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필]MBC 사태 이끈 정찬형 노조위원장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1996.06.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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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형 MBC 노조위원장/방송법 개정·방송 단일 노조 건설에 총력
 
6월17일, 문화방송(MBC) 노동조합 사무실. 정찬형 노조위원장(38)은 줄을 잇는 전화에 응대하느라 몹시 바쁜 모습이었다. 이틀 전인 15일 강성구 사장이 방송문화진흥회에 사직서를 제출함으로써 이른바 ‘MBC 사태’가 일단락된 것을 격려하는 전화들이다.

조합원 투표를 통해 정씨가 제8대 노조 위원장으로 선출된 때는 지난 2월29일. 그러나 정씨는 △3월13일 방송문화진흥회의 강성구 사장 재선임 결정에 따른 MBC 노조 총파업 △4월4일 파업 철회(방송문화진흥회, 강사장 퇴임 약속) △6월4일 파업을 주도한 노조 핵심 간부에 대해 회사측이 징계 방침 통고. 노조는 ‘제2차 강사장 퇴진 투쟁’ 선포 △6월13일 노조 간부 6명에 대한 징계 확정(최문순 전 노조위원장 해고 조처 포함). 이에 대한 항의 표시로 보도국 기자 1백74명 집단 사퇴 △6월15일 강사장 사표 제출로 이어지는 숨가쁜 일정 속에서 석 달이 지나도록 취임식조차 치르지 못했다.

첫 싸움을 ‘승리’로 이끈 정씨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 노조가 ‘사장 킬러’ 집단인 양 비칠까 봐 걱정된다고 말문을 연 정씨는 “MBC를 살리려던 동료들이 오히려 MBC를 2류 방송으로 전락시킨 주범들에게 쫓겨나는 뒤집힌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강사장 퇴진이 최선의 길이었다”라고 강조했다.
현재까지 3년 임기를 채 마치지 못하고 MBC를 떠난 사장은, 곧 사표가 수리될 전망인 강성구 사장(11대)과 황선필(8대)·김영수(9대)·최창봉(10대) 씨 등 4명이다. ‘청와대 대변인 출신, 유정회 출신, 정권에 잘 보인 방송인 출신이 사장 자리에 앉는 한 MBC가 결코 공영 방송의 역할을 다할 수 없다는 판단이 우리를 투쟁의 대열에 서게 했다’고 말한 정씨는 이번으로 ‘사장 불명예 퇴진’의 악순환이 끝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정씨가 이끌 제8대 노조 집행부가 방송법 개정과 방송 단일 노조 건설에 온힘을 쏟기로 한 것도 이같은 배경에서이다. 현재 MBC 최대 주주로서 MBC 사장을 선출하는 방송문화진흥회는 모두 이사 10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6명을 방송위원회가 추천하는데, 현행 방송법상 방송위원회는 입법·사법·행정부가 각각 3명씩 추천한 9명으로 구성된다. 따라서 방송위원회 자체가 정부·여당 편향으로 흐를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정씨는, 유사한 사장 선임 구조를 가지고 있는 한국방송공사(KBS) 등 방송 4사와 함께 방송 단일 노조를 결성해 불합리한 방송법을 개정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강조한다.

강사장 퇴임 이후 방송문화진흥회가 ‘얼마나 빨리 얼마나 민주적으로’ 새 사장을 선임하는지 지켜보겠다는 그의 의지는, 그래서 예사롭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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