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외환 위기 특감에 문제 있다
  • 李敎觀 기자 ()
  • 승인 1998.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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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식·김인호씨 ‘직무 유기’ 판정에 문제점 많아
‘불난 집에 불 끄러 들어간 사람이 끄지 못하고 나오자 사람들은 그가 방화범이라고 말하고 있다.’ 강경식 전 경제 부총리가 IMF 사태의 주범이라는 여론이 높자 누군가가 강씨에게 한 말이다. ‘소방수’ 강씨가 불을 끄지 못한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그가 외환 위기를 수습하지 못한 원인은 금융개혁법안 등 그가 추진한 각종 경제 개혁 작업이 정치권과 재벌에 의해 좌절된 데도 있다. 그래서 그에게 ‘방화범’ 누명을 씌워서는 안된다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그러나 감사원은 이같은 지적을 외면했다. 감사원은 지난 4월10일 강씨와 김인호 전 경제수석이 ‘고의로’ 불을 끄지 않은 의혹이 있다면서 이들에 대한 수사를 검찰에 의뢰한다는 내용의 외환 위기에 대한 특감 최종 결과를 발표했다. 강씨와 김씨가 국제통화기금(IMF)이라는 외국 소방수의 도움이 없으면 집이 다 타 버릴 것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신속히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고, 심지어 그같은 요청을 회피하는 직무 유기를 저질렀다는 것이 감사원이 제기한 의혹의 핵심이다.

YS 답변 내용과 감사 결과 불일치

문제는 이같은 직무 유기 혐의에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다는 점이다. 감사원은 이들이 지난해 10월 하순 이후 급박하게 전개되는 외환 위기 상황을 인지하고서도 그 실상을 대통령에게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었다. 그러나 이는 감사원에 제출된 김영삼 전 대통령의 답변서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다. YS는 강씨로부터 10월29일에 외환 위기의 실상에 대해 종합 보고를 받았으며, 김씨로부터는 10월 말을 전후로 해서 매일 두세 차례 금융·외환 시장의 심각성에 대해 보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김 전대통령의 이같은 증언은 강씨와 김씨가 외환 사정이 국가 위기로 급진전될 가능성이 있다는 한국은행의 보고를 대통령에게 전달하지 않았다는 감사원의 주장과 배치한다. 강씨와 김씨는 한은의 10월27일 보고서 내용을 ‘금융시장 동향 및 안정 대책’에 포함해 10월29일 김 전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이는 강씨와 김씨의 보고서에 포함된 △외화 유입 확대를 위한 채권 시장 개방 △현금 차관 도입 확대 △금융기관 부실 채권 내역 공개 등이, 한은이 10월27일에 제시한 대책과 거의 같다는 점에서 확인된다.

감사원이 김 전대통령의 증언을 무시하고 내세운 강씨와 김씨의 또 다른 직무 유기 혐의는 국제통화기금에 구제 금융을 요청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한 시점에 관한 것이다. 감사원은, 이들이 11월14일에야 뒤늦게 이같은 필요성을 보고해 정부 차원에서 사태를 수습할 기회를 잃게 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11월8일에 김씨로부터 강씨와 함께 국제통화기금으로 가는 문제를 심각하게 논의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고받았다고 증언했다. 김 전대통령은 11월10일에도 국제통화기금 지원 요청을 검토하겠다는 강씨의 보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감사원의 감사 결과 가운데 강씨가 지난 11월9일 “어떻게 창피하게 IMF에 가느냐, 내 재임 중에는 안 간다”라고 말했다고 적시한 대목도 석연치 않다. 강씨는 감사원의 감사에서 “그같은 말을 한 기억이 안난다. 그렇게 딱 잘라 말했을 리가 없다. 공개된 자리에서 IMF로 가는 문제를 논의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 회의에 참석했던 김씨도 강씨가 그같은 말을 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이들의 말대로라면 감사원은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 소문을 확인된 사실인 양 발표했다는 의심을 갖게 한다.

경제 전문가들은 감사원이 이같이 왜곡된 발표를 한 것이 경제에 대한 무지에서 말미암는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감사원이 강씨와 김씨에게 “왜 범정부 차원에서 외환 위기를 수습할 수 있도록 IMF에 가는 문제를 공개적으로 논의하지 않았느냐”라며 힐난한 점을 든다. 즉, 11월 초 단기 외채에 대한 만기 재연장이 중단되기 시작할 때 강씨와 김씨가 국제통화기금으로 가는 문제를 비공개로 검토한 이유는, 이것이 공개될 때 자칫 공황 상태가 발생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인데 감사원은 이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감사원이 실정법 위반” 지적도

감사원이 관련자의 증언을 자의로 해석한 대목도 있다. 감사원은 ‘강씨가 11월16일 방한한 캉드쉬 국제통화기금 총재에게 금융 개혁 정책에 대한 지지를 요청하는 데 주력하고 구제 금융 신청을 가능한 한 회피하려는 태도를 보였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경식 전 한은 총재는 캉드쉬 총재가 강씨로부터 3백억달러 지원을 요청받고 이를 수락했다고 증언했다. 그런데도 감사원이 이처럼 결론지은 것은 강씨가 외환 위기의 주범임을 전제하고 감사를 진행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지난 3월21일 한승헌 감사원장 서리가 청와대 보고를 마치고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외환 위기 특감 중간 결과를 발표한 것도 잘못이다. 감사원법은 감사위원회가 의결하지 않은 감사 결과를 공개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원장서리가 이 날 발표한 특감 중간 결과는 감사위의 의결을 거치지 않았으므로 실정법을 위반한 것이다. 따라서 몇몇 변호사들은 검찰이 감사원의 수사 의뢰에 따라 강씨와 김씨를 수사하기 전에 한원장서리의 실정법 위반부터 수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감사원 내부에서도 이번 감사 결과를 비판하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감사원의 한 고위 관계자는 ‘감사원이 오히려 직무 유기를 저질렀다’고 비판했다. 그는 한국 경제라는 집에 불이 날 수밖에 없었던 구조적 원인, 소방수로 차출된 강씨와 김씨가 불을 끄기 위해 추진했던 경제 개혁들이 좌절된 원인, 그리고 이들로 하여금 불을 끌 수 없게 만든 불가항력적인 국제 경제적 요인을 감사원이 외면한 사실이야말로 명백한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감사원으로부터 입수한 강경식 전 부총리의 답변 내용을 보면 이 지적은 타당하다. 대표적인 예는 감사원이, 강씨와 김씨가 상호지급보증 금지와 결합재무제표 작성을 의무화하는 금융개혁법안을 지난해 8월에 마련해 11월18일까지 국회 통과에 주력한 점에 대해 ‘비웃고 있다’는 사실이다. 감사원은 대선을 앞두고 당리 당략에 따라 이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았던 정치권에 대해서는 비판하지 않고 ‘법안이 통과되기 힘들었는데 왜 그것에 매달렸느냐’면서 강씨와 김씨를 공박하는, 본말이 전도된 질문만 해댔던 것이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금융개혁법안이 지난해 8월 국회에서 통과되었다면 IMF 사태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국제통화기금이 구제 금융 지원 조건으로 상호지급보증 금지와 결합재무제표 작성을 요구했던 만큼, 이 법안이 통과되었더라면 대외 신인도를 높일 수 있었다는 얘기다. 한 전문가는 대외 신인도 제고가 중요한 것은, 11월 초 종금사 등의 단기 외채에 대한 만기 재연장이 전면 중단된 사태의 근본 원인이 한국 경제에 대한 외국 투자가들의 불신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서 11월3일부터 일본계 은행 등 국제 금융 자본이 한국의 단기 외채에 대한 만기 재연장을 거부한 것은 동남아에 이어 홍콩 증시에서까지 타격을 입자 기업 경영이 불투명한 한국에서도 돈을 떼일까 봐 갑자기 대출금 회수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이 점에서 강씨가 마지막으로 기대했던 11월18일에라도 금융개혁법안이 통과되었다면 국제통화기금이 자발적으로 구제 금융을 지원하기로 되어 있었기에 현재의 위기를 피할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구제 금융 신청은 정책 결정자의 입장에서는 마지막 수단이다. 구제 금융을 신청하면 경제 운영의 주도권을 국제통화기금에 빼앗겨 국민의 고통이 심각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감사원이, 강씨와 김씨가 국제통화기금에 가기에 앞서 추진했던 금융 개혁과 국채 발행을 통한 외화 도입 같은 정책들이 무모하다면서 검찰에 이들에 대한 사법 처리를 의뢰한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한 경제 전문가는 검찰이 지난해 이같은 정책들이 실패하게끔 만들었던 국민회의뿐만 아니라 당시 여당이었던 한나라당의 지도부 그리고 재벌부터 사법 처리하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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