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6년 전쟁' 포성 울렸다
  • 金尙益 기자·蔡明錫 편집위원 ()
  • 승인 1996.06.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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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FIFA 조사 아래 총체적 경쟁…과열 때는 한·일 분쟁 날 수도
이긴 것이나 진배없는 무승부라니. 터무니없는 말이다. 2002년 월드컵 축구 대회 유치를 놓고 사투를 벌여온 한국과 일본의 축구 전쟁은, 비유하자면 전반 내내 뒤지고 있던 한국이 전반 종료 휘슬이 울리기 직전 가까스로 동점 골을 넣은 상황에 불과하다.

일본은 89년 12월 월드컵 대회를 유치하겠다는 뜻을 밝힌 때로부터 6년이 넘도록 줄기차게 그라운드를 누볐다. 91년 6월 일본은 월드컵유치위원회를 발족시켰고, 92년에는 개최 후보지를 선정했다. 축구 약소국의 이미지를 벗고 경기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J리그를 만들었다. 국제축구연맹(FIFA) 아벨란제 회장이 2002년 월드컵 대회를 아시아에서 개최하겠다고 한 것도 일본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반면 한국은 일본이 월드컵 유치에 뛰어든 것보다 2년 9개월이나 늦은 94년 3월에야 유치위원회를 발족했을 뿐이다. ‘대표팀’ 구성이 늦어 팀워크도 맞지 않아, 한국은 전반전 25분이 지나도록 단 한 차례도 공격다운 공격을 펴지 못한 상태였다.

일본, 4만명 이상 수용 경기장 10곳 공사중

FIFA의 공동 개최 결정으로 한국은 간신히 동점골을 얻는 데 성공했지만 앞으로 6년이라는 지루한 후반전을 남겨 놓고 있다. 게다가 후반전은 질의 싸움이다. 세계 최고의 스포츠 제전을 주관하는 FIFA는 축구 경기장 규격에서부터 숙박 시설·수송 문제에 이르기까지 엄격하면서도 세세한 규정을 두고 있다(13쪽 상자 기사 참조). 그런 만큼 한국보다 3년 이상 앞서서 ‘기초 훈련’을 쌓아온 일본이 유리한 편이다.

한 예로 축구 경기장의 경우 조예선·16강전·8강전을 치를 경기장은 최소한 4만 명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하고, 개막전·준결승전·결승전을 치를 주경기장은 수용 인원 6만명 이상 규모여야 한다. 또한 야간 경기를 위해서 운동장 구석까지 포함해 모든 부분을 최소한 1천2백 룩스로 밝힐 조명이 필요하다.

현재 한국은 FIFA 규정에 맞는 축구장을 제대로 확보하고 있지 못하다. 잠실 주경기장도 귀빈석·기자석·주차장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보완할 곳투성이다. 월드컵유치위원회의 관계자는 이렇게 말한다. “부산과 인천에 국제 규모 축구장을 짓고 있으나, 한국과 일본이 반반씩 나누어 경기를 치르더라도 최소한 세 곳 이상은 새로 지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도 FIFA가 조사한 뒤 결정할 사항이다.”

일본은 월드컵 단독 개최를 준비하면서 4만명 이상 수용할 수 있는 축구 전용 구장을 열 군데나 짓고 있다( 증·개축 포함). 오히려 일본은 준비가 너무 앞선 나머지, 공동 개최로 인해 유치 경기 수가 줄어드는 바람에 ‘과잉 투자’가 돼버린 것이 문제라면 문제이다(14쪽 관련 기사 참조). FIFA 실무위원회는 오는 7월 한국과 일본을 방문해 기초 조사에 착수한다.

그러나 아직 6년이라는 긴 시간이 남아 있기 때문에 경기장 시설 따위 하드 웨어는 큰 문제가 아니다. 대회 유치를 원하는 각 지방자치단체가 경기장을 준비하는 중이고, 88년 서울올림픽 같은 큰 대회를 치렀기 때문에 통신이나 숙박 시설도 큰 문제가 없다.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수준 높은 경기 내용과 관전 태도를 월드컵이라는 큰 그릇에 보기 좋게 담아낼 것인가 하는 소프트 웨어이다. 따라서 앞으로 펼쳐질 한국과 일본의 축구 전쟁 후반전은 아마도 소프트 웨어 전쟁의 양상을 띨 것으로 보인다.

이 점에서 공동 개최는 두 나라에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전세계인이 한국과 일본 두 나라를 비교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6년간 치러질 후반전은,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전반전보다 더욱 치열한 경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 싸움은 유치 경쟁처럼 밀어붙이기 전략으로 승리를 거둘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한국이 최종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왕 방한 놓고 외교 갈등 불거질 가능성도

앞으로 한국과 일본의 경쟁이 과열될 경우 두 나라 간에 외교 문제가 발생할 위험도 있다. 현재 한국과 일본 두 나라 국민은 개회식과 결승전이 어디에서 열릴 것인가에 큰 관심을 쏟고 있다. 이 문제는 두 나라가 고집한다고 해서 결정될 것이 아니다. 그런데 FIFA의 관례에 따르면, 개최국의 국가 원수가 개회를 선언하는 것이 당연한 권리이다. 아직 구체 사항이 결정된 것은 아니지만 공동 개최국의 국가 원수로서 일왕의 방한 문제가 불거질 경우 한·일 양국은 복잡한 외교 문제에 봉착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이와 관련해 일본의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게이오 대학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正夫) 교수는 “한·일 양국은 그동안 반목과 질시 속에 살아 왔기 때문에 처음부터 손발이 맞을 리는 없다. 그러나 손발도 맞춰보기 전에 상대방을 탓하는 것은 삼가자”라고 말했다. 한국 언론들도 월드컵 공동 개최를 한·일 간의 마음의 벽을 허무는 계기로 삼자는 글을 앞다투어 싣고 있다.

그러나 해묵은 감정이 쉽사리 풀리리라고 예측하기는 힘들다. 한 예로 일본 월드컵유치의원연맹 일부 인사들 사이에서 공동 개최가 결정되기도 전에 아키히토 왕의 방한 문제를 거론하며, 일본은 공동 개최를 포기하고 아예 월드컵 대회를 한국에 주어버리자는 얘기도 나왔다고 한다. 한국민의 감정도 이와 크게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2002년 월드컵은 21세기 초두에 아시아 지역에서 열리는 첫 번째 대회이다. 두 나라는 대회를 유치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쳐 왔지만 결과는 공동 개최이다. 문제는 이것이 무승부가 아니라 새로운 축구 전쟁의 시작이라는 점이다. 한국과 일본은 월드컵 대회를 성공시켜야 할 책임을 똑같이 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의 성패 여부는 경기 내용보다 두 나라 국민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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