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관련 '추악한 유물' 공개된다
  • 金恩男 기자 ()
  • 승인 1998.0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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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기념관준비위, 정조 유린한 콘돔·군인 수표 기증 받아
‘병사에게는 외출할 때 반드시 돌격 제일이라고 씌어진 봉지에 든 콘돔을 지참하게 했습니다. (중략) ‘돌격 제일’은 군수품이므로 생고무를 우선적으로 배급받아 제조되고 있었습니다.’(센다 가코, <증언>)

‘병사가 빨간 기와집(오키나와 도카시키 섬의 위안소 별칭)에 놀러 올 때에는 카운터에서 요금을 지불하고 표를 산다. … 자기 차례가 되면 방으로 들어가 여자에게 표를 준다. 하루가 끝난 후 여자들의 벌이는 표가 몇 장인가에 따라 계산되었다.’(가와다 후미코, <빨간 기와집>)

일본군 위안부 출신 여성들의 증언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이 이른바 삿쿠(군용 콘돔)와 군표(군용 수표)이다. 이들 물품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된다. ‘일본군 위안부 기념관 개관준비위원회’(준비위원회)가 지난 12월25∼30일 일본 오키나와를 방문해, 뜻있는 일본인들로부터 이 물품을 기증받은 덕분이다. 기념위원회는 오키나와 원주민인 구니요시 이사오(亞土消毒 대표)씨와 우라사키 시게코(오키나와 여성사 편찬 소위원회 위원)씨로부터 각각 콘돔과 군표를 기증받았다.

이번 방문에 참가한 한국정신대연구소 조혜란 간사는 ‘그간 사진으로만 소개돼 왔던 이들 물품은, 일본 정부가 군 위안소를 얼마나 조직적으로 설치·운영했는지 보여주는 산 증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군인들, 군표 들고 위안소 출입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여러 문헌에 따르면, 위안소를 이용하는 일본군은 의무적으로 콘돔을 착용해야 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오키나와에 주둔하던 제3475부대에 하달된 ‘군인 클럽(위안소)에 관한 규정’에는 ‘사용자는 반드시 콘돔을 사용하여 성병을 방지키로 한다. 만약 사용하지 않고 성병을 옮겼을 경우 처벌한다’는 조항이 들어 있다.

전황이 나빠졌어도 이같은 규정은 지켜졌다. 전쟁 당시 군의관을 지낸 한 일본인은, 센다 가코의 <증언>에서 ‘44년 이후 중국 전선에서는 콘돔이 부족해, 고성 현에서는 아침이 되면 위생병이 위안소에서 한번 사용했던 콘돔을 회수해 소독액으로 닦아서 재생했다’고 회고했다.

콘돔 사용을 의무화한 이유는 간단했다. 위안소를 ‘위생적인 공중 변소’라고 표현했던 데서 드러나듯, 애초부터 위안소를 설치한 목적 가운데 하나가 성병에 의한 병력 감소를 막는 것이었기 때문이다(유교식 정조 관념이 강한 조선 처녀들을 대량 징발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군표는 위안소를 관리·통제하는 데 필요했다. 여러 문헌들은 계급에 따라 위안소 사용 시간과 요금이 달랐음을 보여주고 있다. 앞서의 ‘군인 클럽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요금은 장교가 3엔, 하사관·군속이 2.5엔, 사병이 2엔이었다.
군인들은 내무계 담당 하사관에게 교부받은 사용 허가증과 함께‘대일본제국 정부’ 활자가 선명하게 새겨진 군표를 들고 위안소를 찾았던 것이다(사진 참조).

이번에 오키나와를 방문한 기념위원회측은 콘돔·군표말고도 위안부 여성들이 사용했으리라 추정되는 분첩·장식용 문갑 조각 등을 기증받았다. 이것이 ‘추정’에 그치는 이유는, 이들 물품이 대거 발견된 장소가 오키나와 나하 시에 있는 나게라 병원 지하 동굴이었기 때문이다. 90년대 중반 도시 계획에 따라 택지 공사를 하다가 발견된 이 동굴은, 2차 세계대전 때 야전 병원으로 쓰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곳에서 군대와 관련된 물품들을 발굴해 백여 점을 기념위원회에 기증한 구니요시 이사오 씨는, 야전 병원에서 간호사를 지낸 마키야 씨의 증언으로 미루어 이 중 몇몇 물품이 병원 내부 위안소에서 쓰였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95년 나게라 병원 지하 동굴을 정밀 측량한 학습원 대학과 일본 대학 공동 탐사팀에 따르면, 총 길이 1백50여m에 달하는 이 동굴은 수술 병동과 전염 병동으로 나뉘어 있다. 이 중 수술 병동의 가장 구석진 곳에 ‘커튼을 드리운’ 위안소가 설치되어 있었다고 마키야 씨가 증언했다. 실제로 이 구간에서 종군 간호사들이 사용했으리라고 보기에는 호사스러운 화장 도구와 장식용 자재 조각들이 발견되었다는 것이 구니요시 씨의 주장이다. 그러나 현재 마키야 씨의 소재가 확인되지 않고 있는 만큼 이는 아직 추정에 불과하다.

3·1절에 첫선 보일 예정

그럼에도 기념위원회는 이번 기증을 계기로, 오키나와에서의 한국인 위안부 실태를 더 정밀하게 조사할 방침이다.

오키나와는 2차 세계대전 때 일본에서 유일하게 지상전이 있었던 지역으로, 그만큼 한국인 위안부들의 희생이 컸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72년 일본에서 최초로 위안부 출신임을 밝혀 파문을 일으켰던 배봉기 할머니가 위안부 생활을 했던 곳도 이곳이다(상자 기사 참조).

일본의 여성 단체인 ‘전국 여성사 연구교류를 위한 실행위원회’는 오키나와 지역에 설치된 위안소가 1백50여 군데이며, 여기 몸 담았던 한국인 위안부가 천여 명에 달했을 것으로 추산했다(94년 1월 현재). 이 단체가 채록한 오키나와 원주민들의 증언에는 ‘군인들이 조센삐(한국인 위안부를 비하해 일컫던 말)가 왔다고 말했다’‘아리랑 노래를 들었다’ 같은 내용이 상당수 들어 있다.

이번에 기증받은 물품은 오는 3·1절에 개관할 일본군 위안부 기념관(경기도 광주군 퇴촌면 원당리, 전화 0347­768­0064)에서 일반에 첫선을 보일 예정이다. 나치 전범의 만행을 고발한 ‘아우슈비츠 기념관’을 본따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게 될 이 기념관(총면적 1백4평)에는, 위안부 관련 사료·유물과 미술 작품 등이 전시된다.

단 ‘IMF 한파’로 아직까지 기념관 건설 기금 3억원 가운데 3분의 1도 채 모으지 못한 상태여서 개관 일정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고,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의 쉼터인 ‘나눔의 집’ 원장 혜진 스님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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