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보희 "금강산 개발 마스터 플랜 마련"
  • 南文熙 기자 ()
  • 승인 1998.05.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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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과 94년에 두 번 만나 한 차례 단독 회담”
박보희 한국문화재단 이사장(68)은 남북교류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지난 91년 세계평화연합 문선명 총재를 수행해 김일성 주석을 만났으며 94년 7월 김주석이 사망한 직후에는 조문 파동에 휩싸여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그 뒤 은인자중하며 때를 기다려 온 그는 새 정부가 출범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지난 5월2일부터 12일까지 리틀엔젤스예술단의 평양 공연을 전격적으로 성사시키는 저력을 과시했다. 그는 지난 5월16일 <시사저널>과 가진 인터뷰에서 94년 방북 당시 김정일 비서와 단독으로 회담했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털어놓으면서, 이 공연의 의미와 앞으로의 포부를 밝혔다.

이번 평양 공연의 의의는?

개인적으로는 통일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자부한다. 특히 성인이 아닌 어린이들이 천진난만하면서도 수준 높은 공연을 펼쳐 북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더불어 민족의 동질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남쪽에서도 텔레비전을 통해 공연 장면을 본 많은 분들이 가슴 뭉클해 했다고 하는데, 이런 점에서 새 정부의 전향적 통일 정책을 위한 분위기 조성에 일조했다고 할 수 있다.

북한측과 만경대학생소년궁전예술단의 서울 공연에 합의했다고 하는데, 그 시기는 언제쯤인가?

그쪽도 학생들이기 때문에 수업 일정 등을 고려해 공연 시기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올해 10월이나 11월께로 예상하고 있다.

이번 평양 공연은 전격적으로 성사된 것 같다. 그동안 어떻게 추진했나?

북한측과 최종 합의는 4월12일 평양에서 이뤄졌다. 초청장도 그때 발급받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91년 11월30일 당시 세계평화연합 문선명 총재 내외분 방북 때 김일성 주석과 합의했던 사항이다. 당시 두 분 사이에 남북 화해와 이산 가족 상봉, 남북 교류 문제 등이 논의됐는데, 특히 시범 사업으로 리틀엔젤스와 만경대학생소년궁전예술단의 교환 공연이 합의되었고, 이 내용을 공동성명 제9항에 명시했다. 그러나 그 후 김주석이 사망하고 남북 관계가 경색돼 더 추진되지 않다가 새 정부 들어서 전향적인 대북 정책이 발표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된 것이다.

공연 시기가 베이징 남북 차관급 회담이 결렬된 직후여서 여러 가지 소문이 나도는 것 같다. 한국 정부의 메시지를 전하지 않았나?

그런 것은 없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허가를 내준 것은 사실이지만, 정부도 순수 민간 차원에서 해 주기를 원했고 우리도 그런 생각이었다.

북한측 파트너는 김용순 아태평화위원장으로 알려졌는데, 김위원장과 남북 관계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나?

마침 차관급 회담이 그 직전에 있었기 때문에 이와 관련한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눴다.

회담이 결렬되어 실망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처음에는 그랬던 것 같다. 새 정부에 대해 너무 큰 기대를 가졌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새 정부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위원장 자신이 남쪽도 경제가 어렵고 여러 가지 문제가 많은 것 같다고 얘기했고, 김대중 정부가 본격적으로 대북 정책을 치고 나오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으로 본다고도 했다.

시간이 걸린다면, 언제쯤으로 보고 있다는 것인가?

김위원장은 6월 지방 선거 얘기를 했다. 이번 지방 선거 결과를 통해 김대통령이 과연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는지, 또 그동안 발표한 정책들을 실행할 힘을 가지고 있는지 판단하려고 하는 것 같다.

새 정부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는 어떠했나?

대단히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김영삼 정부 때는 손톱도 안 들어가는 분위기였는데 지금은 180도 바뀌었다. 그렇지만 좀더 지켜보겠다는 입장인 것이다. 특기할 것은, 김위원장도 앞으로 남북 간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 이번과 같은 민간 차원의 교류를 적극 활성화하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내비쳤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서도 이번 공연이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일 총비서의 배려도 있었다고 하던데….

사실이다. 당시 김총비서는 지방 순시 중이었는데, 대단히 세심한 데까지 배려해 줬다. 아이들이 머리카락 하나라도 다쳐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의사와 간호사를 24시간 수행토록 해주었다. 또 금강산 관광이나 베이징으로 출발할 때 모두 특별기를 내주었다.

그동안 몇 차례 방북하는 과정에서 김정일 총비서를 개인적으로 만난 적이 있는가?

사실 이제야 밝히지만 94년 7월 방북 당시 두 차례 만난 적이 있다.

두 차례라면 언제 언제인가?

한 번은 7월20일 추도식 때 빈소에서 조의를 표하면서 만났고, 두 번째는 추도식 끝난 후 단독 회담을 했다.

단독 회담 사실은 처음으로 밝히는 것 같은 데, 어디서 만났고 어떤 얘기를 나눴나?

김일성 광장에 있는 주석단 건물 안의 주석실에서 만났다. 김비서는 그때 김주석이 살았을 때 문선명 총재를 다시 한번 만나고 싶다고 늘 말했는데 유명을 달리해 애석하다고 했고, 앞으로 자주 와달라고 했다.

특별히 받은 인상은?

일부에서 김비서가 두서없이 말하는 습관이 있다고 했는데 전혀 그런 인상을 받지 못했다. 또 일부의 추측과 달리 매우 건강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또 한 가지는, 김주석 사망 이후에도 북한이 김비서를 중심으로 일사불란하게 나아갈 것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김비서의 건강에 대해 확신을 한 계기가 있었나?

추도식이 있은 7월20일은 무척 더운 날이었다. 불쾌지수도 매우 높았다. 그날 김비서는 한 번도 자리에 앉지 않고 두 시간 동안 꼿꼿하게 서서 추도식을 치렀다. 오히려 뒤에 서 있던 군 장성들이 쓰러지거나 주저앉는 일이 있을 정도였다. 나 역시 이를 악물고 버텼는데, 그렇게 추도식을 끝내고 곧바로 나와 단독 면담을 강행하는 것을 보고 나보다도 체력이 강하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당시 조문으로 인해 곤욕을 치렀는데, 법적인 문제는 해결됐나?

이미 다 해결됐다. 96년부터는 다시 한국을 오가면서 문화재단 일을 본격적으로 챙겨 왔다. 지금은 그때 조문한 것이 북한을 고무 찬양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다 밝혀졌다. 사실 이번 공연이 성사되는 데 그때 덕을 본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앞으로 계획은?

문화 교류를 더욱 활발하게 추진하려 한다. 또 통일그룹 차원에서는 이제 금강산 개발에 본격 착수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금강산 개발 마스터 플랜이 있나?

사실 금강산 개발도 문총재와 김주석 사이에 이미 합의됐던 사안이다. 현재 마스터 플랜을 마련하고 있는데, 아직 발표할 단계는 아니다.

현대 그룹도 최근 정주영 명예회장의 방북을 통해 금강산 개발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인데….

현대와 북한이 어떤 관계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금강산 개발은 김주석이 직접 우리에게 약속했던 사업이라는 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광대한 사업을 우리 혼자 다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현대측과 공동 개발도 고려해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고려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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