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 정책이 북한 미사일 녹인다
  • 南文熙 기자 ()
  • 승인 1998.1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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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문제와 남북 교류 연계하면 실패…경협 중단은 압력 수단 못돼
지난 91년 말. 6공화국의 권부 핵심 세력 내부에서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대북 정책 방향을 둘러싸고 청와대·안기부 등 핵심 부처들이 격론에 휩싸인 것이다. 국제적 이슈로 떠오른 북한 핵 문제를 그 당시 변화하기 시작한 남북 대화와 어떻게 관계지을 것인가 하는 것이 쟁점이었다. 이 과정에서 북한이 핵사찰을 수용하지 않으면 남북 대화를 중단해야 한다는 ‘연계 전략파’와 핵문제와 남북 대화를 병행해서 추진해야 한다는 ‘병행 전략파’가 팽팽히 대립했다.

야당 “연계 전략 펴자”

이 논쟁은 노태우 대통령이 핵 문제와 남북 대화를 병행해 추진한다는 입장을 택함으로써 병행파의 승리로 돌아갔다. 이같은 병행 전략은 남북 기본 합의서 채택, 남북 고위급 회담, 대우의 남포공단 사업 같은 성과로 이어졌다.

그러나 92년 5월 김영삼씨를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는 것을 계기로 연계 전략을 주장하는 권력내 보수 세력이 다시 주도권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이들 연계 전략파는 대선 승리를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남북 관계를 다시 대결 국면으로 몰아넣었다.

노태우 정권 말기와 김영삼 정부 5년간 추진된 핵과 경협, 그리고 미·북한 관계와 남북 관계를 연계하는 정책이 초래한 결과는 참담했다. 한·미 관계와 남북 관계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잃은 것이다.

한동안 잠잠했던 ‘연계 전략’ 주장이 최근의 북한 핵 문제를 명분으로 또다시 고개를 들 기미를 보이고 있다. 야당인 한나라당이 연계 전략을 들고 나온 것이다.

한나라당의 연계 전략은 클린턴 대통령이 이번 한국 방문에서 병행 전략을 채택한 것과도 대조된다. 지난 11월21일 클린턴 대통령은 남북 정상 회담 직후 공동 기자 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대북 정책은 현재 방법이 최선의 접근 방법이라는 것에 합의했다. 4자 회담과 제네바 합의를 통한 포용 정책과 방위 협력을 통한 공격 억제를 ‘병합’하는 것이다.” 그가 사용한 병합이라는 용어는 결국 병행 전략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주 국회 상임위원회와 예결위원회 회의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은 최근의 북한 핵 문제 등과 ‘연계’해 햇볕 정책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 흐름은 이회창 총재 주재로 11월23일 열린 한나라당 긴급 안보 대책회의에까지 이어졌다. 한나라당은 앞으로 안보 문제를 당 차원에서 적극 이슈화할 것이며, 이를 위해 대북 결의안 채택 및 국회내 특위 구성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 전 주에 있었던 의원들 발언과 관련지어 보면 결국 한나라당은 최근의 북한 핵 문제 등 안보 현안과 연계해 정부가 포용 정책을 포기할 때까지 공세를 늦추지 않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의 이같은 입장을 안보 문제에 대한 순수한 걱정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략적인 목적이 깊숙이 개입된 것은 아닌지 의심을 살 소지도 충분하다. 즉 현재 공동 정권을 구성하고 있는 자민련을 끌어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안보 이슈를 제기하고 있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사실 한나라당 핵심 세력이 주도했던 김영삼 정부 시절의 대북 정책이 실패한 이유도 연계 전략과 국내 정치에 대북 문제를 전략적으로 이용했기 때문이었다는 점으로 볼 때, 과거에 범했던 두 가지 잘못을 또다시 반복하려 하고 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현재 한반도를 둘러싸고 잠복해 있는 이슈를 들여다보면 앞으로도 한나라당 주장에 가속도가 붙을 수 있는 요인이 즐비하다. 사실 금창리 지하 시설 문제는 현재 미국 정책 당국자들이 북한과 밀고 당기는 파워 게임의 주전장은 아니다.
미국, 미사일·생화학 무기에 관심

미국의 정책 당국자들은 핵 문제 보다는 미사일과 생화학 무기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보고 있다. 따라서 미국이 이같은 방향으로 이슈를 전환할 것이라는 조짐도 이미 나타나고 있다. 11월20일자 <워싱턴 포스트>는 ‘북한이 최소한 여섯 곳에 중거리 대포동 1호 미사일 발사 시설을 건설하고 있고 단거리 노동 미사일 생산도 강화하는 등 미사일 개발 계획을 확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또한 ‘미국 관리들은 미사일이 핵 의혹보다 더 당면한 위협이라는 견해를 밝혔다’고 보도해 앞으로의 사태 전개 방향을 분명히했다.

일본 <지지쓰우신(時事通信)>은 한 발짝 더 나아가 북한이 지난 8월 말 발사한 것과 같은 대포동 미사일을 최소 3기 정도 보유하고 있으며, △내년으로 예상되는 노동당 대회 △김정일 생모 김정숙의 생일인 12월24일 △내년 2월16일 김정일 생일 등에 맞추어 또다시 미사일을 발사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미 정보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북한이 앞으로 미사일을 또 발사할 것이라는 소문은 최근 들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서방의 한 외교 소식통은 얼마 전 “북한이 지난 8월31일 발사한 것과 똑같은 미사일을 그동안 대기시켜 왔으며, 이것을 머지 않아 다시 발사한다 해도 놀랄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미사일 문제와 더불어 미국 정책 당국자들이 주목하는 또 다른 문제가 북한의 생화학 무기이다. 그동안 국내 한반도 전문가들은 “미국이 앞으로 결정적 시점에 북한의 생화학 무기 문제를 거론하고 나올 것이다”라고 지적해 왔다. 이 예측대로 존 간논 미국 국가정보위원회 위원장은 11월16일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열린 한 국제 회의에서 “북한이 화학 및 생물학 무기를 보유하고 공격할 능력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고 밝혀 그 시점이 멀지 않았음을 암시했다. 핵문제에서는 김대통령과 입장을 같이했던 클린턴 대통령 역시 11월22일 오산 미국 공군 기지를 방문해 “미사일 등 북한의 위협이 계속되고 있는 만큼 감시를 늦춰서는 안된다”라고 밝혔다.

따라서 클린턴 대통령의 한국 방문을 계기로 핵 위기는 일단 협상 국면으로 접어든 반면, 앞으로 미사일과 생화학 무기를 둘러싼 미·북한 간의 대립이 첨예화할 가능성이 있다. 미·북한간 긴장이 다시 고조될 경우 한나라당 역시 포용 정책에 대한 공세의 고삐를 계속 죄어 갈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과거 경험에 비추어 볼 때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연계 정책은 대안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대로 이 시점에서 포용 정책을 중단해 보아야 아무런 효과도 발휘할 수 없다. 북한이 두려워할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한나라당 주역들이 과거 김영삼 정부 시절 포용 정책 또는 병행 전략을 통해 북한과의 경협을 꾸준히 추진해 왔다면, 지금쯤은 경협을 중단하는 것이 북한 당국자들에게 압력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한나라당 주역들은 과거 정권을 잡고 있을 때 그런 전략을 펴지 않았다.

미국식 벼랑끝 전략 탓에 긴장 고조

최근 미국이 추진하는 대북 압박 전략은 사실 미국식 벼랑끝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막판 대타협을 겨냥한 긴장 고조 정책인 것이다.

이같은 긴장 고조는 그동안 눈에 보이지 않게 꾸준히 추진되어 왔다. 금년 초 주한미군을 야전군 체제로 개편함으로써, 유사시 대규모 증원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라든가, 지난 10월24일부터 동해에서 실시한 육·해·공 합동 군사 훈련 등이 그것이다. 또한 11월19일자 <워싱턴 타임스>에 따르면 유사시 북한의 소멸까지 염두에 둔 새로운 전쟁 계획이 한·미 두 나라 군 수뇌부에 의해 입안되어 왔다고 한다. 워싱턴의 현재 분위기는 94년 위기 때보다 훨씬 심각하다.

미국 정책 당국자들이 목적하는 바는 이같은 긴장 고조 정책을 통해 북한이 스스로 협상의 길로 나서도록 유도하는 데 있다. 한 서방 소식통은 “북한 역시 최근 분위기를 이해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벌어질 상황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같이 복잡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눈앞의 현상만 보고 연계 전략을 주장하는 것은 우리의 손발을 묶는 결과를 빚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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