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선협의 지방 선거 여론조사 검증
  • 張榮熙 기자 ()
  • 승인 1998.06.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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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신문, 특정 후보 당선 가능성 과장…질문·표본 과학성 결여
여론조사의 과학성을 빙자한 여론 왜곡이 6·4 지방 선거에서도 언론사들에 의해 저질러졌다. 이같은 사실은 50개 시민·사회·종교 단체로 구성된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공선협·상임 대표 손봉호)가 5월18일까지 공표된 중앙·지방 언론사의 지방 선거 관련 여론조사를 ‘조사’한 결과 드러났다.

공선협 여론조사검증위원회(위원장 박재창 숙명여대 교수)는 △조사 설계와 집행 단계에서의 과학성 △결과 해석 과정에서의 객관성 △결과 보도 과정에서의 공정성이라는 세 요소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조사가 다수 발견되었다고 밝혔다.

우선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 ‘당선 가능성’이라는 부적절한 질문이 있었다. 선거 여론조사는 응답자 자신의 의견을 엿보려는 것인데, 다른 사람의 투표 성향까지 점치라는 것이 ‘당선 가능성’ 항목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물어서는 안되는 질문을 한 결과, 한 예로 지지도에서는 김기재 부산시장 후보가 앞섰으나 당선 가능성에서는 안상영 후보가 앞서는, 혼란스러운 결과를 빚었다(5월18일자 <경향신문>).

이러한 질문이 가져오는 해악으로 선두 주자의 당선 가능성을 실제보다 부풀리고 나머지 후보의 가능성을 깎아내리는, 이른바 ‘밴드 왜건 효과’와 ‘언더도그 효과’를 들 수 있다. 자신의 지지와 상관없이 ‘될 사람을 민다’는 식의 바람직하지 않은 투표 행위를 조장할 수도 있다.

조사 과정에서 원초적 오류가 적지 않았다는 것도 큰 문제다. 우선 질문지에서부터 후보간 균형이 손상된 경우. 가령 5월17일자 〈중앙일보〉 조사의 경우 질문지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최기선 인천시장 후보 중심으로 짜여 공정성 시비를 낳을 만하다. 또 적잖은 조사에서 표본이 지역의 인구·사회학적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표본이 너무 작아 모집단을 대표하지 못했다. 예컨대 5월13일자 〈경인일보〉 인천 부평구·계양구 조사와, 5월15일자 〈부산매일〉 울산시 조사는 표본이 3백여 명에 불과했다. 취재 기자가 조사자로 행세하거나, 마음을 못 정한 ‘미결정자’를 빼고 ‘결정자’만을 조사 대상자로 선택한 믿기 어려운 오류도 발견되었다(5월18일자 〈동양일보〉).
“잘못된 여론조사, 선거에 치명적”

보도 과정에서의 잘못도 많았다. 무응답과 부동층이라는 거대한 존재를 아예 무시하거나, 신중하게 고려하지 않는 것이 좋은 예이다. 5월18일자 〈서울신문〉은 경기 지역 조사에서 무응답률이 57.7%나 되는데도 임창렬 24.6%, 손학규 16.8% 이달순 0.8%이라는 지지율만을 강조했다. 무응답률이 43.3%에 이르는 서울 지역의 경우 ‘고 건 독주’라는 강한 제목을 달기도 했다. 언론사들은 부동층이 30∼40%나 되는 조사 결과를 보도하면서 이들이 진짜 마음을 정하지 못한 사람인지, 지역 정서와 다른 정치적 선택을 하려는 유권자가 응답을 회피한 것인지를 가려 내려는 노력을 소홀히하고 있다.

〈경인일보〉가 5월18일자 여론조사 보도에서 ‘남 51% 임(창렬)후보 당선’을 제목으로 단 것은 특정 후보의 당선 가능성을 교묘하게 부풀렸다는 의혹을 살 만하다. 여성 응답자 지지율(35.3%)을 합쳤을 때 임후보가 당선할 가능성은 43%에 그쳤기 때문이다. 5월17일자 〈한겨레〉 조사도 부적절한 제목을 단 사례이다. 이 신문은 ‘고 건 가능성 최병렬의 4배’라는 제목을 달았는데, 4배라고 하기보다 고후보가 최후보를 38%포인트 앞섰다는 것이 객관적인 보도일 것이다.

박재창 위원장은 “여론조사의 영향력이 크니만큼 그것이 왜곡되었을 때 선거 결과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친다”라며, 여론조사 바로 세우기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공선협은 이번 선거에서 55개 지역 공선협과 자원봉사단을 가동해, 1대 1 밀착 감시 활동을 펼치고 제보를 받아 선거법 위반 사례를 총 55건 고발했다. 유권자의 무관심과 냉소주의를 없애기 위해 ‘이런 후보를 뽑자’는 캠페인도 펼쳤다. 공선협은 선거가 끝난 후 선거법 개정 투쟁에 본격 나서고 ‘새내기 유권자 학교’도 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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