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버스, 한국에 A3XX 프로젝트 제안
  • 李哲鉉 기자 ()
  • 승인 1998.11.12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내 업체들, 구조 조정 끝난 뒤 참여 여부 결정할 듯
에어버스 A3XX 프로젝트는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국내 항공기산업의 비상구가 될 것인가. 미국 보잉 사와 함께 세계 민간 항공기산업을 양분하는 유럽 컨소시엄 업체인 에어버스 사가, 국내 항공기 업체들이 입맛을 다실 만한 합작 사업을 조심스럽게 제안해 왔다. 에어버스는 21세기 항공기 수요에 맞추어 세계 최대 규모의 항공기를 생산하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A3XX 프로젝트라고 불리는 이 사업은, 승객 5백50명을 태울 수 있는 초대형 항공기를 제조하는 국제 컨소시엄을 결성하는 것이다.

에어버스 아시아·태평양 지역 홍보 책임자 숀 리 씨는 “우리는 초대형 항공기 사업을 추진하면서 아시아 합작사를 구하고 있다. 단순히 비행기 부품을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컨소시엄에 일정 지분을 갖고 참여해 그 사업 성과와 위험을 함께 나눌 업체를 찾고 있다”라고 말했다.

80억 달러 소요될 전망

지금까지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항공기 업체들은 미국이나 유럽 항공기 제작 업체와 합작을 맺었지만 기술을 이전받거나 부품을 공급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에어버스는 초대형 항공기 사업에 세계 각국의 기업을 컨소시엄에 끌어들이고, 참여 업체에 항공기 제작 기술은 물론 시험·평가·설계 기술까지 이전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에어버스가 선뜻 첨단 기술을 이전하겠다고 약속하면서까지 아시아 파트너를 찾는 것은 위험 부담을 줄이겠다는 뜻이다. A3XX 프로젝트는 대략 80억 달러가 소요될 전망이어서 단일 업체가 떠맡기에는 부담이 너무 크다.

국내 업체들은 항공기 제작 기술을 축적하고, 항공기 구입선을 확보하기 위해 90년대 중반부터 중형 항공기 사업을 추진했다. 중국항공공업총공사와 90인승 중형 항공기를 공동 개발하는 사업을 추진하다가 협상 마지막 단계에서 결렬되고 말았다. 유럽 에어(AIR) 사와도 제휴 협상을 벌였으나 결렬되었다.

그 뒤 제3의 해외 업체와 제휴를 모색하고 있으나 여의치 않아 중형 항공기 사업 자체가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지금 이스라엘 IAI 사와 함께‘에어트럭’이라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나 수요가 충분치 않아 지지 부진한 상태이다. 항공기산업은 자동차산업과 달리 미리 고객의 주문을 확보해 놓고 사업을 실행한다. 항공기산업 특성상 비용 부담이 엄청나 구매자를 확보하지 않은 채 항공기를 개발했다가는 낭패를 보기가 십상이기 때문이다.

항공기 제작 기술을 얻고, 국내 업체가 주도적으로 참여해 생산한 비행기를 수출하고자 했던 국내 항공기 제작 업체의 꿈은 번번이 좌절되었다. 그 와중에 A3XX 프로젝트가 제안된 것이다.

대형 항공기 수요 늘어야 성공

대형 항공기 사업에 컨소시엄 구성 초기부터 참여한다면 국내 제작 업체는 첨단 항공기 기술을 이전받고 그 성과도 나누어가질 수 있어 일거 양득이다. 현대우주항공 김재홍 이사는“현대우주항공·삼성항공·대우중공업을 합친 단일 법인이 만들어지면 최고 경영자가 (A3XX 사업의 참여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기만 하면 A3XX 사업은 한국 항공기 제조 업체에 큰 기회를 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국 항공기 제작 업체들은 실제로 A3XX 프로젝트 참여를 실무자 차원에서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

A3XX 사업이 매력적인 것은 분명하지만 선뜻 참여하기에는 께림칙한 점이 있다. 국내 항공기 업체들이 부담해야 할 예산의 규모가 그것이다. 96년 중국과 중형 항공기 합작 사업을 추진할 때 산업자원부가 제시한 예산은 5억∼6억 달러였다. 앞으로 어떤 항공기 사업이 추진되더라도 이 액수에서 크게 늘어나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이 액수로 A3XX 사업에 참여한다면 소액 주주에 불과해 A3XX 사업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들을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 5백50인승 대형 항공기의 수요가 얼마나 되느냐가 이 사업 성공 여부를 가름할 것이다. 숀 리 씨는 “앞으로 20년 동안 4백인승 이상 항공기 수요는 1천3백대에 이른다. 한국만 해도 90대가 필요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이 전망이 맞는다면 A3XX 사업은 성공한다. 하지만 보잉 사는 요즘 중형 항공기 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앞으로 중·소형 항공기 수요가 늘어나리라고 보기 때문이다.

국내 항공기 업체들은 구조 조정 바람에 휘말려 있다. 해외 합작 사업을 결정하려면 구조 조정이 끝나야 한다. 따라서 국내 항공기 업체들이 어떤 합작선과 손을 잡을지는 내년 상반기가 지나야 윤곽이 드러난다. 그때까지 에어버스의 5백50인승 대형 항공기 사업은 국내에 착륙하지 못하고 선회 비행할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