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계 분노에 곤혹스런 여당
  • 김 당 기자 ()
  • 승인 1995.06.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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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불교 반발로 서울·인천·대구·강원에 ‘먹구름’
김수환 추기경은 지난 대선 뒤에 <한국일보>와 가진 대담에서 대선 때 누구를 찍었느냐는 질문에 뜻밖에도 “김대중씨를 찍었다”고 말해 세간에 화제가 되었다. 이 ‘때 늦은 고백’을 두고 해석이 분분했지만, 추기경은 그 때 자신의 ‘한표’가 한국 사회의 가장 큰 과제인 지역 갈등의 매듭을 풀고 민족 화합을 이루기 위한 선택이었다는 요지로 설명했다.

그 추기경이 6`·27 지방 선거를 앞두고 이번에는 시국강론에서 ‘갈등을 대화로 풀 수 있는 사람’을 각 지역의 대표로 뽑자고 호소했다. 원론적 표현이지만 때가 때인 만큼 그 말에 담긴 뜻은 의미심장할 수밖에 없다. 천주교측이 김영삼 대통령에게 ‘성소 난입’에 대한 사과를 요구해 놓고 있는 시점에서 나온 추기경의 ‘말씀’에 대한 사제단의 해석은 대체로 일치한다.

한 사제는 “추기경이 강론에서 투표의 방향을 제시했다”고 지적했다. 이 사제는 “교회는 현 정부의 공권력 투입이 정치적 목적을 가졌다고 해석한다. 따라서 지금 교회내 강경·온건의 의미는 이번 기회에 정치적 목소리를 내자는 쪽과 그럴 필요까지는 있느냐는 쪽을 구분한 것일 뿐이지 ‘반 YS’에는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반민자 분위기는 불교계도 마찬가지이다. 6월16일 서울 조계사에서 열린 시국법회에서 조계종 송월주 총무원장은 김영삼 대통령을 직접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정부 최고 책임자는 금번 청정도량에 대한 공권력 투입에 대해 정중히 사과하라”고 요청했다. 조계종 총무원장이 김대통령에게 공식 사과를 요구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전국불교운동연합 상임의장인 지선 스님은 시국법문에서 아예 “현 정권은 겁이 없고 국민 무서운 줄 모른다. 차라리 이번에 잘 되었다. 표로 따끔한 맛을 보여주자”고 정치성 발언을 했다.

민자당 편승한 일부 언론에 ‘비상’ 걸려

종교계의 반발이 실제 어느 정도 표에 반영될지는 헤아릴 수 없다. 또 교계 지도부의 정치 편향에 반대하는 신도들도 없지 않다. 그러나 서울·부산·인천 등 부동표가 많은 대도시와 민자당 후보들이 백중 우세를 점유하고 있는 지역에서는 종교계의 목소리가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그중에서도 천주교가 6월19일 부산 중앙성당에서 봉헌한 시국미사에서 전국사제시국대책위를 결성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김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자 여당의 아성인 부산에서 현 정부의 도덕성을 정면으로 질타했기 때문이다. 또 영동·영서 지역 대결 양상을 보이고 있는 강원도의 경우 대세의 열쇠를 쥐고 있는 원주가 이 지역 사제들의 단식 농성에 따라 ‘반민자’ 정서로 돌아설 가능성이 매우 큰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반민자 정서가 팽배한 대구 지역에서 영향력이 큰 불교계마저 반민자 쪽으로 돌아설 경우 민자당 사정은 더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민자당과 그에 편승했던 일부 언론에도 덩달아 비상이 걸렸다. 명동성당 뒤켠에 자리잡은 사제단 농성장에서 연일 ‘여기는 명동성당입니다’라는 제목으로 PC통신 천리안 토론실(38번 서명합시다--한국통신 공권력 투입 규탄)에 천주교측 입장을 홍보하고 있는 피터(베드로) 신부가 6월16일에 띄운 ‘여기는 명동성당입니다--언론이란?’ 제목의 글은 그 비상한 상황을 이렇게 고발했다.

‘6월15일자 신문을 통신상에서 보다 보니 중요한 사실을 찾았습니다. 분명히 <중앙일보>와 <조선일보>의 기자는 다른 기자일 텐데 내용은 물론 토씨 하나 틀리지 않는다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혹시 텔레파시가 통한 것은 아닐지? 이곳에 옮깁니다.

제목:민자 종교계 반발 무마 적극 나서

민자당은 15일 천주교 대책위원 및 자원봉사자를 소집, 명동성당과 조계사 경찰 투입에 따른 종교계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적극적인 활동을 당부했다.….’

피터 신부가 지적한 대로 두 신문의 기사는 따로 비교 인용할 필요가 없으리만큼 제목에서부터 토씨까지 100% 일치한다. 누가 써주었거나,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베껴야 할 정도로 다급해진 것일까.

정권과 종교계의 갈등은 흔히 있었지만, 문민 정부의 지방 선거를 앞두고 빚어진 이번 사태는 정부·여당에도, 종교계에도 풀기 어려운 숙제를 남긴 채 투표일은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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