는 제목의 석명 광고를 내고 ‘이 사건은 삼성항공과 무관하다. 언론의 왜곡 보도를 개탄한다’라며 다수 언론의 보도 내용을 부정했다. 반면 같은 날짜의 <조선일보>는 이 광고 바로 위에 “기무사 ‘삼성의 신문 광고는 허위’ 지적”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어 눈길을 끌었다.

<조선일보>와 삼성항공 간의 대립은 7월23일 국군기무사령부가 발표한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사건 수사 결과’ 발표문의 해석을 둘러싸고 나온 것이라, ‘기무사 손바닥’ 안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오른쪽 그림은 기무사 발표문을 토대로 작성한 것으로, 무기 중개상인 경일무역과 더불어 삼성항공이 이 사건에 간여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삼성항공의 혐의점은 이 회사 신규사업팀장(부장) 김정환씨가 국방부에 근무하는 정보근·박용복 공군 중령으로부터 Ⅱ급 군사비밀인 <금강/백두 사업>과 <82 항공 정비창> 내용을 구두로 듣고 그 내용을 문서로 정리해 보관해온 것뿐이다.

김정환씨가 작성한 문서 내용이 삼성항공 간부진에 보고됐는지는 확인된 바가 없다. 그러나 <금강/백두 사업>은 지난 6월29일자 각 언론에 보도됐듯 최신 정찰기 10대를 미국으로부터 직구매한다는 것이기에 삼성항공과는 관련이 없다는 것이 이 사건 관계자의 설명이다. <82 항공 정비창> 역시 항공 정비시설 건설에 관한 것이라 건설 회사가 아닌 삼성항공과는 직접 연관이 없다고 한다. 한 관계자는 이 점을 적시하며 “삼성항공 직원인 김정환씨가 Ⅱ급 군사비밀을 듣고 문서화한 것은 사실이나 이 정보가 삼성항공에 꼭 필요한 것은 아니므로 개인적인 차원에서 정보 수집 활동을 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항공이 회사 차원에서 이 문서를 빼내려 한 혐의점은 현재까지 발견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반면 경일무역은 Ⅱ급 군사비밀 문서인 <94∼08 무기 체계 기획서> 등 11건의 군사비밀을 포함 1백20종의 군사문건을 직접 입수한 혐의가 있다. 이번 사건에서 발견됐다고 하는 각종 군사 문건(비문 포함)은 모두 경일무역쪽에서 나온 것이다. 때문에 사건 비중만을 놓고 따진다면 이 사건은 ‘삼성항공 사건’이 아닌 ‘경일무역 사건’으로 불러야 옳다. 재미있는 것은 경일무역에 근무할 때 군사 문건을 입수했던 김유대·김정환씨가 그후 삼성항공에 입사했다는 점이다. 사건 당사자는 경일무역인데 연결고리인 두 사람이 삼성항공에 근무하다 검거되었기 때문에 각 언론은 ‘삼성항공 간부, 軍 기밀 빼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보도한 것으로 보인다.

기무사는 경일무역 관계자와 삼성항공의 김유대와 김정환씨, 그리고 정보근·박용복 중령을 군기법 위반 혐의로 군 검찰에 송치했지만, 두 김씨를 제외한 삼성항공의 그 어떤 관계자에 대해서도 사법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삼성항공은 바로 이 점에 포인트를 두고, ‘언론의 왜곡 보도를 개탄한다’라고 광고한 것이고 <조선일보>는 김정환씨가 <금강/백두 사업> 등을 구두로 들었기 때문에 삼성항공의 광고는 허위라는 내용의 기사를 게재한 것으로 보인다.
 

중수부 “삼성의 간첩 자료 어디에 있는가?”

7월25일 국회 국방위원회 회의에서 천용택 의원(국민회의)이 군수 관련 비리에 관해 질의하자 각 언론은 삼성항공이 관련돼 있는 양 기사를 몰고 갔다. 그러나 다음날 이 사건을 수사했던 대검 중수부 수사1과가 삼성항공은 혐의 사실이 없는 것으로 발표하자 매우 실망한 기색을 나타냈다. 각종 정보를 종합하면 이 비리는 현대정공(탱크 제조)·대우중공업(장갑차)·삼성항공(자주포)·쌍용중공업(엔진)·동명중공업(유압장치) 등 육상 기동장비 분야를 제작하는 방산업체에 관한 것이었다.

비리의 발단은 탱크를 비롯한 완제품 기동장비의 납품이 끝난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완제품에 대한 신규 수요는 극히 미미한 채 부속품에 대한 수요만으로는 발생 이윤을 맞출 수 없었던 방산업체는 부속품 가격을 높게 책정하려고 국방부 관계자들을 상대로 로비전을 펼쳤는데, 그 사실이 대검 중수부에 투서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검 중수부는 5개 업체 가운데 삼성항공만 부당 이득을 챙기지 않은 것으로 발표했다. 삼성항공이 빠진 이유는 지난 6월12일 보도됐듯 삼성항공의 자주포 사업이 독자 모델 사업으로 발전, 완제품의 계속 생산이 가능해져 굳이 부속품 가격을 높이려는 로비전을 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7월25일 한 신문은 “삼성, 사실상 간첩 행위 충격”이라는 제목을 뽑아 올렸다. 비록 인용부호(“ ”)를 달긴 했지만 ‘간첩 행위’라고 제목을 단 것은 강한 인상을 주었다. 이 제목은 박찬주 의원(국민회의)이 국회 법사위에서 “사실상의 간첩 행위”라고 말한 것을 따온 것으로 보인다. 삼성의 간첩 혐의 사실을 밝히지 못한 데 대해 대검 중수부의 핵심 관계자는 “일부 언론은 삼성의 간첩 행위를 밝히지 않았다고 우리를 비난하는데 언론에게 과연 삼성의 간첩 행위에 관한 자료가 어디 있는지 묻고 싶다”라고 지적했다.

국회의원의 국회 내 발언에 대해서는 면책 특권이 적용된다. 그러나 인용부호를 단 언론 보도에 대해서는 어떤 특권이 적용될 수 있을까. 사실과 의견을 끝없이 혼동하고 있는 한국 언론에게는 언론의 특권이 어디까지 인정돼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한 언론 학자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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