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필] 한의대 졸업 앞둔 철학자 김용옥 박사
  • 金 薰 기자 ()
  • 승인 1996.0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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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술은 내 영감의 원천”
철학자 김용옥 박사가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6년 과정을 마치고 오는 2월 졸업한다. 그는 3월로 예정된 국가 고시를 거쳐 의사로서 또 하나의 생애를 열어 나간다. 김용옥 박사는 86년 4월8일, 독재 정권 아래서는 학문다운 학문을 가르칠 수 없다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고려대학교 철학과 교수 직을 사퇴한 후 열정적인 저술 활동을 펼쳐 왔다.

90년 봄, 그는 원광대 한의과대학 예과 학생으로 다시 입학해, 6년에 걸친 한의대 과정을 모두 수료했다. 이리와 전주의 부속 병원 근처를 옮겨 다닌 그의 하숙방은 이부자리 한 채와 책상 한 개, 몇 권의 의학 교과서가 전부였다. 대학교 도서관에 있는 그의 ‘지정석’ 한 칸은 젊은 학부 학생들의 자리와 나란히 붙어 있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5시까지 계속되는 의과대학 강의에 그는 언제나 강의실 맨 앞자리를 지켰다. 그는 한의과 대학 6년 동안 악착스런 학생이었고, 동시에 인기 높은 선생이었다. 학부 학생의 신분으로서 그는 원광대학교 교학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했고, 고고미술사학과에서 한 학기 동안 정규 강좌를 맡아 고미술사학을 강의했다. 또 의과대학 안에서도 학부 학생인 그는 과목 담당 교수의 의뢰를 받아 특정 커리큘럼의 어느 한 분야를 강의하기도 했고, 광범위한 학생들을 상대로 예술·철학에 관한 강좌를 수시로 열었다. 한의과대학에 입학한 뒤에도 그는 방학을 이용해서 <讀氣學說> <氣哲學散調> 등 많은 저서를 펴냈고, 93년에는 서울 동숭동에 전통 서원의 교학 방식을 복원한 ‘도올서원’을 설립해, 젊은이들을 상대로 동양 고전과 한학의 기초 소양을 가르치고 있다.

의사가 되고 난 후에도 그의 피나는 수련 기간은 한동안 계속될 듯하다. “나는 내가 배워야 할 분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 의사가 된 후에도 나는 그 분 밑에 가서 도제 관계를 맺고 내가 배워야 할 것들을 배우고 구체적인 임상 수련을 쌓을 것이다. 그리고 때가 되었다 싶으면 클리닉을 열 생각이다.”

그가 또다시 도제 관계의 수련을 통해서 천착해 가려는 분야는 동양 의학 중에서도 침술의 세계이다. “나는 이제 평생을 못다 한 저술에 힘쓰는 한편, 침술을 연구해 나가겠다. 침술은 내 영감의 원천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당장은 촌각 아까운 ‘고시 수험생’

인간에 대한 그의 이해는, 인간을 관계된 전체로서, 우주 환경과 일체가 된 존재로서 파악하려는 입장을 견지해 왔는데, 한의학을 공부하면서 우주의 변화가 인간의 몸에 실제로 반영되고 있음을 구체적으로 엮어 낼 수 있었다는 것이 그의 기쁨이다. 그는 또 한의과대학을 마친 보람 중의 하나로 <傷寒論>(동한 말에서 수·당에 걸쳐 완성된 醫經)을 새롭게 읽게 된 것과, 약초의 효능에 관하여 이해하게 된 것을 꼽는다. <傷寒論>에는 우주와 인간의 관계를 엮어내는 사유 체계의 원형이 담겨 있으며, 약초의 성질(효능)이 인체 속에서 작용하게 되는 비밀은 우주와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설명될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인간의 몸에 관한 한 유물론과 유심론의 이원적 대립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의학적으로 확인한 것도 그가 한의대에서 얻은 중요한 소득이다.

그가 한의과대학에서 이해한 ‘인간’이라는 명제는 앞으로 그가 사유를 전개하는 데 튼튼한 토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의사가 된 뒤로 김용옥 박사의 사유 체계는, 아마도 인간의 몸이라는 구체적이고도 실존적인 현실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삶과 사유의 총체적 모습을 종합해 내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나는 인체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현실적인 접근을 통해서 인간에 대한 아이디어를 구체화해 내겠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그는 지금 가장 다급한 수험생의 한 사람으로서 국가 고시의 암기 과목을 달달 외우느라고 밤을 새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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