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우 총살설 파문
  • 南文熙 기자 ()
  • 승인 1998.10.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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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파에 대한 경고·외국 압박 원천 봉쇄 위한 북측 ‘언론 플레이’ 가능성
‘김정우 총살설’은 누가 어떤 목적으로 흘렸나. 지난 9월22일 베이징발 교도 통신 보도로 야기된 북한의 대표적 개방파 김정우 총살설 파문은 그 이틀 뒤인 24일 AFP 통신이 ‘북한을 자주 왕래하는 한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김정우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 위원장이 6월까지도 살아 있는 모습이 목격되었다’고 밝힘으로써 진정 국면에 들어갔다.

국내 정보 당국 실무진 역시 최근 비슷한 취지의 보고서를 상부에 제출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정보 당국의 한 관계자는 “지난 6월까지 김정우의 신상을 계속 추적해 왔으나 특이 동향은 없었다. 총살설 이후 별도 채널을 통해 확인한 결과 6월 중순까지 살아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6월 중순 이후의 생존 여부는 계속 확인하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사실 교도 통신 보도는 여러 모로 의문투성이였다. 우선 정보를 제공한 사람의 신원이 불분명했다. ‘북한을 방문한 여행자가 북한 고위층으로부터 확인한 얘기’라는 것만으로는 신빙성이 약하다. 특히 대외 사업을 하는 북한 관리들에게는 이미 관행이 되다시피 한 뇌물 수수가 총살 이유가 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또한 김정우처럼 대외적으로 알려진 인물을 비공개 처형했다는 점도 의문이다. 지난 9월 초순부터 약 20일간 평양에 머무르다가 최근 중국에 돌아온 조선족 고위 인사는 “김정우 정도의 인물을 처형했다면 경각심 차원에서라도 당의 부장급 인사들에게는 알리는 게 북한의 관행이다. 그러나 그런 낌새가 전혀 없었다”라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중국 공안 당국 역시 그와 같은 견해라고 한다.

김정우의 신병을 둘러싸고 그동안 숙청설이 대세를 이루어 왔지만, 그가 몸 담았던 대외경제위나 대외경제협력추진위가 현재까지도 건재하고 있음을 들어 와병설을 주장하는 흐름 역시 만만치 않다. <시사저널>은 교도 통신이 김정우 총살 시점이라고 밝힌 지난해 12월보다 넉 달이 지난 올해 4월 서방측 관계자로부터 “김정우가 요양 중일 뿐 아직 건재하다는 사실이 방북 인사들을 통해 직접 확인되었다”라는 정보를 입수한 바 있다.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 역시 교도 통신 보도 직후 “유엔 주재 북한 대표부 관리들은 근거 없는 헛소문이라고 밝혔다. 교도 통신의 소스에 문제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국내 정보기관 의심하는 시각도

이처럼 북한 전문가들이 거의 공통으로 총살설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데도 국내 언론은 해외 언론의 보도를 따랐다가, 또 다른 해외 언론에 의해 부인되는 수모를 당했다.

북한 관련 보도의 잘못된 관행이 또 한번 되풀이된 것이다. 이런 언론 보도의 고질적인 문제점 외에도 누가 왜 이런 첩보를 흘렸는가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이런 문제의 성격상 확인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나, 이번 보도 파문 이후 특히 일본 언론들 사이에는 재미 교포로서 북한을 자주 왕래하는 ㅁ씨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종종 북한 당국의 입 노릇을 해온 그가 소문의 발설자라면, 그 배후에 북한 당국의 어떤 의도가 작용했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북한 전문가들은 몇 가지 가설을 제시한다. 우선 김정우가 총살형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자연사했거나 또는 살아 있다 해도 당분간 활동이 어려운 처지일 가능성을 부인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경우 북한 당국이 비교적 부담감 없이 그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워 내외의 복잡한 문제를 돌파하고자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나진·선봉 사업이 실패한 책임 문제 △ 최근 득세하고 있는 당내 보수파가 개혁·개방 세력에 대해 경고용으로 활용하기 위한 정책적 의도도 포함된다.

여기에 덧붙여 경제적 이유를 드는 전문가도 있다. 얼마전 원산에 진출한 일본 기업이 북한측에 선급금으로 지급한 1천2백만 달러를 돌려달라고 요구하고 있고, 또 태국의 록슬리 사 역시 여러 가지 압박을 가하고 있는 등 개방 과정의 부작용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책임자인 김정우를 총살했다고 함으로써 이런 압박을 원천 봉쇄하려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국내 정보 당국의 수뇌부를 의심하는 시각도 있다. 정보 당국 수뇌부는 예하 실무진과 다른 비선 라인을 통해 김정우 사망설 내지는 총살설을 입수해 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파악한 정보를 외국 언론에 먼저 흘리는 ‘고전적인 수법’을 쓴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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