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익제 월북 파문 …국민회의 초긴장
  • 李叔伊 기자 ()
  • 승인 1997.08.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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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호재 만난 듯 연일 사상 공세 퍼부어
‘날씨 맑음’이던 국민회의에 ‘오익제 날벼락’이 떨어졌다. 한참 잘 나가던 DJ가 국민회의 고문 출신 오익제씨(전 천도교 교령)가 월북해 ‘악몽 같은’ 색깔 논쟁에 또다시 휘말렸기 때문이다. 국민회의는 오씨의 월북 소식이 전해진 16일부터 연일 긴급회의를 열고 파장을 최소한으로 줄일 묘책을 찾고 있다.

휴일인 17일에도 조세형 총재권한대행을 비롯한 간부들이 당에 나와 오씨의 입당 원서를 찾아보고, 평통 자문위원 관련법을 검토하는 등 분주한 모습이었다. 18일에는 휴가에서 돌아온 DJ가 주재하는 대책회의가 장장 2시간 가까이 열렸다.

국민회의, 오씨와 DJ 떼놓기 부심

반면 모처럼 호재를 만난 여당은 오씨의 월북을 당장 DJ의 사상 문제와 결부하며 연일 공격을 퍼붓고 있다. 이사철 대변인은 서경원 의원과 문익환 목사의 불법 입북, 허인회 당무위원의 간첩 접촉 의혹 등을 들추며 “북한 커넥션이 왜 하필이면 김대중 총재 주변에서만 일어나는지 모르겠다”라고 DJ를 물고늘어졌다. 구범회 부대변인은 한발짝 더 나아가 “오씨 같은 빨갱이를 누가 언제 어떤 경로로 김총재에게 소개했는지 밝히라”고 공격했다. 그는 또 김총재 주변에 호적도 본적도 확인되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가 있다며 색깔 의혹을 한껏 부추겼다.

국민회의는 이런 여당의 공세에 당혹해 하면서 일단 2단계 대응 전략을 세웠다. 1단계로 오씨와 DJ 사이를 멀찌감치 떼어놓고, 2단계로 오씨의 월북을 국가 책임으로 돌리는 것이다.

장성민 부대변인은 즉각 ‘오씨는 전국구 공천을 받지 못한 후 사실상 당과 인연을 끊었고, 지난 5월 전당대회 이후 고문에 재임명되지 않아 현재는 평당원일 뿐’이라는 논평을 냈다. 국민회의는 또 사건이 난 지 이틀 만인 18일 오씨의 당원 자격을 박탈했다. 물론 불길이 국민회의 쪽으로 번지는 것을 서둘러 막자는 의도에서다.

이어 국민회의는 공격의 화살을 정부·여당 쪽으로 돌렸다. 정동영 대변인은 “오씨는 대통령의 통일 고문인 평통 상임위원을 17년이나 역임했다. 따라서 오씨의 사상을 검증할 책임은 1차적으로 정부 당국에 있다”라고 정부의 책임을 물었다. 오씨는 81년부터 평통 상임위원을 맡았고, 지난 7월1일 재위촉되었다. ‘민주평화통일 자문위원법’에 따르면 자문위원은 ‘민족의 통일 의지를 대변할 수 있는 인사’ 가운데 의장인 대통령이 위촉하도록 되어 있다.

그렇다면 오씨는 과연 어떤 사람이기에 사회 지도급 인사로 활동하다가 월북을 감행했을까. 평남 성천이 고향인 오씨는 6·25 때 월남해 국방부 문관을 지냈고, 51년부터 천도교에 몸담아 89년 최고 수장인 교령 자리에 올랐다.

교령 취임 이후 그는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행사를 남북 공동으로 열자고 주장하는 등 유난히 남북 교류에 열성을 보였으나, 94년 재단 비리에 연루되어 교령 직을 내놓았다. 국민회의에는 95년 창당 발기인으로 참여해 고문과 종교특위 위원장을 지냈으나, 15대 총선을 앞두고 전국구 공천을 받지 못하자 소원해진 것으로 알려진다.

오씨가 월북한 동기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 천도교 관계자들이 “반(反) 북한 성향이 강했던 오씨가 93년 북경에서 북한에 두고 온 가족을 만난 후 태도가 변했다”라고 전하는 말로 미루어 가족에 대한 향수가 월북 동기로 작용했으리라는 관측이 가장 많이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8월17일 대검 공안부(주선회 검사장)는 ‘오씨가 이산 가족을 만나려고 자진 월북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입북 경로와 접촉 인사를 수사중’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오씨가 간첩일 가능성이 높다’‘황장엽 파일에 올라 있던 오씨가 수사망이 좁혀들자 월북한 것 같다’는 등 심상치 않은 얘기가 여기저기서 흘러 나오자 국민회의는 그 여파가 어디까지 미칠지 몰라 잔뜩 긴장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색깔론은 선거 때만 되면 등장해 DJ의 발목을 잡았던 ‘반갑지 않은’ 단골 손님이다. 가깝게는 지난 15대 총선 기간에 벌어진 DMZ내 총격전과 부여 간첩 김동식 사건이 있고, 멀리는 92년 대선 3개월 전에 터진 거물 간첩 이선실 사건과 북한의 DJ 지지 방송 파문이 대표적이다.

선거판을 뒤흔들며 DJ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던 이 사건들은 그러나 묘하게도 선거만 끝나면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DJ가 자신을 색깔론의 최대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DJ는 기회 있을 때마다 “선거판만 벌어지면 북쪽에서 붉은 귀신이 나타나고 여당은 신들린 무당처럼 난리굿을 벌여 왔다”면서 여권의 정략적인 색깔론 활용을 비판해 왔다.

DJ의 보수 껴안기 도로아미타불?

그런 아픈 과거 때문에 DJ는 이번만큼은 색깔론의 희생자가 되지 않겠다며 과감하게 보수 행보를 시도해 왔다. ‘원조 보수’를 자처하는 JP와의 공조에 필사적으로 매달려온 데에는 색깔론을 피해 보자는 의도도 깔려 있었다. 그런데 이번 오씨 파동으로 DJ는 그간의 노력이 자칫 헛수고가 될 위기에 처해 있다.

그래서 DJ측은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며 비상 수단까지 동원할 태세다. 여당이 자꾸 색깔론을 부추기면 이회창 대표 가족과 측근 들의 사상 문제를 정면으로 치고 나가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권의 각오도 만만치 않다. 이대표측은 병역 정국을 돌파하고, 추락 중인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색깔론을 최대한 활용할 작정이다. 난데없이 튀어나온 ‘오익제 변수’로 당분간 색깔론이 정국을 뒤흔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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