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가 발탁할 인사 1순위는 '준비된 전문가'
  • 李叔伊 기자 ()
  • 승인 1998.0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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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식 깜짝쇼 지양, 친분 떠나 능력 위주 기용…임무 과다 부여·‘타이틀’ 중시 등은 단점
놀랬지? 우째 이런 일이. 007작전. 예측 불허…. 김영삼 대통령이 인사를 단행할 때마다 쏟아져 나온 말이다. ‘깜짝쇼’라는 한마디로 압축되는 이 YS식 인사는 집권 초반부터 파열음을 냈다. 전병민 청와대 정책수석과 박희태 법무, 박양실 보사부 장관, 김상철 서울시장이 발탁된 지 며칠 만에 사퇴하는 촌극이 이어졌다. 검증 절차를 생략한 채 대통령 혼자 밀실 낙점한 데서 온 시행 착오였다.

YS 정부의 조각이 발표된 후에는 ‘DDD’‘신 KS’라는 신조어가 줄줄이 양산되었다. DDD는 동국대·동아대·동래고의 이니셜을 딴 것이고, 신 KS는 경기고·서울대를 대체하는 경복고·서울대 라인을 의미한다. 모두 YS 정권에서 갑자기 떠오른 인맥을 특징짓는 용어들이다. 이런 YS식 깜짝쇼와 지연·학연에 얽매인 정실 인사는 결국 집권 5년 만에 나라를 거덜내는 ‘망사(亡事)’가 되고 말았다.

‘오케스트라식 인사’가 철칙

그렇다면 김대중 정권의 인사는 과연 만사가 될 수 있을 것인가.

다행히 김대중 차기 대통령의 용인술은 김영삼 대통령과는 사뭇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우선 DJ는 상식을 뛰어넘는 파격적 인사는 좀처럼 하지 않는다. 김영삼 대통령이 충성도나 개인적 연을 바탕으로 의외의 인사를 중용했다면, 김대중 차기 대통령은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가장 무난한 인물을 뽑아 쓰곤 했다.

예컨대 그가 정당 지도자라기보다 재야 인사였던 87년까지는, 보안 의식이 철저하고 의리로 똘똘 뭉친 가신들이 그의 주변에 포진했다. 봉건 영주형 사람 쓰기였다.

그러나 이후 그의 용인술은 차츰 기업형으로 변했다. 13대 총선 직후 여소야대 국회에서 DJ는 당시 직계가 아니었던 김원기 의원을 원내총무에, 역시 별다른 연이 없고 초선인 이상수 의원을 대변인에 앉혔다. 국민회의 창당 과정과 4·11 총선을 거치면서 DJ는 이종찬 부총재를 비롯한 ‘외부 인사’를 대거 영입했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 유재건 비서실장, 김원길 정책위의장, 김한길 TV팀장을 기용한 것도 DJ의 파격적인 용병이다. 끊임없이 새 사람을 받아들이고, 이들과 기왕의 인사를 섞어 새로운 세력을 양성해온 것이 DJ의 장수 비결이었던 셈이다.

DJ는 자신의 인사 원칙을 얘기할 때 특유의 ‘오케스트라론’을 편다. 플루트 주자가 플루트의, 탬버린 주자가 탬버린의 달인이 되어 있으면, 지휘자인 자기가 언제 어떤 악기를 전면에 내세울지를 판단한다는 것이다. 즉 당원들은 자신이 전면에 나서야 할 곡이 연주될 때를 대비해 그 분야의 1인자가 되어 있으라는 주문이다.

오케스트라식 인사가 가능하려면 기본적으로 DJ가 개개인의 장단점을 꿰뚫어 보는 안목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 점에 대해 DJ 주변 인사들은 ‘정확도 90%’라고 입을 모은다. DJ가 정치 9단인데다 40년이 넘게 사람들 속에서 부대껴 온 터라 사람 보는 눈만큼은 남다르다는 것이다.

DJ가 인물을 평가하는 주요 기준을 정직성·성실성·전문성이라고 측근들은 말한다. 이 가운데서도 으뜸으로 치는 덕목이 근면·성실이다. DJ는 실력은 좀 떨어져도 자기가 맡은 일에 열심인 사람에게 높은 점수를 준다.

DJ는 자기가 눈여겨본 사람은 주변 사람들을 통해 두번 세번 확인하거나 언론을 통해 검증하는 절차를 거치곤 한다. YS가 인사 내용이 조금이라도 언론에 나오면 인선 자체를 깡그리 바꾸는 ‘보도 기피증’을 보였던 것과는 딴판이다. YS 정권에 임용되기를 원하던 인사들은 기자들에게 “입각 대상자 명단에서 제발 내 이름은 빼달라”고 애원하곤 했었다. 이에 비해 DJ 정권에 임용되기를 원하는 인사들은 ‘내 이름 석자도 꼭 끼워 달라’고 부탁해야 할 판이다.
‘지역 안배’에 발목 잡힐 수도

DJ의 이런 인사 스타일과 그간의 공약으로 미루어 볼 때 차기 정부의 인선은 대략 가신 배제·과거 불문·능력 중시·지역 화합이라는 큰 틀 안에서 나올 것으로 보인다. 권노갑 부총재를 비롯한 가신 7인은 이미 임명직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들은 국회에 남거나 5월에 실시되는 지방자치 선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국민회의 소속 의원이 내각에 참여하는 일도 최소가 될 것 같다. 정권인수위원 선정 과정에서 DJ는 ‘당도 중요하다’며 당 10역과 국회 상임위원장들을 제외했다.

대신 큰 흠만 없다면 과거 정권에서 일했더라도 능력을 인정받은 인사가 상당수 발탁될 전망이다. TK 출신으로 6공 시절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김중권씨를 비서실장에 발탁한 일이 대표적이다.

이쯤되면 DJ 정권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이 어떤 자세를 보여야 할지 드러난다. 우선 자기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는 것이 필수이다. DJ는 야구 선동렬· 누드 모델 이승희같이 자기 분야의 1인자를 찾고 있다. 이는 프로 세계의 불문율이다. 다음은 자신의 능력을 DJ에게 적극 알려야 한다. 그 통로는 측근들의 추천일 수도 있고, 언론이 될 수도 있다.

일단 DJ와 일을 하게 되면 자신의 능력을 맛깔나게, 그러나 서서히 풀어내는 것이 좋다. 자신이 가진 것을 몽땅 DJ에게 털리고 나면 빨리 ‘팽’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DJ 측근들은 DJ가 다분히 자기 중심적이며 실용적으로 사람을 관리한다고 말한다. 남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자신에게 고스란히 이식한 후 용도가 다하면 멀리하는 1회용 인사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DJ 측근들은 DJ 입에서 “자네 요즘 뭐하고 지내는가?” 라는 소리가 나오면 용도 폐기될 순간이 왔음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DJ의 인사 원칙을 알기 위해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 DJ가 상당히 열린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외부에는 DJ가 비판을 싫어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것은 푸념이나 비판을 위한 비판에 한정될 뿐이다.

물론 DJ의 용인술에도 허점은 있다. 우선 누군가를 한번 신뢰하면 능력 이상의 업무를 맡기는 경우가 간혹 발생한다. 당 일각에서는 최근 사례로 김한길 인수위 대변인을 꼽는다. 텔레비전 토론에 관한 한 탁월한 역량을 발휘했지만, 공보팀장에 인수위 대변인까지 겸하게 하는 것은 지나친 임무 부여라는 지적이다. 국민회의의 한 고위 인사는 “사람에게 110%의 역량을 발휘하라고 하면 열심히 뛰지만, 그 이상으로 역량을 내라고 채근하면 맡기는 사람은 나중에 실망하게 되고 맡은 사람은 좌절하고 만다”라고 충고했다.

두 번째는, 형식에 연연할 때가 많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DJ는 ‘미제 박사’나 ‘다선 중진’을 선호하는 편이다. DJ 주변에 지나치게 미국 박사가 많은 것이나, 평소 DJ가 30∼40대 청·장년과 여성을 우대한다고 강조하고도 정작 당을 운영할 때는 중진 중심으로 가는 것은 그같은 DJ의 잠재적 편향성 때문이다.

세 번째는, DJ가 의외로 귀가 얇다는 점이다. 남의 의견을 경청하다 보니 생기는 부작용일 수도 있지만, 참고를 벗어나 아예 결정을 뒤바꾸는 일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DJ의 한 측근은 “모르긴 몰라도 미리미리 준비하는 총재 성격상 이미 조각을 끝냈을 수도 있다. 특별한 흠이 없는 한 총재가 만든 최초 안이 그대로 관철됐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여론 수렴 과정을 거치면서 DJ의 최초 인선 내용이 황당하게 변할 수도 있음을 우려하는 목소리다.

DJ가 합리적인 인사를 하는 데는 이런 본인의 단점 외에 외부 걸림돌도 만만치 않다. 우선 자민련이 어떤 인물을 추천할지 모른다. DJ가 아무리 전문가를 중시한다 해도 자민련측이 소속 의원들을 대거 행정부에 추천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대선에서 공을 세웠지만 임용하기에 큰 흠이 있는 인사들을 어떻게 대우할지도 미묘하다. 재야 변호사 단체는 이미 지난 1월3일 박철언·이건개·엄삼탁 등 슬롯 머신 사건 연루자들의 공직 임명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DJ는 또 능력 있는 호남 인사를 발탁하고도 늘 여론에 신경써야 하는 태생적 부담을 안고 있다. 그렇다고 지역 화합만 강조하다 보면 뒤틀린 인사 구조를 바로잡을 수 없다. 당 일각에서는 벌써 ‘정권 창출만 해놓고 눈치 보느라고 좋은 자리는 모두 5, 6공 세력에게 넘기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40년 정치 인생에서 고비마다 탁월한 용인술로 위기를 극복하곤 했던 DJ. 그가 자신의 정부 조각을 통해 ‘과연 DJ답다’는 말을 듣게 될 것인지, 국민들은 기대 반 우려 반의 심정으로 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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