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훈 중위 타살 입증할 ‘권총 번호’ 찾았다
  • 丁喜相 기자 ()
  • 승인 1998.10.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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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 옆 권총 ‘타인 것’ 확인…군 발표와 달라
미국 뉴욕 주 정부 소속 법의학 권위자 루이스 에스 노(한국명 노여수) 박사가 내한해 <시사저널>(제446호 참조)과 SBS <그것이 알고 싶다>(9월 13일 방영)를 통해 ‘김 훈 중위는 타살되었다’는 소견을 발표한 뒤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국내에서 이 사건의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인권 단체와 국회의 활동이 활발해지는가 하면, 미국 교민 사회도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서명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김 훈 중위 의문사 진상 규명 노력이 새로운 국면을 맞은 가운데 <시사저널>은 최근 김중위의 사망 경위를 밝혀낼 결정적 단서를 확보했다. 김 훈 중위 사망에 사용된 총은 그동안 군 수사 당국이 밝힌 것과 달리 김중위에게 지급된 ‘본인의 권총’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런 사실은 한·미 군 수사 당국의 기록과 현장 증거품 감식 기록을 김 훈 중위가 사망 당시 지녔던 권총 소지증과 비교한 결과 드러났다.

1140865번 권총 주인 수사 시급

<시사저널>이 입수한 김중위 유품속의 권총 소지증에는 그가 지급받은 베레타 권총의 일련 번호가 1140862번인 것으로 되어 있다. 김중위는 사망하기 1개월여 전인 지난 1월8일 판문점 경비부대 소대장으로 배속되면서 미군으로부터 이 권총을 지급받고 권총 소지증에 자필 서명을 해 두었다. 그러나 김중위가 사망한 뒤 시신 옆에서 발견된 권총은 일련 번호 1140865번이었다. 이같은 사실도 모른 채 그동안 한·미 군 수사팀은 “김중위가 자기에게 지급된 권총으로 스스로 관자놀이를 쏘아 자살했다”라고 발표했다. 한국군 수사팀(1군단 헌병대)은 ‘탄피는 사고자로부터 약 50m 거리에 있던 사고자의 지급 권총 1140865번에서 발사된 것으로 입증된다’라는 기록과 함께 자살이라고 단정했다. 미군 CID 역시 1140865번 권총을 미국 본토에 있는 미군 범죄수사연구소에 보내 법의학적 감식을 의뢰했다. 한·미 군 수사 당국은 김중위 시체 옆에서 발견된 ‘타인의 권총’을 아무런 의심도 없이 ‘본인의 권총’으로 단정하고 자살이라고 강변해 왔던 셈이다.

이같은 사실에 대해 육본 검찰부측은 “충격적이다. 김 훈 중위 권총이 당연히 맞을 것으로 생각하고 권총 주인이 누구인지는 조사를 안했다”라고 밝혔다. 따라서 육군 검찰팀은 김중위 사망에 사용된 1140865번 권총의 원주인을 반드시 찾아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노여수 박사의 타살 소견에 이어 이처럼 명백한 새 증거가 드러났어도 군 검찰의 수사는 핵심을 겉돌고 있다. 미군과 한국군 당국의 집요한 방해 때문이다. 미군측은 한국군 검찰에게 현장 총성 시험을 못하게 하는가 하면, 김 훈 중위가 사망 직전에 썼던 현장 수색 정찰서도 넘기기를 거부하고 있다. 한국군 당국 역시 사건 은폐 작업을 지속적으로 시도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육군 법무감과 정훈감이 SBS 방송국을 찾아가 <그것이 알고 싶다> 프로그램 방영을 중지하라고 요구했는가 하면 심지어 고 김 훈 중위 49재를 지낸 군승에게 “진급에 불이익이 있을 것이다”라고 협박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같은 사태 전개 때문에 김 훈 중위 유족인 아버지 김 척 예비역 육군 중장은 현재 군 검찰의 수사도 외압으로 인해 진상 규명과는 동떨어져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국 앞으로 군 검찰이 김 훈 중위 의문 사건을 처리하는 방향은 정부의 군 개혁 작업과 인권 정책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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