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정상 회담, 금융 대란 방지책 만든다
  • 成耆英 기자 ()
  • 승인 1998.1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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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공황’ 위기 의식 공존, 구체적 대안 마련 가능성 높아
11월15일부터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서 열리는 아시아 태평양 경제 협력체(APEC) 제6차 회의는 두 가지 면에서 예년과 전혀 다른 성격을 띠고 있다. 관점을 한국으로만 좁혀서 본다면 가장 큰 교역 대상국들이 한국 경제의 회복 노력을 얼마나 긍정적으로 평가해 줄 것이냐가 초미의 관심사이다. 국제적으로 넓혀 보자면 아시아 금융 위기의 모든 당사국이 위기 극복과 재발 방지를 위해 어떤 묘책을 내놓을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사실 그동안 에이펙에서 금융·외환 문제는 별로 관심을 끌지 못한 주제였다. 94년 ‘보고르 선언’에서 합의한 선진국 2010년, 개발 도상국 2020년이라는 무역·투자 자유화 일정을 이행하는 문제가 늘 이 정상 회담의 가장 큰 주제였다.

그러나 올해는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한국·태국 등 금융 위기를 겪은 나라들의 정상이 참석하는 데다, 세계 경제가 다시 수렁에 빠지지 않도록 국가간 정책 공조가 어느 때보다 시급한 시점에 열리는 정상 회담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열린 G7 회담에서도 △신용 융자 제도 설치 △국제 통화 기금(IMF) 운영 방식 개선 등 국제통화기금 체제를 보완하기 위한 공동 성명을 발표해 에이펙에 가입한 국가들이 정책을 공조하는 데 좋은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이런 중요성을 반영하듯 에이펙 주요 국가들은 벌써부터 군불을 지피고 나섰다.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아시아 지역 무역 상대국의 경제 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할 것이라고 밝혔고, 중국 장쩌민(江澤民) 국가 주석은 한 술 더 떠서 아시아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중대 선언’을 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일본, AMF 창설 계속 추진

3백억 달러라는 거금을 선뜻 내놓으면서까지 국제통화기금과는 별도로 아시아통화기금(AMF) 설치안을 밀어붙여 온 일본은 이번 정상 회담이 이 문제를 공론화할 절호의 기회라고 보고 이 카드를 다시 끄집어낼 공산이 크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이 위축될까 우려하는 대주주 미국이 이 방안에 손을 들어줄 리는 만무하다. 또 에이펙은 지난해 정상 회담에서 국제통화기금이 갖고 있는 국제적 감시 기능을 보완하기 위해 지역적 감시 체제를 마련한다는 계획에 합의한 바 있다.

지난 1년 동안 에이펙 재무장관 회담 등이 열렸으나 감시 체제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는 데는 별 진전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국가간 정책 공조가 없으면 세계 불황이 불어닥칠 수밖에 없다는 절박한 문제 의식을 바탕에 깔고 있는 상황이어서 금융 위기 재발 방지를 위한 구체적인 결론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그같은 조짐의 하나로 지난주에는 이미 에이펙 재무차관회의와 마닐라 프레임 워크의 구체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사전 회의가 콸라룸푸르에서 개최되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이 회의에 참석하고 돌아온 재정경제부 최준경 금융협력과장은 “지난 10월 발표된 G7 공동 성명의 취지에 뜻을 같이하면서도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일본의 선도적 역할을 강조하는 분위기였다”라고 말했다. 이 회의에서는 또 각국 금융감독 기관 종사자들에 대한 교육과 역내 자본 흐름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방안 등도 논의되었다. 그러나 어떤 형태로 지역 감시 체제를 마련할 것인가에 대한 별도의 논의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안형도 박사는 일단 각국에 모니터링 시스템을 갖춘 국제금융센터를 개설한 뒤 이를 컨소시엄 형태로 연계해 운영하는 2단계 방안을 제시했다.

그동안 에이펙에 대해서 경제 분야 이슈를 정치적으로 왜곡하고 있다는 일부의 비판론도 제기되었다. 애초 각료회의로 출발한 에이펙이 93년부터 정상 회담으로 확대되면서 회담 자체가 세계적 이벤트인 만큼 무엇인가 눈에 띄는 결과물을 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설익은 정책을 마구 발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충분한 공감대가 마련된 상황에서 열리는 이번 회담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 국가 간에 경제 협력이 필요한 이유를 확인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 같다. 물론 G7 합의를 뛰어넘는 구체적 방안이 나온다는 전제 아래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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