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수석 맞바꾼 DJ의 속뜻
  • 崔 進·金芳熙 기자 ()
  • 승인 1998.05.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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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동·강봉균 수석 등 맞교체…구조조정 고삐 죄고, 친정 체제 강화 목적
권력의 핵심부에 번갯불식 변화가 가해졌다. 김대중 대통령은 5월18일 오전, 전혀 예정에 없던 청와대 수석비서관 인사를 단행했다. 강봉균 정책기획수석과 김태동 경제수석 비서관의 자리를 맞바꾸고, 문희상 정무수석과 이강래 안기부 기조실장의 자리를 맞바꾼 것이다. 사전에 언론 검증 작업을 거치는 그간의 김대중 대통령 인사 스타일과 전혀 달랐다. 그만큼 상황이 다급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청와대와 동교동 간의 거리 멀어져

이번에 특히 놀라운 것은 정무수석과 안기부 기조실장을 맞바꾼 인사였다. 우선 청와대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정무수석이 겨우 두 달 만에 자리를 옮겼다는 사실 자체가 사건이다. 이마에 동교동계라고 쓰여있다고 자부해 온 문씨의 안기부행은, 청와대와 동교동 간의 거리가 더 멀어졌음을 의미한다.

청와대에 무슨 말을 하고 싶어도 창구가 없다고 불만을 토로해 왔던 동교동계나 당료파들은 더욱 불만스러울 것이다. 이제 청와대에 남아 있는 동교동계로는 박지원 공보수석 정도가 꼽힌다.

자연히 청와대 내에서 비동교동계, 즉 김중권 비서실장을 중심으로 하는 신주류의 입지가 더욱 강화되었다. 이강래 신임 정무수석은 동교동계라기보다는 DJ 직계였고, 대선 과정에서 김실장과 호흡을 맞추어 왔다는 점에서 오히려 신주류에 가깝다.

하지만 이번 인사는 신주류가 부각되기보다는 김대통령의 친정 체제 강화라는 측면이 강하다는 분석이다. 이런 깜짝 인사는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 없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청와대 입성 이후 민주계와 갈등을 빚음으로써 집권 기반을 스스로 약화시켰다. 그런 점에서 김대통령은 동교동계를 마냥 멀리하기보다는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김중권 실장이 5월18일 기자 간담회에서 시사했듯이, 이번 인사를 계기로 청와대 비서진 개편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내부 알력설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현재의 비서진이 도저히 권력의 핵 노릇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제팀 내부 문제 해결될지 미지수

정책 혼선이 잦고 집행 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아온 경제팀 인사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기존 구성원을 퇴진시키고 새로운 인물을 수혈하지 않고 자리만 맞바꾸었다는 것이다.

18일 오전 강봉균 정책기획수석과 김태동 경제수석 비서관의 자리를 맞바꿈으로써 현 경제팀은 이규성 재경부장관­강봉균 경제수석 중심 체제로 굳어지게 되었다.

경제 부처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번 청와대 경제팀 개편은 인재를 적재적소에 쓴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내포된 다목적용이다. 우선 경제팀의 구심점이 확고해졌다는 점이다. 현 경제팀은 그동안 대통령이 직접 주관하는 경제대책회의를 통해 모든 사안을 논의해 왔으나, 중심축이 없어 혼란스러운 인상을 준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또 청와대 개편 당시부터 정책기획수석과 경제수석 간의 역할 분담이 불분명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예를 들어 경제대책조정회의는 경제수석이 간사를 맡고, 경제부처장관회의는 정책기획수석이 맡는 식이었다. 이번 개편으로 경제 정책의 구심점이 사실상 과거와 같이 재경부(옛 재경원) 장관과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일원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두 번째로, 구조 조정을 둘러싼 그동안의 논란을 사실상 매듭지었다는 의미가 있다. 새 정부 출범 후 실업 대책과 구조 조정의 우선 순위, 또 구조 조정의 속도와 방법론을 둘러싸고 경제팀 내에는 미묘한 견해 차가 있어 왔다.

이 논란은 겉으로 불거진 적이 없지만, 강봉균 수석과 이헌재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 등은 신속하고도 단호한 구조 조정을 지지해 왔다. 따라서 정통 경제 관료 출신으로서 추진력을 인정받고 있는 강수석은 김태동 전임 수석에 비해 구조 조정 작업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32∼39쪽 커버 스토리 참조).

요는 자리 바꿈만으로 경제팀이 안고 있는 문제가 모두 풀릴 수 있겠느냐 하는 점이다. 다양한 성격의 경제 전문가가 참여해 실험적 성격이 강한 현 경제팀이, 그동안 제각각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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