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분규 원인 어디에 있나
  • 朴晟濬 기자 ()
  • 승인 1998.1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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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 운영 · 재산권 '총무원 독점'이 불씨···불자들, 불교 개혁 촉구
12월6일 일요일. 대한 불교 조계종 중앙종회와 총무원측(월주 체제)은 낮 2시부터 서울 광화문 빌딩 앞에서 승려·재가 불자 1천2백여 명이 모여 ‘범불교도 대회’를 열었다. 같은 시각, 조계사 대웅전 앞에서는 이와 정반대의 행사가 있었다. 현재 총무원 청사를 점거하고 있는 정화개혁회의(상임위원장 월탄)가 총무원측의 범불교도 대회에 맞서 ‘조계사 대웅전 방화 규탄 대회’를 열었던 것이다. 이 날 행사들은 큰 충돌 없이 끝났다.

제29대 조계종 총무원장 선출을 둘러싸고 시작된 종단 내분은 이처럼 시간이 갈수록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의 문제는 현 총무원측이나 정화개혁회의측 모두 사태 해결의 유일한 수단을 ‘물리력’에서 찾았다는 것이다. 양측은 벌써 수차례 충돌에서 종단 역사상 최악의 폭력을 동원한 바 있어 ‘평화적 대화’는 사실상 물 건너 간 상황이다.

“총무원장 선출 방식 바꿔라”

이제부터의 문제는 물리력을 동원해 사태를 빨리 해결하고 싶어도 양측 모두 동원 가능한 물리력이 없다는 데 있다. 11월 이후 수차례 접전 때 양측의 ‘실 병력’으로 동원되었던 승려들은 12월3일 ‘동안거(冬安居) 결제일’을 맞아 일제히 산문 안으로 돌아갔다. 앞으로 3개월간 참선 수행에 용맹 정진해야 할 이들 승려들은 절대 산문 바깥으로 나올 수 없다. 11월30일 양측 충돌이 한밤중까지 이어진 것도, 양측 모두 결제일을 앞두고 조속히 싸움을 결판낼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싸움이 이처럼 장기화하는 근본 원인을 월주 체제의 구조적 한계에서 찾는 이도 있다. 월주는 종단 개혁을 내걸고 강력한 행정력을 갖추려고 노력하면서 종정의 권위와 원로회의의 기능을 약화시켰다. 종단 내분이 발생했을 때 이를 수습할 수 있는 종정과 원로회의의 존립 근거를 없앴다는 것이다. 실제로 월하 종정과 원로회의 일부 세력은 월주의 ‘3선 기도’를 내놓고 비판함으로써 스스로 볼썽 사나운 종권 다툼의 한 당사자가 되어 버렸다.

이같은 사정은 재가 불자(평신도)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11월 중순 전국불교운동연합·대학생불교연합회·우리는선우·재가불자연합 등 재가 불자 단체는 이미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총무원장 선거에서 월주의 후보 사퇴 △정화개혁회의 해체 △또 한 명의 후보인 지선 스님(백양사 주지)의 백의 종군 등을 요구한 것이다. 이후로도 몇몇 인사들은 재가 불자 이름으로 총무원·정화개혁회의 양측에 맹성을 촉구한 바 있다.

그러나 불교계 안팎에서는 이같은 재가 불자들의 목소리에 대해 ‘전혀 구속력을 갖지 못한 공허한 메아리’라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사실 스님 중심, 이른바 ‘승가 독점주의’로 불리는 종단 운영의 특성상 재가 불자들이 종단 사태에 개입해 자기 목소리를 내기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동안 발생했던 종단 내분이 대부분 실력자들의 물리적 맞대결에 의해서 해결되었던 전례가 이를 잘 반증한다.

승가 독점주의의 폐해는 특히 재정 운영 면에서 두드러진다. 재정 운영권은 종단 재산의 경영권을 쥔 총무원이 독점으로 행사하게 되어 있어 재가 불자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결국 종단 재산의 궁극적인 소유권자인 국가(정부)를 제외하면, 종단의 재정 운영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할 사람은 스님들 자신을 빼고는 종단 내부에 아무도 없는 셈이다.

재가 불자들 일각에서 ‘아예 이번 기회에 종단 구조 자체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총무원장 선출 방식은 물론, 재정 운영 방식·재산권 관할 형태까지도 바꾸라는 것이다. 이들은 종단 구조를 완전히 판갈이하지 않으면 부끄러운 싸움은 언제든지 되풀이될 것이라며 정부의 결단을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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